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닝 휠(Turning Wheel)」을 통해 듣는 미국참여불교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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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 휠(Turning Wheel)」을 통해 듣는 미국참여불교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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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04.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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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들려오는 풍경소리

미국불교의 여러 가지 모습들 가운데 두드러진 양상 중 하나는 사회적 현안과 이슈에 대한 관심과 참여이다. 위로는 지혜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한다는 명제는 종파와 문화 그리고 지역을 초월하여 모든 불교 커뮤니티가 추구해야 할 실천 강령이겠지만, 구체적인 사안에 대하여 정확한 불교적 처방을 만들어 목소리를 내고 행동한다는 것은 간단한 일은 아니다. 소위 참여불교(Socially Engaged Buddhism)라고 불리는 이 불교운동은 불법에 대한 정확하고 심오한 이해를 필요로 할 뿐더러 자신의 정파적 견해와 입장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있어야 하며, 또한 다루고자 하는 세속적 사안에 대한 식견과 지성을 겸비했을 때 비로소 그 최소한의 조건을 갖추었다 할 수 있는 차원 높은 불교운동이다.
긴 역사적 안목에서 볼 때 아시아의 여러 불교전통과 대응하는 의미에서 논의되는 ‘미국적 불교’의 성격이 아직은 미완성의 단계라는 진단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대중적 기반을 갖출 만큼 길지 못했던 역사의 문제이지, 미국불교를 구성하는 개개인의 신심과 열정 그리고 자질의 문제는 아니다. 실제로 미국의 비아시아계 불교인은 전체 인구에 비하면 낮은 비율이지만, 많은 연구에서 밝혀진 것처럼 대부분의 구성원들이 미국사회의 중상류 이상의 지식인 그룹이다. 대체로 사회적 책임감이 강한 이 범주의 사회 구성원들이 불교와 조우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참여불교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20세기부터 본격적으로 건설되고 있는 미국불교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 발현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진단해 본다.
미국에서 참여불교의 흐름을 주도하는 단체는 ‘불교평화우의회(Buddhist Peace Fellowship, BPF)’이다. BPF는 ‘서구 최초의 참여불교단체’로서, 1978년 로버트 에이트켄(Robert Aitken) 등에 의해 설립되었다. 이후 기관지 「터닝 휠(Turning Wheel)」을 통하여 인종주의, 테러리즘, 걸프전쟁 등 미국사회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주요 이슈가 되고 있는 사안들을 끌어안고 불교적 비전을 제시해 왔다.
그러면 「터닝 휠」 2009년 가을/겨울호의 주요 기사 두 꼭지를 통해, 미국 참여불교의 방향성이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지 살펴보자. 이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줄 것이며, 아울러 한국불교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관점을 생각해볼 수 있는 참고자료가 될 것이다.

● 이란은 우리의 적인가?

「터닝 휠」 2009년 가을/겨울호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띤 글은 ‘이란은 적인가(Is Iran Enemy)?’라는 에세이이다. 이 글의 필자인 레베카 그리핀(Rebecca Griffin)은 미국의 시민단체인 ‘Peace Action West(PAW)’의 정치부 간사로서, PAW는 미국정부의 국제관계에 있어서 평화적 외교정책을 유도하고 촉구하기 위해 설립된 시민단체이다. 이 글에서 그리핀은 이란과의 관계에 있어서 미국의 비군사적 해결책을 견인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이란인들의 진솔한 평화의 목소리를 동영상에 담아 미국민에게 전달하고자 PAW 대표단의 자격으로 이란을 직접 방문하였다고 적고 있다.
미-이란 관계에 있어서 그리핀이 지적하는 가장 큰 장애는 이란의 실상에 대한 미국민의 무지이다. 정치인과 미디어에 의해 이란은 끊임없이 왜곡되어, 여론 조사에 의하면 수백년간 한 번도 침략전쟁을 일으킨 적이 없는 이란이 미국민들에게 최대의 위협으로 꼽히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핀에 의하면 미국민들이 미-이란 관계의 역사에 무지한 반면 이란인들은 1953년 민주적으로 선출된 모하메드 모사데크 수상의 축출에 미국이 관여하였으며, 또한 100만 명의 인명을 살상한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미국이 사담 후세인을 지원하였다는 사실을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럼에도 미국인으로 이란을 방문한 그리핀에게 이란인들은 미국 여행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환대를 해주었다고 필자는 진술한다.
이란에는 묵과할 수 없이 심각한 인권 문제도 있지만 그렇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전체주의 사회라고는 말할 수 없으며, 대부분의 이란인들이 TV와 인터넷을 통해 끊임없이 정보를 접하고 습득할 수 있으며 다양한 서구문화가 퍼져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미국인과 이란인 사이에는 많은 유사점과 차이점이 있지만, 유사점을 인정하고 차이점을 존중하여 우리 모두를 보호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할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 침묵을 극복하며

앨리스 워커(Alice Walker)의 ‘침묵을 극복하며(Overcoming Speechlessness)’라는 글 역시 국제이슈를 중요하게 부각한 글이다. 이 글의 필자 앨리스 워커는 영화로도 만들어진 소설 ‘칼라 퍼플(Color Purple)’의 원저자이며, 퓰리처상과 전미도서상을 수상한 바 있는 대작가이자 불교수행자이다.
워커는 폭력과 살상이 난무하는 르완다, 콩고 그리고 팔레스타인/이스라엘을 방문하며 보고 들은 일화를 토대로 이 글을 썼다. 워커는 아프리칸-아메리칸 여성 작가로서, 평화운동가로서, 그리고 불교수행자로서의 관점에서 폭력과 갈등에 대한 깊은 성찰과 사유를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함께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이고 있다. 이 글을 통해 전 세계의 폭력과 비극은 인간의 탐욕과 증오로부터 비롯되었으며, 미국 밖에서 일어나고 있는 그러한 비극들이 사실은 미국의 역사 속에서도 유사한 패턴으로 벌어져 왔었음을 자신의 흑인 민권운동 경험, 유태인 전 남편과의 결혼생활 등을 통해서 진술하고 있다. 또한 폭력과 살상이 난무하는 르완다, 콩고 그리고 팔레스타인/이스라엘에서 빈번한 종족갈등, 영토분쟁이 구미의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비롯되었다고 지적한다.
아프리카의 천연자원에 대한 유럽 열강들의 욕심은 아프리카인들 사이에도 많은 갈등과 분열을 일으켜 왔는데, 그러한 갈등은 개인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비극의 얼굴로 찾아온다. 콩고에서 만난 제네로제(Generose)라는 여인으로부터 들은 일화, 어느 날 총으로 무장한 괴한들이 집으로 들이닥쳐 음식을 요구했다. 약간의 음식을 제공했지만 만족하지 못했던 괴한들은 병든 남편의 기척을 듣고 단숨에 찢어 죽였다. 그리고는 제네로제의 다리를 잘라 여섯 조각으로 낸 후 프라이팬에 익혀 그녀의 아들에게 먹으라고 강요했다. 거부하자 곧바로 살해했다. 그들은 팬에 익힌 다리를 딸에게 강요했다. 공포에 질린 딸이 엄마의 익힌 고기를 먹었다. 다리를 잘린 엄마는 기어서 도망을 쳤고 그 후 딸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고 했다.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런 그 이야기를 그녀는 서슴없이 했고, 그 이야기를 들은 워커는 집으로 돌아와 앓아누워야 했다. 워커의 도반들은 그녀를 위로하기 위한 의식을 만들어 집전해 주었다. 워커를 푸른 잔디 위에 눕힌 후 꽃과 돌멩이, 그리고 우리를 안락케 하는 사람들의 사진(존 레넌, 페마 초드론, 달라이 라마 등)으로 에워쌓았다. 그리고는 다 함께 인류애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팔레스타인 가자(Gaza) 지구. 이스라엘 군대가 22일간 폭격했던 그곳이다. 1946년 팔레스타인은 소수의 유태인촌이 산재한 팔레스타인의 영토였다. 수년 후 UN의 분할계획에 따라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대략 절반씩 갖게 되었으나, 오늘날 팔레스타인들은 자신의 나라에서 난민이 되어 가자와 웨스트 뱅크에 있는 수용소에서 살고 있으며 전체 땅이 이스라엘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인디언을 죽이고 땅을 빼앗은 것은 그들이 야만인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땅에 대한 그들의 탐욕 때문이다. 마치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땅을 원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 탐욕과 잔혹성을 신화의 산 속에 숨겨 둔다. 마치 그 땅은 황무지였다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야만인이었다는 등의 신화 말이다. 미디어와 헐리우드를 통해 끊임없이 생성되는 이 신화 속에서 언제나 이스라엘은 다윗 그리고 팔레스타인은 골리앗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카이로에 도착. 그곳에서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국경을 너머 가자로 가는 버스를 탔다. 가는 길에 레이첼 크레이그(Rachel Craig)의 부모로부터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미국인 대학생이었던 레이첼은 2003년 가자에서 국제연대운동(International Solidarity Movement)의 일원으로, 팔레스타인 가옥을 파괴하려는 탱크를 가로 막았다. 밝은 점퍼를 입은 젊은 여성을 보면 탱크는 멈출 줄 알았다. 탱크는 멈추지 않았고 그녀는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르완다, 콩고 그리고 팔레스타인/이스라엘의 비극을 목격하며 워커는 문자 그대로 말할 수 없는 공포에 질려 할 말을 잃었다. 보았다 해도 표현할 수가 없었고,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그렇게 추락할 수 있는지 믿을 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그러한 침묵은 우리를 정말로 필요로 하는 사람들, 힘없는 여성과 어린이 그리고 악의 세력에게 숫자의 열세에 놓여 있는 양심적인 사람들의 고난을 더욱 지속시킬 뿐이다. 침묵은 극복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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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권 ː 월간 「불광」 미주지사장 & Dharma BOOM of America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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