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정신위생] 사치와 낭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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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정신위생] 사치와 낭비
  • 관리자
  • 승인 2009.04.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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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정신위생

몇 해 전에 있었던 일이다.

장안에 이름난 50대 의사가 수억의 부도가 나서 잠시 구속이 된 일이 있다. 이 분은 의과대학 교수도 지냈었고 환자들이 많고 병원이 잘 되고 있었다. 그리고 검소하고 별로 돈을 낭비하거나 다른 사업에 손을 대지도 안 했었다. 무슨 일로 그러한 거액의 부도수표를 냈는지 얼른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 후 들려오는 소식으로는 부인과 딸들이 낭비를 해서 그렇게 됐다는 얘기였다. 남의 좋지 않은 얘기라 캐묻지 않아서 자세히는 모르겠으나 부인이 당시에 수백만 원짜리 정원수(庭園樹)를 일본에서 수입해서 심고 있다느니 딸들은 옷과 구두가 하도 많아서 옷이 옷장 속에서 곰팡이가 끼어 썩고 있다느니 했었다.

어떤 친한 사람은 자기 외아들이 장가가면 줄려고 새로 지은 집을 그 의사의 보증을 섰기 때문에 그 집도 없어지고 아들에게 물려줄 유산도 달아나 버렸다는 얘기다. 이러한 일들은 재벌이나 부유층 일부에서는 드문 경우가 아닐 것이라고 짐작이 된다.

사치와 낭비가 어느 시대에나 사회에나 있는 일이고 옛날에도 주기적으로 이러한 풍조가 일어나서 위정자가 특별한 조치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예부터 사치와 낭비를 악덕으로 보아왔고 죄짓는 것으로 보아왔다. 심지어 어린이들에게는 물욕(物慾)을 자극한다고 장성할 때까지 돈을 보여주지 않는 일도 있다. 더구나 광복 직전에는 왜놈들이 무모한 전쟁을 하느라고 물자가 극도로 궁핍해서 사치나 낭비란 생각도 못했다. 광복 후에는 국내의 생산력이 거의 없어 일인들이 비축해 두었던 전쟁물자와 미 군수품, 미국의 구호물자가 고작이었다. 6 ∙ 25직전에는 장관의 생활이나 일반 시민의 생활이 별 차이가 없이 검소하고 한국의 경제가 가장 안정된 상태에 있다는 평을 미국으로부터 들었었다.

한국사회의 사치와 낭비는 6 ∙ 25로부터 시작한 것이 분명하다. 장래에 대한 불안으로 확실한 계획을 세울 수 없고 인플레가 심하니 저축을 해도 화폐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또는 공짜로 생기는 돈 특혜, 이 두 가지로 사치와 낭비가 퍼져가기 시작했다. 크게 보면 부정과 부패로 인해 큰 노력이 없이 돈을 번 사람들의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 돈에 굶주렸던 사람들로 과거의 열등감을 보상하기 위해서 자기를 과시해야 되는 데에서 발단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수년 전의 일이다. 지방에 갔다가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바로 옆자리에 어떤 50대 후반의 백인 신사가 앉아있길래 나는 이 사람이 독일로부터 당시 10년 전에 우리나라로 귀화한 그 사람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사위를 만난 적이 있어서 그 사위의 이름을 대면서 아무개를 아느냐고 물으니 그는 바로 자기의 사위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실례를 무릅쓰고 왜 당신은 한국에 귀화했느냐고 물으니 그는 좀처럼 대답을 않고 자기는 서양, 서양사람이 싫다, 독일 ∙ 서독 ∙ 독일인이 싫다고 했고, 한국은 인간적이다, 한국의 가난한 사람들은 행복하지만 독일의 가난한 사람은 비참하다, 한국의 부자는 대단히 나쁘다, 독일의 부자는 연구와 노력으로 부자가 되는데 한국의 부자는 연구도 노력도 없이 부자가 된다고 한국의 부자를 좋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연구와 노력으로 부자가 된 사람도 많겠지만 사치와 낭비를 싫어한다.

사치와 낭비는 이러한 부정부패와 특혜와 관련이 있고 열등감을 보상하기 위한 과시욕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지난 해 국제학회에 참석하고 미국을 둘러보고 또 그 전 해에 유럽과 미국에 들렀을 때에 미국에 있는 제자나 친구들 말이 한국 의사는 처음에는 자동차를 가지고 경쟁을 하고 다음에는 집을 가지고 경쟁을 하고 다음에는 가구를 가지고 경쟁을 한다면서 이것이 한국의 풍조를 그대로 옮겨 온 것이라고 했다. 파리에서는 20년 전에도 검소하다는 것을 느꼈지만 이번에는 더욱 놀랐다.

파리대학 의과대학교 교사중의 한 건물에 있었는데 화장실의 수도는 꼭지를 누르면 겨우 손을 씻을 만치만 물이 나오고 자동적으로 잠겨져서 물이 안 나온다. 모 퇴역장군 집에 갔더니 낡은 집에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가난한 집에서나 볼 수 있는 수십 년 묵은 전깃줄에다 갓도 없는 전구를 박아놓고 있었고 화가들을 위해서 정부에서 지어준 아파트에서 기거했을 땐 복도에서 채광이 되지 않아 깜깜한데 사람들은 자기가 지나갈 때만 불을 키고 곧 또 끄고 자기 아파트로 들어가게 되어 있는데 전등의 촉수는 아마 5촉 정도로 겨우 문이나 아파트 번호가 보일 정도이고 아파트 안에 들어가도 계단이 보이게 들어서자마자 전등이 있는데 계단을 사용한 뒤에는 꼭 끄고 방 가운데 천장에는 전등이 없고 스탠드 뿐이고 방을 떠날 때는 꼭 전등을 끄고 있었다. 왜 이렇게 전기를 절약하는가, 그곳에 있는 제자들에게 물었더니 파리는 오일쇼크 후에 에너지 절약을 해서 20%인가 30%를 절약해서 파리시 전체로 막대한 경비를 절약할 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사치와 낭비는 6 ∙25 이후의 사회기강의 해이에 근본원인이 있고 열등감으로 인한 과시 경쟁욕, 전통을 무시하는 경향, 여자들이나 아이들을 가장이 통제하는 힘이 약화되고 한때 어떤 장관이 무식하게도 소비가 미덕이란 소리를 한데서 볼 수 있는 앞 뒤를 볼 줄 모르는 데에 원인이 있다. 요는 사치와 낭비는 정신의 불건강의 증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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