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지 창간은 창간이라는 이름이 가져다주는 화려보다는 오히려 수줍음이 앞섰음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헌데도 그동안 격려 찬사 제언 충고 협력 등을 보여준 형제 여러분들의 협조와 성원—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하루에도 몇 번씩 격려의 글을 대할 적마다 가슴이 뭉클해진다.
이름조차 잊어간 옛 도반에게서 정성 담긴 글과 함께 적지 않은 금액마저 동봉해 올 때 나의 부족한 정성은「불광」앞에 더욱 부끄럽게 한다.
형제여 감사합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지성 다해 뜻 받드오리다.
♣ 얼마 전「한국청년불교회」회원에게서 물어 왔다. 가족 내에 다른 종교를 신앙하게 된데 따른 고민의 호소다. 종교는 바로 깊은 생명의 호흡이다. 그리고 가족의 겉모양은 낱낱 따로따로인 듯 하여도 우리의 의식 저변에서는 실로 하나로 엉켜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종교를 달리함으로써 서로에 금이 간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어떤 특정 종교를 믿기 이전에 깊은 생명의 유대와 정신의 일체성을 소중히 여겨야 하겠다. 종교의 차이에서 오는 대립이나 보이지 않는 갈등에 생각을 두지 말고 공동의 생명인 가족의식을 더욱 앞세워 대립을 극복하여야 할 것이다. 서로가 더욱 따뜻이 데워주고 깊이 이해하고 존경한다면 종교의 다름을 내세워 가족이 서로 다칠 일은 없을 것이다. 물론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의 가족은 본래 나눌 수 없는 하나라는 현실은 무엇보다 소중히 하여야 하고 거기에 충실하여야 하겠다. 종교의 다름을 내세운다면 가족은 금이 가고 가정엔 찬바람이 밀려든다. 이것이 종교는 아닐 것이다.
♣ 대구 여동명(呂東明)거사, 통칭 대남약국, 한국불교에 길이 남을 그 이름이다.그는 지난 9월 23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62년의 그의 생애는 분명 입지전적 산 자료임에 틀림없다. 그는 충북 영동에서 출생하고 대구에서 40여 년의 세월을 보냈다. 의학수업, 보살수업이 그의 전 생활이었다. 의학수업은 그에게는 기도와 통한다. 생명에 부처님 자비를 전달하는 거룩한 작법이었다. 그리고 호국호법 운동, 사회사업, 지역사회개발, 포교사업에 앞장 섰고 그의 발자취는 이 땅 위에 길이 남을 것이다. 그의 최후의 불사라고 할 동명사(東明寺)는 대지 1만 2천 평의 가람, 백여 평 본존불 점안을 보는 날 그는 눈을 감았다. 이 땅 위에 부처님의 자비하신 위광을 보태고는 그는 숨을 거뒀다. 그 육체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신장염이라고 한다. 밀려 닥치는 환자진료에 피로가 누적됐고 더욱이 소변을 너무 오래 참은 데서 온 것이라고 들린다.
보살, 그는 죽지 않는다. 길이 부처님 자광(慈光) 속에 영광 있으리∙∙∙∙∙∙.지도(至禱).
♣ 지난 신학기에 들면서 각 대학의 불교부 활동은 어느 때보다 활력이 넘친다.
회원의 신행향상을 위한 법회활동은 말할 것 없고 불자조직의 강화, 요원의 실력향상 지도부의 역량축적에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특히 믿음의 활력화에 초점을 두고 두 가지 장기사업에 착수하였다. 하나는 선후배를 망라한 수선(修禪)도량 개설 또 하나는 불교사상 선양을 위한 강좌 설치 등 불교사상 강좌는 국내 권위있는 석학을 총망라한 공개강좌를 시도하고 있다. 이것은 조국사상에 영원한 자원을 공급할 것을 결의한 대학생의 충성이기도 하다.
이밖에 서울에 있는 각 대학 불교부의 총부인「대불련 서울지부」는 지부장 홍성복군(고대)이 선두로 전 학기 이래의 구도(求道)수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믿음은 관념이나 지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체험을 통하여 믿음과 이해를 생명 위에 정착시키고 학구적 젊음을 불(佛)의 지(智)와 행(行) 위에 정립하자는 것. 이래서 매주 일요일이 이를 위해 바쳐지고 있다.
대구, 부산, 안동, 그밖에 각 대학에서의 불자의 믿음의 행(行)은 실로 싱싱하고 믿음직스럽다. 그 중에 부산 해양대학의 경우 불교부 운영상의 특이성은 특히 주목을 끌게 한다.
이 한 해가 이와 같은 젊음에서 뻗어나는「불광」에 의하여 우리 조국과 온 형제와 인류에게 행복이 소복이 채워지기를 기원한다.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