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불장(選佛場)을 찾아서/천태종 구인사 재가불자 하안거
소백산 구인사
(救仁寺). 대한불교천태종의 총본산(總本山)이다. 천태종 중창조인 상월원각 스님이 이곳에 터를 잡고 1945년부터 정진을 시작한 이후 수많은 수행자들이 거쳐간 대찰(大刹)이다. 일주문에 붙어 있는 ‘일심(一心)이 상청정(常淸淨)하면 처처(處處)에 연화개(蓮華開)니라’는 상월원각 스님의 말씀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조금 더 올라가 천왕문을 지나니 인광당을 비롯한 수많은 전각들이 오밀조밀 붙어 있다.경내에 들어서자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정진 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온다. 인광당과 설선당, 광명당을 비롯한 경내 곳곳에서 관음정진 소리는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범종각 옆에서, 전각 계단 아래서, 공양실 장독대 위에서도 정진소리가 이어진다. 바로 천태종 불자들이 하안거를 맞아 정진하는 염불소리다.
구인사 광명당에서 관음정진을 하고 있는 재가불자들의 모습.
‘주경야선’
천태종 재가불자 하안거는 지난 8월 4일부터 진행되고 있다. 기간은 한 달. 하안거에는 남자 신도 192명, 여자 신도 776명 등 총 968명이 동참했다. 하안거 참가자 외에 4박 5일 정진대중과 참배객 등을 합하면 구인사에는 모두 1,500여 사부대중이 함께 공부하고 있다. 하안거에서는 아침 6시에 일어나 오전 2시간 30분, 오후 4시간, 밤 6시간 등 총 12시간 30분 동안 정진한다. 하루 기도는 다음날 새벽 4시가 돼서야 끝난다. 2시간여 동안 잠을 자고 다시 정진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대중들은 정진해야 하는 모든 시간 동안 앉아 있지 않는다. 천태종의 수행가풍이 주경야선(晝耕夜禪)이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낮에는 일하고 밤에 공부한다. 그래서 구인사 입구에 있는 등방(燈房)을 찾아 다시 절 밖으로 내려갔다. 이곳에서는 상월원각 스님 탄생 100주년 장엄을 위해 용과 봉황, 코끼리 등이 제작되고 있었다. 안거에 15번째 들어온 장자현(56, 대전시 대덕구 목상동) 씨는 “이렇게 낮에 일을 해도 밤에는 졸지 않고 더 열심히 기도를 한다. 등을 만드는 것도 수행이다.”며 웃었다.
발걸음을 농장으로 돌렸다. 구인사에서는 모두 7만1,000평에 달하는 땅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사과와 배 같은 과수는 물론 콩, 쌀, 채소 등 절에서 먹는 모든 것을 직접 생산한다. 도라지 밭에서 만난 공도환(52, 경기도 평택시 통복동) 씨는 “구인사에서 공부를 한 번 해보면 다시 올 수밖에 없다. 평생 공부만 하고 싶다.”고 말했다. 평택에서 물류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공 씨는 30여 명의 직원들이 수련회에 참가한다고 하면 ‘유급휴가’를 줄 정도로 정진을 장려하고 있다.
구인사 인근에서 일하는 불자들은 주경야선을 실천하고 있다. |
밤새 끊이지 않는 ‘관세음보살’ 염불
소백산 너머로 해가 넘어가자 불자들은 각자의 수행공간으로 돌아왔다. 한 전각 당 수백 명의 불자들이 함께 정진하기 때문에 개인이 쓸 수 있는 공간은 넓지 않다. 불자들은 가로 90cm, 세로 180cm의 작은 공간에서 기도하고 생활한다. 불편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노정은(25, 금강대 불교학과 4학년) 씨는 “기도를 하다 보면 오히려 편안해진다.”며 “공간의 크기는 수행에 아무런 변수가 되지 못한다.”고 잘라 말했다.
인광당에서 만난 손득애(40, 부산시 기장군 기장읍) 씨는 자녀들과 함께 안거에 동참했다. 명주(13) 양과 정운(9) 군은 엄마와 함께 두 번째 안거를 나고 있다. 손 씨는 “여기서 애들하고 잘 생활하는 것이 기도”라며 “모든 엄마들이 내 아이뿐만 아니라 남의 아이도 똑같이 보살피려 한다.”고 말했다. 명주 양은 “농장에 가서 감자도 캐고 개구리도 보면서 재미있게 놀고 있다.”며 “학원에 가지 않는 것이 제일 좋다.”고 말했다.
인광당 5층에서 정진하는 유문두(74, 부산시 영도구 봉래동) 씨는 60번째 안거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1970년대 후반 건강이 악화돼 구인사를 찾은 유 씨는 1980년 동안거를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딱 두 번을 제외하고 안거에 참여해 왔다고 한다. 안거에 불참한 것은 어머니가 위독했을 때와 자신이 이끌던 일에서 빠질 수 없었던 때 두 번이다. 나이에 비해 꽤 건강한 모습인 유 씨는 “부처님 법은 묘하다. 공부할수록 새롭다. 안거를 마치고 나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다. 앞으로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안거에 참여할 것이다. 꼭 안거에 동참해 직접 환희심을 느껴보라.”고 강조했다.
천태종 총무부장 무원 스님은 “관세음보살 정진을 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하나로 마음이 모아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는 관음정진을 생활화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1,000여 명의 불자들은 9월 3일 해제법회를 끝으로 하안거를 마쳤다. 그리고 각자의 생활로 돌아갔다. 그렇지만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정진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일념으로 염불하면 참생명 얻을 것”
천태종 안거 수행의 특징을 설명해 주신다면?
스님 안거와 함께 재가자의 안거를 같이 실시하고 있다. 스님 안거는 연 1회 겨울철에 55일 동안 진행하며 재가안거는 여름과 겨울에 각각 한 달씩 2번 한다. 천태종은 명실상부하게 사부대중이 함께 수행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성별과 연령 제한이 없어 조부모, 부모, 자녀 3대가 함께 모여 수행을 하는가 하면, 야간 기도 수행과 함께 주간에는 농장 등에 나가 주경야선과 선농일치(禪農一致)를 체험한다.
스님들의 안거를 따로 실시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스님들의 안거는 재가자 동안거가 끝난 후 실시한다. 대개 음력 12월 중순부터 시작된다고 보면 된다. 평소 우리 종단 소속 스님들은 기본적으로 구인사에 머물며 수행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1년 내내 안거와 같은 생활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재가불자들이 안거를 진행할 때는 수행지도를 하고 또 평소에는 주경야선의 수행생활을 하기 때문에 비교적 일이 많지 않은 겨울에 안거를 진행하는 것이다.
재가자 안거가 101번째입니다. 역사에 대해 설명해 주십시오.
상월원각 대조사께서 1945년도부터 구인사에서 주석하셨다. 그때부터 사실상 안거를 진행했다. 그러다 1961년 하안거부터는 공식적인 안거가 시작됐다. 그렇게 이어진 것이 벌써 101번째다. 지난 100번째 안거 때의 통계를 내보니 구인사에서 20회 이상 안거에 동참한 사람들이 245명에 달했다. 최대 88번 동참한 불자도 있었다. 앞으로도 재가자 안거는 더 확산될 것으로 생각한다.
왜 관음정진을 합니까?
천태종은 『법화경』을 소의경전으로 한다. 『법화경』 ‘관세음보살 보문품’에는 “선남자여, 만약 무량 백천만억의 중생이 있어서 갖가지 괴로움을 받을 때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듣고 일심(一心)으로 부르면 관세음보살은 곧 음성을 두루 관(觀)하고 모두 해탈을 얻게 하느니라.”고 한다. 이것이 바로 관음신앙의 대전제다. 관세음보살을 오직 일념으로 부르는 동안 어떠한 고난이나 번뇌에 의해서도 오염되지 않는 자기 자신의 참생명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안거 수행자들은 ‘관세음보살’을 일심 칭명(稱名)하는 가운데 염불과 선(禪)을 체험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천태종에서는 ‘관세음보살’을 마음에 담아 부르고, 그 생각에 집중해 마음의 번뇌를 가라앉혀 지혜를 관하도록 지도한다.
한 달간 정진을 하면 불자들이 변화를 체험할 수 있나요?
안거를 통해 마음의 고요와 안정 그리고 평안을 얻는다고 한다. 한 달간 정진하다 보면 온갖 번뇌와 수마, 그리고 자신과 싸워야 한다. 이런 어려움을 이겨내고 자기를 항복시키다 보면 염불삼매를 체험할 수 있다. 쉽지는 않지만 꾸준히 하다 보면 분명 무엇인가를 체험할 것이다. 염불수행을 통해 우리 불자들은 누구나 업장소멸은 물론 수승한 공덕을 지을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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