온 누리에 살고 있는 우리 중생들은 인연으로 맺어진 사이들이다. 길을 걷다가 서로 소매 깃만 한번 스쳐도 전생에 수없이 얽힌 인과에 기인되었다는 설법의 한 구절이 기억난다. 일찍이 불교와 관련을 맺어온 탓인지는 몰라도 난데없이 불광지에서 수필을 한편 써 달라는 부탁을 받고 나도 모르게 선뜻 승낙한 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게 바로 인연지사가 아닌가 하고 머리를 스쳐 가기에 이르렀다. 인연이란 말은 우리들이 일상생활을 영위하면서 수없이 연륜을 거듭하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부처님께서 삼세(전생,이승,저승)에 대한 가르침이 없었더라면 인연이란 두 글자는 무의미했을 것이다. 불교에서 인연은 연유 또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에 대한 이전의 관계를 뜻한다. 즉 인간을 수 억만년 전에서부터 현재의 존재상태까지 연이어 주는 말이기도 하다.
만일 인연이 없었다면 우리의 이웃이나 부모형제도 없었을 것이란 생각을 할 때 저절로 부처님의 가르침에 고개가 숙여진다. 흔히 잘된 일은 제 탓이고, 못된 일은 조상 탓이라고 하는데 이 때 불자들은 전생에서 한 일을 이생에서 받는 선악의 갚음인 업과 라고 생각하며 인연지사란 말을 자주 하게 된다. 이 말은 그 누구도 책망하지 않는다는 말인 반면에 밝은 내일을 지향한다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더욱이 나의 경우 이 말은 언제나 고맙고 친근감을 주는 말임과 아울러 오랜 벗이 되어 왔다. 여자가 사회활동을 하게 된 연유인지는 몰라도 나에게 있어서는 가끔 인연지사란 말을 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인연지사가 없는 곳에서는 남이 미워지고 스스로가 불안해지고 원수가 생기고 혼란이 빚어질 것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나날이라면 하루도 앉아 살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나 불교에 귀의한 사람들은 이런 미련한 행위에서 벗어나는 배려를 인연지사란 말로 대하게 된다. 얼마 전 나는 본의 아닌 일에 말려들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일이 있었다. 이를 아는 동료친지들은 몹시 분개하면서 죽일 놈, 살릴 놈 집을 무너뜨려야 한다고 나섰으나 이들을 만류하며 인연지사에 따라 전생에 죄를 짓고 이 생을 맞았으니…… 하며 업고를 치른다고 하니 주변의 분개도 소멸하고 나의 마음도 가벼워졌다. 지난 날을 생각하며 부처님을 맞아 합장하며 조용히 인연지사를 찾게 되면 모든 잡념이 거뜬히 자리를 뜬다. 나에게는 더 위없이 소중한 이 말과 더불어 속세를 어떻게 해탈하고 영원한 마음자리를 찾는 공부를 해야 할 것인지…… 이생에서 못 다하면 내세에서 거듭할 것을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