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寺의 향기] 남해의 지장도량 호구산 용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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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寺의 향기] 남해의 지장도량 호구산 용문사
  • 관리자
  • 승인 2009.09.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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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의 향기 한 쌍의 용이 등천한 그 자리에

  “상주 아시죠? 왜 상주라 하는지 아십니까?” 옆 좌석에 앉아 계시던 할아버지께서 돌연 질문을 던지신다. “잘 모르겠는데요.” “관세음보살님이 항상 계시는 곳이라 하여 상주랍니다. 그러면 세존도 아세요?” 절을 찾는다는 처자에게 알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몹시도 많은 모양이었다. “한번 가보면 알겠지만 섬 중앙에 큰 굴이 패였지요. 부처님께서 이곳을 지나실 제, 바다 속의 용이 보니, 큰 바위가 가로놓여 가시는 길을 방해하지 불을 뿜어 내서 배를 통과하도록 했다는 군요.”

  동양 최대의 구름다리라는 남해대교가 건설되기 전까지만 해도, 물살이 급해 육지와의 교통이 어려웠을 법한, 생소하기만한 남해의 섬에서 발견하게 되는 부처님의 자취는 묘한 희열을 일으킨다.
  허균이 그리던 이상국「율도」를 연상케 하는 조용하고 푸른 섬나라 남해, 우리의 옛 선인들은 거치른 물살을 나룻배로 가르며 건넜을 이 길을 자동차로 쉽게 건너서 찾아가는 곳은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 마을의 용문사이다. 용이 나온 못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용소리(龍沼里)란다.
  신라적 원효스님도 현재 남해 금산의 유명한 관음도량 보리암에서 기도·회향하신 후 돌아가시다, 잠시 이 마을에서 발길을 멈추셨던 적이 있었다. 지나다 보니 마음의 큰 못에서부터 이상하고도 신비한 한줄기 영기와 오색구름이 솟더니 산골짝 깊은 곳으로 모이며 서리는지라 이상히 여긴 때문이다. 빛이 모인 산골을 찾아가니 영기와 구름속에서 청룡·황룡 두 마리의 용이 나타나서 산기슭을 희롱하듯 배회하다 하늘로 등천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바로 그 자리에다 절을 지으니 그것이 지금의 용문사(龍門寺)이다.
  바닷가 특히 남해에는 용과 관계된 전설이 많다. 뿐만 아니라 절이름 또한 용자가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다. 과거 왜구의 침입이 잦았고 그것을 용왕의 힘으로 막아줄 것이라는 동양적 믿음에서 온 것이리라 짐작해 본다.
  원효스님께서 영기와 오색구름을 좇아오신 길을 따라 올라온 이곳 용문사에는 역시 용과 관련된 흔적이 많다. 삼배를 올리고 쳐다본 대웅전의 단청에도 유난히 용과 고기의 모양이 눈에 많이 띠고 대웅전 양면 적묵당과 탐진당의 기와모양도 암룡과 숫룡을 상징하듯 차이가 난다. 용이 물을 마시던 곳이라는 돌에 물을 부어 속을 들여다보라는 주지스님의 말씀에 따라 그리 해 보니 사찰 경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참으로 신기하지 않을 수 없다. 용의 뜻을 알아차려 만들어 놓은 선인의 지혜가 번득인다.
  용은 영물로서 예부터 우리에게는 바다의 수호신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용이 등천한 절답게 용문사는 실제 임진왜란 당시 왜구의 침입에 대항하여 승병(僧兵)이 훈련하던 호국도량이기도 하다. 지금은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것으로, 웬만한 배를 연상케 하는 싸리나무 통은 얼마나 많은 스님들이 계셨는가를 짐작케 한다.
  당시 스님들이 만들어 썼다는 ‘삼혈포’는 하나의 몸통에 세 개의 총구를 만들어 사용한 포로서 스님들께서 직접 고안한 것이라 한다. 그래서 숙종 때는 수국사(守國寺)로 지정 보호 받기도 하였다.
  용문사를 둘러싸고 있는 산은 호구산(虎丘山)이다.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는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용호(龍虎)의 영기가 함께 모여 있는 곳, 그래서 이곳의 산세는 수려하고 계곡에는 물이 많으며 맑고 시원한가 보다.
  그러나 용호가 상존하다 보니 소위 기(氣)가 센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웬만한 스님들은 살림을 살기가 힘들 정도라 한다. 서늘한 기운과 함께 드센 기가 느껴지는 이곳을 그래서 원효스님은 지장보살도량으로 정하셨는지도 모르겠다. 지옥중생과 용까지도 제도할 수 있는 강한 원력의 지장보살님으로 하여금 이 드센 기를 누르기 위하여.
  현재 지장전에 모셔져 있는 지장보살님은 원효스님께서 현몽(現夢)하시고 그 모습 그대로 향나무로 깎아서 만든 것이라 한다. 그래서일까 지장보살님의 몸체가 유난히 큰 듯하고 상호가 원만대비하신 모습이다.
그래서 용문사의 정기는 잘 다스리기만 하면 기도의 영험이 어느 사찰보다 높고 빠르게 나타나는 곳이기도 하단다. 많은 스님들께서 왜구를 물리치고 수국의 공로를 세울 만큼.
  아직 자신의 임자를 못 만났었던 탓인가? 옛 향취가 물씬 풍기는 고찰이건만 방치된 느낌 또한 감출 수 없다.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사찰법당 건물인 경남 유형문화재 85호 대웅전을 비롯하여, 고려 때의 석불로서 남해 군내에 오직 하나뿐인 국보급 문화재인 미륵불(유형문화재 138호), 옛날 스님들께서 쓰시던 싸리나무 밥통, 호국의지가 담겨있는 삼혈포, 수국사패, 금동요령, 괘불, 운판 등 70여 가지의 문화재를 갖고 있건만 정돈되지 않은 채, 사찰 곳곳에 오랜 유물들이 그대로 놓여있다.
  어쩐지 용문사와 잘 어우러질 듯한 현재의 주지 정보석 스님은 너와 내가 한우리되는 잘사는 우리세계 건설을 주장하시는 큰 뜻을 지닌 분으로서(「인과불변」등의 저서가 있음) 이곳을 본격적인 지장보살기도 도량으로 발전시키려는 의지 또한 대단하다.
  현재 천일 지장기도중으로서 그 힘으로 고사의 풍모를 일으키기 위해 범종불사 등 각종의 불사를 계획하여 사찰을 일신하려 노력하고 있다.
  아직도 내우외환이 끊이지 않는 우리의 실정이기에, 과거에 그러했듯이 용문사 지장보살님의 크신 원력이 되살아나 다시 한번 수국 사찰의 면모가 갖추어지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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