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인간의 마음에 대한 이름이 많다. 그리고 그 이름 하나 하나의 뜻이 조금씩 다르다.
그것은 불교에서 그만큼 인간의 마음에 대한 내용을 좀더 자세히 설명하려는 노력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유식학(唯識學)에서는 종래의 복잡한 심성설을 종합하여 식상(識相)과 식성(識性)으로 크게 구별하여 설명하게 된 것이다.
초창기의 유식학은 인간의 심층심리를 탐구하는데 전력을 기울였으므로 매우 복잡하였지만 세친논사(世親論師) 이후의 후기 유식학은 유식삼십론(唯識三十論)등에서 그와 같이 구별하며 이론을 정리하고 있다. 이제 그 구별에 따라 전자인 식상을 그 유래 등 하나 하나 살펴볼까 한다.
원시불교의 심식설(心識設)
위에서 유식학에서는 우리 마음을 식상(識相) 식성(識性)으로 구별하여 설명한다고 하였다. 그 식상은 범부심을 뜻하고 식성은 곧 불심(佛心)또는 보살심(菩薩心)을 뜻한다.
물론 보살심은 정화도상에 있는 심성이기 때문에 완전한 식성에는 도달하지 못하였지만 그래도 범부심 보다는 마음의 정화가 거의 이루어졌다는 입장에서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식상은 곧 번뇌를 야기하고 선행과 악행을 일삼아 그 행동의 업력으로 안락과 고통을 받게 되는 유루심(有漏心)을 뜻하고 식성은 청정무구하고 생과 사를 떠난 해탈의 마음이며 열반의 진리를 실현하는 무루심(無漏心)를 의미한다.
그런데 유식학의 특징은 범부들의 마음〈識相〉을 낱낱이 해설하여 번뇌와 악을 야기하여 윤회하게 된 동기 등 원인과 결과를 상세하게 설명하여 계몽해 주는 데 있다.
그러므로 유식학은 대승불교 가운데서도 범부의 심성과 그 입장을 가장 잘 설명해 주고 있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그 유식학적 심성설이 어떻게 성립하게 되는가 그 유래를 간단히 설명하고 내용설명에 들어갈까 한다.
불교의 심식설(心識設)은 원시불교에서부터 시작된다. 다시 말하면 원시교리인 오온(五蘊)과 십이처(十二處), 십팔계(十八界) 등 이른바 삼과설(三科設)이 이미 원시불교의 교리에 있었던 것이다.
이들 내용이 비록 원시적인 심식설이기는 하지만 범부의 심식을 매우 깊이 설명하고 있다. 즉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식(意識)등 인간의 마음을 육식(六識)으로 분류하여 모든 정신생활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 심식으로부터 나타나는 행위는 곧 업인(業因)이 되고 이 업인은 다음의 결과를 가져오게 하는등 인과의 도리도 잘 설명하고 있다.
소승불교의 심식설
이러한 원시불교의 심식설은 소승불교에 이어져 더욱 발전을 보게 된다. 소승불교는 일명 아비달마불교(阿毘達磨佛敎)라고도 하는데 이는 매우 탐구적인 칭명이다.
즉 아비(阿毘)는 공경하고 결택(決擇)한다는 뜻이며, 달마(達磨)는 진리 또는 물질과 정신계를 모두 포함한 법(法)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명칭이 말해 주듯이 아비달마불교시대는 정신계와 물질계를 깊이 있게 탐구하고 정신계와 물질계는 모두 업력의 힘에 의하여 운영되고 유지된다는 이론을 밝혀 주고 있다. 이러한 논리를 업감연기(業感緣起)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모든 것은 업력에 의하여 결과로 초감(招感)되고, 감응(減感)되어 연기(緣起)된다는 것이다.
연기라는 말은 인연이 모아 결과가 생기(生起)한다는 뜻이며, 이를 의역하면 창조라는 말로도 쓰인다. 무엇이든 인과의 도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유식학의 특징은 범부들의 마음을 낱낱이 해설하여 번뇌와 악을 야기하여 윤회하게 된
동기 등 원인과 결과를 상세하게 설명해 주는데 있다.
그리하여 소승불교는 업력에 의하여 인간의 현실은 물론 삼계 육도(三界六道)인 우주도 창조되고, 또 정신의 현상도 선과 악 등 유루성 등으로 나타난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소승불교는 필연적으로 그 업력의 출처가 어디에 있는가를 밝혀내는데 힘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하여 원시불교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육식설(六識設)을 바탕으로 하여 마음의 작용론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이를 심소(心所)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육식은 행동을 나타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마치 국왕이 무엇이든 마음대로 결정권을 갖고 있는 것과 같다고 해서 심왕(心王)이라 하고, 이 심왕에 소속되어 착한 행동〈善行〉과 나쁜 행동〈惡行〉을 야기하는 정신작용을 심소라고 이름하였다.
이들 심왕과 심소의 행위에 입각하여 선업과 악업이 결정된다. 이러한 심소론(心所論)은 품유족론(品類足論)과 대비바사론(大毘婆沙論)과 구사론(俱舍論)등에 잘 나타나 있다.
소승론 가운데서도 가장 잘 정리된 구사론에 의하면 선법〈大善地法〉과 악법〈大煩惱地法〉등을 야기하는 46종의 심소법(心所法)이 있다.
이와 같이 심왕(心王)과 심왕에 의하여 나타나는 심소(心所)에 의하여 행동으로 나타난다. 그 행동은 곧 업인으로 조성되어 마음속에 보존되어 있다가 인연이 도래하면 곧 결과로 현실에 나타나기도 하고 미래세에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학설을 기초로 하여 선인(善人)은 선과(善果), 악인(惡人)은 악과(惡果)등의 인과법 뿐만 아니라 수시로 변천을 가져올 수 있다는 이숙(異熟)의 인과법도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업력은 마음속 가운데 어느 곳에 보존되는가 하는 의문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것은 종래의 육식(六識)가운데 제 6의 의식(意識)이 눈, 귀, 코, 입, 혀, 몸 등으로 인식하는 마음을 통제하고 유지시키는 역할을 하며, 동시에 평소에 몸과 마음으로 조성되는 업력까지도 보존하는 주체라고 믿어 왔었는데 그 의식을 불완전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의식이 평상시에 잘 활동할 때에는 별로 문제가 없지만 그러나 만약 어떤 불의의 사고나 극한 상황하에서 의식이 분명치 않을 때는 , 의식의 체성이 영원한 생명체로서, 또는 미래세까지 이어주는 윤회의 주체가 과연 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업력의 보존체로서 적합하지 않다는 심리 분석론이 대두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고민하던 소승론사(小乘論師_들은 제6의식(意識)이외에 또 다른 심성(心性)이 있다고 판단하게 된다. 이 심성은 금생과 내생에 관계없이 중생의 생명을 유지시켜 주고 또 업력도 보존하여 주며 동시에 인연에 따라 모든 결과 까지도 나타내주는 것이라고 믿었다.
이러한 마음의 주체를 소승불교시대의 여러 부파(部派)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즉 대중부(大衆部)는 근본식(根本識)이라 하고, 상좌부(上座部)는 유분식(有分識)이라 하며, 독자부(犢子部)는 보특가라(補特迦羅), 화지부(化地部)는 궁생사온(窮生死蘊), 경량부(輕量部)는 세의식(細意識) 또는 일미온(一味蘊)이라고 명칭을 정하여 여러 심식사상(心識思想)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이상과 같이 소승불교에서 인간의 심성을 부단히 연구하고 탐구하여 합리적인 인과사상과 윤회사상 등의 교리를 설명하려고 노력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심성은 한없이 넓고 깊어서 이 시대에도 그 논리가 미완성으로 남긴 채 그 의무를 대승불교에 넘기게 된다.
유식학의 심체설
이상과 같이 소승불교의 심식설은 그 시대의 사상 가운데서 핵심이 되었지만 아직도 불교의 사상을 완벽하게 설명하는데 미흡한 점이 없지 않았다.
그리하여 A.D4세기경 무착보살(無着菩薩)이 출가하여 대승적인 심식설로 개혁하기에 이른다. 무착보살은 해심밀경(解沈密經)의 심의식(心意識)설 등의 영향을 받아 종래의 소승불교에서 주장해 온 육식설에다 제7말나식(末那識) 과 제8아라야식을 더 보태어 8식설로 논리화 하였다.
그 이유를 보면 소승불교의 육식설과 이에 의하여 나타나는 심소(心所)가운데 가장 근본이 되는 번뇌를 설명하는 이론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승불교에서는 전념(前念)이 후념(後念)에 대한 의지처가 된다고 해서 전념(前念)을 의근(意根)이라고 하는데 이것도 역시 의식불명 등 심식의 단절이 있으면 고정불변한 의근이 되지 못한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근본 번뇌의 발생 과정과 의근을 진리롭게 설명하려면 제7말나식이라는 심성이 우리 마음속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말나식을 우리 인간의 죄악이식(罪惡意識)의 발생처로 하고, 또 제6의식(意識)의 의지처인 의근의 역할을 한다고 하였다.
그 다음 무착보살은 제8아라야식를 정하여 이 심식이 모든 심식을 유지시켜 주고 생명과 수명의 가능성이 있게 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모든 업력이 아라야식에 보존되어 있다가 현재의 생활을 가능하게 하며, 또 미래의 윤회도 가능케 하는 윤회의 주체가 된다고 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유식학에서는 인간의 심성을 8종으로 분류하여 모든 정신계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佛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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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형 근(吳亨根) · 1932. 8. 3. 경북옥포 출생
· 동국대학교 박사 과정수료
· 현재동국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