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세계인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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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세계인의 고향
  • 장경학
  • 승인 2009.04.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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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나이아가라 폭포는 거대한 자연의 힘의 상징이다.  나는 작년 겨울 함박 눈이 펄펄 나리는 날 카나다 쪽에서 나이아가라를 내려다 보고 서 있었다. 카나다의 눈은 한없이 나리는 눈이다. 땅에 까지 닿은 듯한 회색 하늘에서 쉴새없이 쏟아지고 있다. 내가 어린 소년 시절을 보낸 함경도의 겨울과 비슷하다. 겨울이 되면 한달 동안 계속해서 눈이 나리는 때도 있었다. 밖에 나가지 못하므로 방안에서 누나들과 이불을 쓰고 누워 노래를 부르면서 갑갑한 마음을 달래고는 하였다. 그 후 서울에서 살고 또 따뜻한 일본 남쪽 섬에서 혹은 경도(京都)에서 지내는 동안 참말로 눈다운 눈을 구경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카나다에 와서 비로소 눈다운 눈을 구경하게 되었다. 이곳은 처음내린 눈이 녹을 사이도 없이 다시 내린 눈이 그 위에 쌓이고 또 쌓여 한 겨울 동안 쌓여 있는 듯 했다. 도시의 건물과 시골의 나무 숲을 빼고는 흰 눈이 두텁게 깔리어 검은 색은 드러 내지 않고 어디나 백색의 청결함이 가득차 있었다. 거리에는 소금을 뿌려 눈을 녹이므로 그 경비만 하더라도 대단할 듯 했다.
  한 겨울의 나이아가라 폭포는 꽁꽁 얼어붙어 두터운 어름기둥이 서 있는 듯 했다. 아니 어름 기둥이 쏟아지는 물줄기처럼 착각되었다.
  1957년 여름 나는 나이아가라를 미국 쪽에서 구경하였다. 화산이 멀리서 폭발하는 듯한 은은한 폭포의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면서 나무 그늘아래 있는 벤치에 길게 누워 시원하게 낮잠을 즐기었다.
  그 여름의 장관을 볼 수 없으나 겨울의 나이아가라는 또한 구경할 만 하였다. 여름과 눈으로 장식된 자연의 황량(荒凉)함은 자연의 심술궂은 악마성의 표현인 듯 했다.
  1931년 봄 고등보통학교 때 수학여행으로 금강산에 갔다가 구룡폭(九龍瀑)을 구경한 일이 있다.
  제주도의 정방 폭포는 바다에 면한 절벽에서 폭포가 떨어지는 광경은 규모는 1백만분의 1도 못될 정도의 극히 적은 것이지만 나이아가라 폭포가 땅이 꺼진 절벽에 걸려 있는 것과 비슷하다. 다만 제주도의 정방폭포의 경우도 논과 도랑의 물이 그 수원(水原)이므로, 그것을 보고 다음에 해변에 내려가 폭포를 올려다보게 되므로 신비성(神秘性)이 전혀 없음이 단점이다.
  나이아가라 폭포는 수량이 풍부하여 남성적인 힘을 과시하지만 강물이 흐르다가 급히 파진 절벽에 걸려있는데 불과하므로 거대한 자연의 장관(壯觀)이기는 하지만 오묘한 아름다움이 결여 되어있음이 단점이다.
  금강산의 구룡폭포의 경우는 아래에서 올려다보며 경탄하며 찬양하는데 그치는 것이지 위에 올라가서 폭포를 내려다보는 불손(不遜)을 범할 수 없다. 그것은 돌과 물의 대결이 빚어낸 긴박한 순간이며 그 물은 천상에서 낙하하는 듯 그 수원(水源)을 찾을 수 없으므로 자연이 지닌 영원한 신비성이 서려있다. 급강하(急降下)하는 물줄기를 휘여 잡을 것 같은 천척(千尺)의 드높은 암석이 남성미의 강력함이라 한다면 끊어질세라 재촉하면서 유지(柳枝)처럼 가늘게 이어 내리는 폭포의 좁은 물줄기는 선녀(仙女)의 가는 허리처럼 여성미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이처럼 구룡폭포는 남성미와 여성미의 완전한 합일체로 보인다. 또 자연의 본성인 신비성을 지니고 있다.
  나이아가라는 오직 남성미를 표현할 뿐이며, 자연의 거대한 힘을 과시하지만, 자연의 신비성은 지니지 못하고 있다. 오래된 영화이지만 마리린 몬로가 주연하는 「나이아가라」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그것은 값싼 탐정극의 배경으로 나이아가라폭포를 이용한 것이었다. 나이아가라가 신비성이 없음은 이 영화의 모티브로서 충분히 폭로된 듯하다.
  미국같은 거대한 대륙의 자연미는 거의 나이아가라와 같이 거대하기는 하다. 그러나 오묘하고 신비스럽고 피곤한 내 혼을 달래주며, 내가 그곳에 침전(沈澱)할 수 있는 경치는 거의 없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고는, 수력발전을 일으키려고 폭포의 힘을 이용하려 드는 것이 서양인의 기질이라 한다. 동양인의 경우는 자연의 힘을 이용한다는 생각 보다 자연의 아늑한 품에 안기어, 자연과 한 몸이 되려는 생각이 앞선다고 할 것이다.
  서양인은 이미 자연을 상실하였으나 동양인에게는 옛날 그대로 자연이 남아있다. 오늘의 서양인의 고민은 상실한 자연을 어떻게 하면 다시 찾느냐 하는 정신적 고민이다.
  토론토 박물관에도 중국의 큰 벽화의 모조품이 장식되어 있었고, 절의 큰 모형이 시설되고 전기 장치로 종소리, 독경소리 등을 은은하게 들리게 장치하고 있었다. 컴컴한 그 절의 삼문 앞에, 어느 여인이 주저앉아 조용히 참선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 여인의 구도(求道)의 모습에서 오늘의 서양인의 정신적 황폐(荒幣)를 엿볼 수 있었으며, 동시에 그 들이 잃었던 자연을 되찾으려 하는 애타는 경건한 심정을 알 수 있는 듯했다. 수백년간 그들은 과학의 힘으로 너무나 자연을 파괴하였고 자연의 신비성을 모독하였다.
  서양에서는 옛 희랍인은 자연을 벗삼아 생활을 살찌게 했다. 그 뒤 서양인은 종교에 파묻혀 자아(自我)를 잃었고 르네쌍스 후 잃은 자아를 이성(理性)이란 이름으로 되찾았으나 이성의 합리성(合理性)에 지나치게 기울어져 기계를 과신하다가 기계의 노예가 되어 오늘의 비극에 부딪히게 된 것이다.
  근대 계몽기의 시성(詩聖) 괴테는 재빨리 서구문명의 전락(轉落)을 예측하고 그 구원(求援)의 손을 내밀었던 것이다. 「파우스트」 제2부에서는 「헤레네」라는 여주인공을 등장시켜 우리들에게 옛 희랍의 자연에 귀향(歸鄕)할 것을 권하고 있다.
  자연에서 나온 인간이므로 자연을 잃는다면 나도 잃고, 나중에는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이다. 동양인은 아직 자연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에 빠진 것은 아닌 것이 다행이다. 우리는 오늘의 서양인들이 동양에의 노스탈지아(鄕愁)를 느끼며 동양에의 관광여행에 호기심을 표시하는 것도 동양에는 아직 자연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동양은 지금 전 세계인의 고향인 셈이다. 우리는 이 고향의 가치를 깨닫고 소중히 지킬 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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