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을 처음에는 수학여행단(修學여行團)에 끼어、두번째는 친우(親友)들과 단촐하게 올라갔었다。나중것이 진짜다。나이二三세때의 여름이었다。전철(電鐵)로 철원까지 가서 거기서 장안사(長安寺)로 들어섰다。기이한 느낌은 전철역까지가 일본의 식민지이고 장안사 경내(境內)에 몸을 담으니 거기서는 우리 조상의 얼이 담긴 고찰(古刹)이라는 것이었다。하도 그윽하고 숭고(崇高)하여서 거기에는 인간의 추악한 쟁투(爭鬪)나 탐욕은 얼씬도 하지 못하는 하나의 자연(自然) 그것 뿐이었다。
그런데、절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고 이튿날 새벽 맑은 공기를 마시러 뜰에 나갔을 때、거기 일본인이 있었다。별천지(別天地)로 느꼈던 것은 운무(雲霧)처럼 흩어졌다。그 일본인은 학생복 차림의 우리를 보고 웃는 낯으로 인사를 하더니 이리들 오라고 손짓을 한다。다가갔다。허름한 일본 옷차림에 머리는 삭발했지만 오래 깎지 않아서 터부룩하고、턱빝에??닳아빠진 솔처럼 수염이 되있었다。꼭 걸인(乞人)의 형상이었다。그는 금강산、특히 장안사의 새 소리가 좋아서 여러번 왔고 이번에도 한달째 묵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장안사에 날아들어 우는 새는 독특하고 그 새소리로 말미암아 장안사의 깊이가 더 하다는 말을 하는데 경지(境地)가 매우 높았다。그 구사(驅使)하는 어휘나 가라앉은 음성이 마치 어떠한 교수의 강의 같았다。겉모양으로 판단한 걸인의 인상은 그 순간 사라졌다。동시에 나는 그가 일본인이라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하면서 그의 조류연구(鳥類硏究)에 매혹되는 것이었다。오오 장안사、그리고 새 소리。다시 한번 만났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