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박물관 뜰 옆에 머리만 남은 불상이 여럿 놓여 있다.
하늘이 유난히 맑고 푸른데 초봄의 따스한 햇빛을 듬뿍 받으면서 한결같이 잔잔한 미소 속에 머물고 있다.
숱한 전란과 인고 속에서도 한마디의 말씀이나 표정의 이그러짐이 없이 본래 모습대로의 미소 속에 있을 뿐이다.
그들 불두(佛頭)는 오랜 역사의 흐름 속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무심히 앞을 지나는 많은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불심을 캐고 있을 것이다.
나는 어느 불두 앞에 머물러 섰다. 나도 모르게 끌어들이는 마력에 머물러 버렸던 것이다. 많은 불두의 미소와는 달리 마치 탈을 뒤집어 쓴 것 같은 형상을 한 불두였다. 그것도 바로 놓여 있지 못하고 비스듬히 자리하고 있었다. 한쪽 눈은 일그러지고 입의 끝은 망가져서 더욱 그 모습이 말이 아니었다. 허나 성한 한쪽 눈과 일그러진 한쪽 눈은 어떤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나는「허, 한쪽 눈이 없군!」기이한 조화의 원인이라도 캐려는 듯이 불두 가까이 갔다. 망가져 버린 입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보아라, 내 이 눈을!」
아, 정말 그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 내리고 있었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면서 허둥대고 있었다.
「이게 어찌된 것입니까?」
입 밖으로 새어 나온 나의 이 말은 들리는 듯 마는 듯 했다.
「나는 자네의 눈을 얻어야겠어!」
「무슨 말씀이신지?」
나의 가슴은 마구 뛰고 있었다. 호흡은 대단히 가빠왔다.
「자네가 대표로 그 눈을 바쳐야겠어. 인간의 눈은 쓸모 있는 눈과 쓸모 없는 눈이 있는 거야. 쓸모 없는 눈을 받아두었다가 쓸모 있는 사람에게 다시 줘야겠어. 내 이 눈은 그런 눈의 저장소야! 수천 수만 개의 바른 눈이 창조되는∙∙∙∙∙∙」
「전 쓸모 있는 눈인데요!」
「그럼, 내 눈은 몇 개로 보이나?」
「하난데요. 하난 일그러지고∙∙∙∙∙∙」
「어떡해서 하나로 보이나? 너의 눈은 쓸모 없는 눈이야! 자, 이쪽으로 와서 그 눈을 다오.」
나는 허둥대면서 발버둥쳤다.
「내 눈이 몇 개로 보이나?」
「둘인데요?」
「어떡해서 둘로 보이나? 빨리 와서 그 눈을 다오!」
나는 두 눈을 감싸 버렸다. 아, 허나 어느 틈에 나의 두 눈동자는 온데 간데 없어졌다. 내가 찾아서 해야 할 진실은 무엇인가? 도무지 무엇이 무엇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어떤 수리의 함수인가?
부서지듯 고함을 질렀다. 와르르 지붕이 내려 앉는 것이다. 나는 후다닥 잠에서 깨어난 것이다.
그 박물관 옆 뜰에서 본 불두, 눈이 있었든가, 없었든가. 입은 코는 그리고 귀는∙∙∙∙∙∙. 한쪽 눈이 망그러진 그 불두, 그래도 오랜 세월동안 그렇게 앉아 있는 것이다. 하등의 불편이나 불안함이 없이 그는 그대로 앉아 있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오랫동안 내 머리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문득 떠올리곤 했다. 특히 상한 한쪽 눈에 대해서—.
잠에서 깬 내 머리맡에는 읽고 또 읽은 한 페이지의 선시(禪詩)를 펼쳐 놓고 있는 것이다.
일이삼사거(一二三四去 )
사삼이일래(四三二一來 )
은현팔무제(隱顯八無際 )
간간안반개(看看眼半開 )
승(僧) 지현시인(智賢詩人)의 빌어먹을 빌어먹을 참으로 빌어먹을 이로다, 이게 무슨 짓거리인가, 하하 하늘이 웃는다.
고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내 눈은 멀쩡하다. 아하, 그것과 고것의 연관으로구나, 나는 싱긋 웃고 있었다.
[지혜의 샘] 불두(佛頭)와의 대화
- 관리자
- 승인 2009.04.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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