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모든 백성께 부처님 한 분씩”
“한반도 모든 백성께 부처님 한 분씩”
__ 옛 어른들은 강원 시절부터 붓을 잡고, 평생을 이어갔다. 그런 기운을 지금은 보기 어렵다. 경봉 스님은 선필禪筆이고, 석주 스님의 필력은 따라갈 수 없다. 20대 눈 푸른 수좌 시절에 극락암 삼소굴 경봉 노스님께 전각篆刻한 것을 보여드렸다. 노스님은 그 전각을 보고 반신반의했다. 그 전각 속에 당신의 선필이 보인 것이다. 선과 각이 어울리기에는 너무 젊은 수좌였기 때문이다. 이후 “내 도장을 파봐라.”는 노스님의 권유로 마음을 일으키고, 은사 석정 스님께서 전각의 대가들을 연결해주었다.
__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른다. 문득 거울을 보니, 머리가 새하얗다. 자세히 보니, 돌가루였다. 하루인가, 이틀인가. 툭툭, 머리를 털었다. 각을 할 때도, 그림을 그릴 때도 그렇다. 오롯이 혼자다. 작은 틈이 있으면 쉬지 않고 써본다. 주변 종이 위로 붓이 지나간 흔적들이 쌓여 있다. 잠을 자다가 문득 깨어나면 꿈속에서 떠올랐던 장면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기록한다. 쓰고 기록하는 일, 오래된 습관이다. 선화에 쓰인 시구들이 세상에 나오게 된 것도 그러하다.
__ 스님에게는 각刻, 서書, 화畵를 하는 근육이 있다. 이 근육은 늘 잡아놓지 않으면 안 된다. 각, 서, 화를 악필握筆로 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힘 때문이 아니다. 원력이다. 마지막 죽을 때까지 놓지 않겠다는 것. 가없는 중생을 기어코 건지겠다는 것이다. 모든 작품에 부처님이 들어간 것도 이런 원력이 바탕이다. 인불印佛. 스님 이후로 조금씩 사람들이 작품 속에 부처님을 넣기 시작했다. 스님의 원력은 한반도 모든 백성들이 스님의 선화 한 점씩, 부처님 한 분씩 갖는 것이다. 사진. 최배문 글. 김성동
수안 스님
1940년 경남 통영에서 태어났다. 1957년 출가 이후 평생 선 수행과 그림 그리기, 전각, 시 쓰는 일을 하며, 지금은 영축산 문수원에서 수행 정진하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1979년 이리 이재민 돕기 선묵전을 시작으로, 1981년 부산에서 첫 개인전을 가진 이후 한・일・중 고승선묵 초대전(1979-81), 프랑스 파리 초대전, 모나코 몬테카를로 현대미술전 수상(1985), 중앙승가대학 포교교육센터 건립 5회 초대전(1986-87), 프랑스 민주혁명 2백주년 초대전, 모로코 카사블랑카 라바 초대전, 몬테카를로 현대미술전 수상, 독일 서베를린과 쾰른 초대전(1989), 프랑스 곽온박물관 초대전(1990), 아일랜드 Michael Mulcahy 2인 합작 초대전(1991), 프랑스 파리 뤽상부르궁 초대전(1992), 대만 태평양 문화기금회 초대전, 서울 경인미술관 초대전(1993-96),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 마네쥬 전시홀 초대전(2001), 러시아 이르쿠츠크 초대전 (2012),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초대전(2013) 등 수많은 국내 및 해외 전시회를 가졌다. 지은 책으로는 산문집 『참 좋다 정말 좋구나』, 『아름다운 선물』과 시집 『산이 텅 빈 날』, 『오소라』, 『나의 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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