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렸을 때에 할머님의 손에 이끌리어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곤 했다。매년 정월 초 엿새날은 우리마을에서 二○리나 떨어진 반룡사(盤龍寺)에 가서 불공을 드리는 날로 정해져 있었다。이 날은 우리집 뿐만 아니고 사오십 세대나 되는 많은 사람들이 사방에서 모이는 날이기도 했다。절의 큰 봉내방에 그득히 모인 사람들을 보면、매년 그 절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마는 지금도 내 뇌리에는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깊은 산 속으로 숨을 헐떡이면서 여기저기 절 건물들이 늘어서 있고、낙낙장송들이 오랜 풍상을 상징하면서 절 둘레를 에워싸고 있었다。경내에 들어서면 자연히 옷깃이 여미어지고、경건한 마음이 자연히 울어나오기도 했다。법당에 들어서 스님의 독경소리와 목탁소리에 맞추어서、할머님과 함께 불상앞에 절을 하면서도、나는 언제나 불상의 웅대한 모습에 놀라기부터 했다。어쩌면 앉아있는 사람의 모습이 이렇게 클까?
그것부터 신기하게 생각되었다。입가장자리에 빙그레 미소를 머금은 모습과、머리가 꼬불꼬불 꼬부라져서 우리와 다른 점과、누런 황금빛으로 옷을 입은 부처님의 근엄한 모습이 위압감 부터 먼저 주기도 했다。새벽녘이 되어 법당에 들어가면、스님은 가족 한사람 한사람의 이름을 불러 부처님앞에 축원을 하고、그 종이를 춤추듯 타오르는 촛불에 불살라 버리는 것이 의식절차 이었겠지마는 마치 당장에라도 소원이 이루어지는 듯 했다。그러다가 나는 또 뜻밖에도 교회의 유년 주일학교에 나가야만 되게 되었다。나의 백모님은 二○이 갓 넘어 홀로 되셔서、유복자인 내 종형을 유일의 희망으로 삼고 계셨다。그러나 우리집안에는 갑자기 뜻하지 않은 불행이 들어닥치었다。
중학교 三학년에 재학중이던 내 종형이 적리병으로 졸지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었다。내 종형은 기독교 밋션계통의 학교를 다니고 있었고、세상을 떠나게 되자 많은 학교 친구들이 장례식에 왔다가、백모님에게 위로를 겸해서 전도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천지가 갈라지는 아픈 상처를 입은 내 백모님은 그 슬픔을 달래기 위해、아들 친구들이 권하는 대로 마을에서 가까운 교회에 나가시게 되었다。슬하에 아들딸 하나 없는 백모님은、나를 친아들처럼 이끌고 교회에 ㄱ나가기를 시작하셨다。인생의 허무를 너무나 일찌기 체험하신 백모님이、교회에서 정신적 안식을 얻으려 했던 것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은 거기에서만 끝나지는 않았다。처음에 백모님이 교회를 나가실 때는、집안에서 대범하게 생각했고、얼마 동안 아들을 잃은 마음의 상처를 씻는 지나가는 과정으로만 생각했다。해가 바뀌고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우리집에는 뜻밖에도 커다란 종교분란이 일아나고 말았다。불교 신자인 할머님과 기독교 신자인 백모님 사이에는 사사건건 의견의 대립이 생기게 되었다。사대봉제사가 양반네 가풍의 기본법칙이란 할머님에 대해서、백모님은 우상숭배라고 맞서고 나왔기 때문이다。수시로 벌어지는 고부간의 싸움 때문에、집안에는 침울한 공기가 감돌고、싸움이 있을 때마다 어린 나는 어찌할바를 몰랐다。내가 육·칠세 때부터 겪은 이런 커다란 일들은 나의 성격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나는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나의 체내에는 지금도 종교적으로 상반되는 불교적 요소와 기독교적 요소가 혼합되어 있고、또 어떤 일에 있어 의견이 대립되었을때、그것을 조절하고 절충하려고 노력하는 것은、그때부터 길러진 나의 습성인지도 모른다。내가 대학시절에 특별히 <종교철학>에 관심을 두고、열심히 강의를 들은 것도、따지고 보면 내 어린시절의 뼈저린 추억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그러나 종교 철학도 어디까지나 종교를 한 학문으로 다룬 것에 불과했고、종교의 어느 한쪽 믿음으로 이끄는 길잡이는 아니었다。
인간이 자기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어떤 위급한 경우를 만났을 때、절대자(絶對者)의 힘에 의지하고자 하는 마음、그것이 곧 종교의 시발점이란 것만 뚜렷해질 뿐이었다。어떤 친구는 나를 보고 용케도 절충안을 잘낸다고 칭찬도 하고、또 어떤 친구는 항상 중립만 지키려 한다고 비난도 한다。어쨋든 이런 것들은 싸움을 싫어하는 내 어린시절부터의 생리이기 때문에 도리가 없다。남을 미워하지 않고 남을 원망하지 않고、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평정된 정신자세에서 생을 영위하고 싶을 따름이다。
□ 佛光法語 무릇 마음이 있는 이는 생각이 없을 수 없느니라。생각이 없는 마음은 오직 부처님만이 증득하신다。등각(等覺) 이하는 모두가 생각이 있느니라。한 생각을 일으키면 반드시 몇 가지 법계(法界)에 떨어지나니 어떠한 생각도 이 법계 밖으로 벗어 날 수 가 없고 、이 법계밖에는 다른 법계가 없기 때문이다。한 생각을 일으키면 곧 한 번 태어나는 인연이 되나니 이 이치를 알고서 염불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徹悟神師 語錄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