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인터뷰] 통도사 반야암 지안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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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인터뷰] 통도사 반야암 지안 스님
  • 김성동
  • 승인 2018.05.30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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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생각하는 마음을 항상 일으켜야 합니다.”

3년 전 인도순례 때였다. 지안 스님은 뙤약볕이 내리는 기원정사 북쪽 앙굴리마라 스투파 터에서 대중들에게 설법하고 있었다. 10여 일간 이어진 인도의 불교 유적지마다 스님의 설법은 초기불교와 부처님의 생애, 대승불교를 넘나들었다. 각 순례지마다 경전에 나타난 수많은 사건들을 연결하며, 2천 6백 년 전의 시간을 오늘로 불러왔다. 스님의 전통 강원과 강맥의 이력을 볼 때 이런 불교사의 횡단은 의외다. 한국불교 승가교육에서 초기불교와 부처님 생애, 대승불교를 교육과정에 담았던 때가 불과 2009년 때였음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하다. 1970년에 고려대 법학과를 중퇴하고 통도사 벽암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30년이 넘게 한문 경전을 강의한 대표적인 학승이다. 내전뿐이 아니다. 외전도 불교를 이해하는 도구로 여겼고, 어느 덧 스님이 소장한 책은 1만 5천여 권이 넘었다. 그래서일까. 스님의 글과 법문 주제는 때론 40대 학인처럼 묵직하면서도 72세의 너그러움이 함께 존재한다.   

사진 : 최배문

|        적게 먹고, 적게 입고, 적게 자는 것

- 칠순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열정적으로 활동하십니다. 하루 일과가 어떠신가요?

“4시 전에 일어납니다. 간단하게 요가하고, 5시에 카페(다음카페 ‘반야암 지안 스님’)에 매일 부처님 말씀을 올립니다. 그리고 책 읽고, 아침공양을 한 후 반야암 주변을 포행합니다. 오후에는 할 일 없이 놉니다(웃음). 봄에는 나무를 자주 심고 있습니다. 반야암 주변에 나무 심는 것이 취미입니다. 해마다 심어요. 임제 스님도 나무를 많이 심었고, 일본의 양관(1758~1831) 선사도 유명한 일화를 남겼잖아요. 거처하는 집 마루 밑에 대가 하나 솟아 올라오니, 그것을 살리기 위해서 마루를 뜯어냈고, 나중에 더 크니 지붕까지 뜯어냈습니다.“  

- 어디에 심으시나요?

“반야암 주변에 봄이면 매화를 많이 심었고, 동백, 야생화도 심었죠. 온갖 수종이 많습니다. 지금 보이는 것들이 대부분 심었던 겁니다. 1999년부터 반야암을 지었으니까, 그때부터 해마다 봄 되면 나무 심는 것이 취미입니다. 신도들에게도 나무 심으라고 합니다.(웃음)”

- 방생을 나무 심는 것으로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 좋죠.”

- 몇 시에 주무시나요?

“늦게 잡니다. 한 11시에서 11시 반에 잡니다.”

- 수면 시간이 너무 적은 것 아닌가요?

“출가 후 지금까지 수면 시간은 평균 4시간 정도입니다. 충분합니다. 육체노동을 하지 않으니까요. 중노릇 하면서 그것 하나 좋은 습관이 되었습니다. 나는 강원 학인들을 가르치면서 늘 이야기합니다. 적게 먹고, 적게 입고, 적게 자는 것이 수행이다. 그게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을 없애는 것과 관련 있어요.”

- 매주 정기적으로 강의를 하시는 곳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일주일에 세 번은 정기적으로 강의가 있어요. 월요일에는 마산의 반야학당에서 강의가 있고, 화요일은 이곳 반야암에서 경전교실이 있습니다. 매주 수요일에는 개인적으로 반야심경 사경을 하고 있습니다. 금요일에는 서울에서 경전공부모임인 패엽회에서 『화엄경』을 함께 읽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화요일 오후에 부산불교연합회에서 『선가귀감』 강의가 있는데, 곧 끝납니다. 외부에서 법문을 요청하면 가능한 가보려고 합니다.”

- 경전공부모임인 패엽회 모임은 오래 전부터 이어졌습니다. 

“벌써 11년 전이네요. 서울 조계사 인근에서 주로 대승경전을 봅니다. 최근에는 『화엄경』을 공부하는 것으로 했습니다. 『화엄경』이 모두 58만 자 정도 됩니다. 원문을 한 자도 빠짐없이 다 보자, 이렇게 의논을 했어요. 아마 몇 년 걸릴 겁니다.”

 

|        불교의 대중화, 불교의 지성화

- 최근 스님들과 신도들은 초기경전인 니까야를 많이 보고 있습니다. 대승경전은 어렵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물론 초기경전보다 『화엄경』이 어렵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한국불교가 화엄불교였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화엄경』이 대승불교에서는 최고의 경전입니다. 중국에서도 화엄과 선은 회통되어 있습니다. 우리들이 화엄에 대해 좀 더 진지한 자세로 임하면 그 정수와 핵심을 이해할 수 있는데, 막연히 어렵다는 그릇된 선입견을 스스로 만들고 있습니다. 또 불교는 마음을 닦는 것이고, 『화엄경』은 온몸으로 행하는 경전입니다. 보현행원이잖아요.”    

- 초기불교와 대승불교가 조화를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초기불교가 중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초기불교는 기본으로 해야죠. 그런데 대승의 우수성을 우리는 바로 이해해야 합니다. 제가 이런 비유를 합니다. 초기불교는 기본 셈본입니다.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 이런 것은 기본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방정식, 미적분을 합니다. 대승은 방정식이고 미적분입니다. 차원이 높다고 이(대승)를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대승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우리 한국불교 전통은 대승입니다.”

- 스님께서는 내전과 외전을 많이 읽은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호진 스님(경주 기림사)과 내가 친해진 것도 책으로 대화가 잘 되기 때문입니다. 스님도 책을 아주 많이 읽으셨어요. 불교가 대중화되려면 먼저 불교가 지성화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불교를 자기화시킬 수 있습니다. 호진 스님과는 이런 문제로 대화를 많이 합니다. 스님들이 목사와 신부에 비해 책을 제일 적게 읽어요. 그것은 교양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어요. 이것은 수행과 다른 문제입니다.” 

- 최근에는 어떤 책을 읽고 계신가요?

“『화엄경현담소』를 원전으로 읽고 있어요. 서산 스님이 외전을 보지 말라고 하셨지만, 요새는 학문도 통섭하고, 종교도 소통하는 시대입니다. 필요한 지식을 습득해야 합니다. 수행자도 불법을 전법하기 위해서는 인문적인 소양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갖추어져 있어야 합니다. 교양이 없으면 수행도 할 수 없습니다.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단순한 생활이었지만, 오늘은 정보사회, 인공지능 시대입니다. 화두를 관할 때는 다르겠지만, 우리 사회의 교양을 갖추어 합니다.” 

 - 대승경전을 볼 때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할까요?

“대승경전은 역사적인 사실을 기술한 경전이 아닙니다. 굳이 이야기하면 선정禪定 의식에 나타난 경계를 묘사했다고 할 수 있어요. 비유하면 사람이 잠을 자다 꿈을 꾸면, 꿈은 현실과 다르지만, 몽중夢中에서 보고 들은 대로 꿈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듯이 선정의 경계에서 나타난 것을 설해놓은 것이 대승경전입니다. 『법화경』「여래수량품」을 보면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내가 정반왕의 아들로 태어나 출가해서 보리수 아래서 정각을 이루었다고 알고 있지만, 나는 이미 백천만 억 나유타겁 전에 성불했노라.’ 『법화경』에 비구들 5천 명이 법화법문을 알아들을 수 없다고 자리를 떠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쭉정이들은 다 가고 알맹이들만 남았다’고 합니다. 또 『화엄경』에는 지혜제일 사리불이 화엄법문을 알아듣지 못하고 귀머거리가 되었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대승경전은 법신으로 부처님을 앉혀서 설하고 있습니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초역사적입니다.” 

 

|        대승경전은 선정의 경계를 드러낸 것

- 초기경전과 대승경전에서는 부처님을 바라보는 시각도 차이가 있습니다. 

“주변에서 대승을 공부한 내가 초기를 전공한 호진 스님과 뜻이 잘 통하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세요. 사람들은 대승이다, 소승이다, 선이다, 교다, 이렇게 분리해서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부처님은 인간적으로 가장 성숙한 분입니다. 불격佛格이란 것은 부처님 인격입니다. 사람의 품격을 인격人格이라고 하는데, 부처님은 불격입니다. 인간성이 고도로 성숙된 경지를 말합니다. 인간성이 가장 성숙하면 그야말로 자비입니다. 시비논쟁이 필요 없습니다. 시비논쟁은 자기주장을 내세우기 위해서 대립하고 우열을 논하는 겁니다. 『금강경』에서 말하는 상相이 남아 있는 겁니다. 대승이든, 소승이든, 교든, 선이든 불격에 올라가 있는가가 핵심입니다.” 

- 부처님의 삶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부처님은 한 번도 화를 내신 적이 없는 분입니다. 또 부처님은 가장 위대한 포기를 하신 분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잘 살펴야 합니다. 포기를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부처님은 포기의 폭이 엄청 넓습니다. 부처님 법에서는 이 포기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또 부처님께서는 처음에는 제자들에게 계율을 지도하면서 가르침을 베풀었어요. 어린 아이를 부모가 지도하듯이 가르쳤어요. 세속에서도 오계만 생활 속에서 편안하게 지니고 있으면 세상은 저절로 화합하는 계기가 마련될 겁니다. 부처님은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에 실수가 나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삼업이 곳곳에서 실수를 합니다.”

- 스님은 불자들이 인도순례를 꼭 가라고 하셨습니다. 스님께서도 많이 가셨고요. 

“나는 인도순례를 19번 했어요. 성도지에서 예불하면 아주 뭉클합니다. 성도지에서는 『화엄경』 대의를 설법하고, 열반지에 가면 『열반경』 대의를 설명하면서, 우리 시대 부처님이 다시 나타났으면 하는 기원을 많이 합니다. 또 『법화경』은 영축산에서, 『금강경』은 기원정사에서 강의합니다.”

- 부처님 순례지에서 대승경전을 법문하시는 것이군요. 

“대승에서는 『화엄경』을 제일 먼저 설한 경전으로 봅니다. 부처님이 정각을 이루고, 해인삼매에 들어있을 때, 삼매 중에 나타난 정각의 경계를 그대로 보여줬다고 합니다. 

- 대승불교에서 바라보는 부처님, 초기불교에서 바라보는 부처님이 다른데, 불자는 어떻게 부처님을 이해해야 할까요?

“나라마다 풍습이 다르기 때문에 불교가 전파되고, 뿌리내린 것에 따라 불교도 달라집니다. 인도불교와 중국불교, 한국불교가 다 다른 것입니다. 각 나라의 토양과 습합되면서 나라별로 특징이 생깁니다. 그 특징을 보고 다르다고 합니다. 그러나 본질은 같습니다. 예컨대 물과 불은 상극이지만, 물의 성질이나, 불의 성질은 똑같습니다. 법성法性은 같은 것입니다.”

사진 : 최배문

|        불교를 관광하지 말라

- 불자들은 그 본질을 이해하는데 어려워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불자들이 공부를 좀 더 해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나는 중생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불교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내가 비록 지금 중생이지만, 부처를 닮아보자, 부처를 향해서 향상해보자고 의지를 가지는 것이 불자입니다. 신도들이 스님들에 비해 수준이 낮다고 생각하는데, 그것도 고정관념입니다. 고쳐야 해요.”

- 어떻게 고쳐야 할까요?

“부처를 향해서 똑같이 마음을 일으켜야 합니다. 경經에서는 이를 발심이라고 합니다. 공부도 성숙하는 과정인데, 신도님들이 첫 계단에서 머물고 있어요.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데요. 내가 올라가야 합니다. 등산도 꾸준하게 올라가야 정상을 볼 수 있습니다. 힘들다고 골짜기 경치 좋은 곳에 앉아서 놀고 있으면, 정상에서 보는 확 트인 모습을 볼 수 없어요.”  

- 스님 말씀처럼 계단을 올라가듯 공부를 하려면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요?

“부처님 생각하는 마음을 항상 일으켜야 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공부가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삼전법문三轉法門을 하셨습니다. 법문을 세 번 바꿔가면서 설하셨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사성제四聖諦를 보면, 부처님께서 ‘인생은 괴로움이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를 시전示轉이라고 합니다. 또 ‘나는 괴로움을 뼈저리게 느꼈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설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증전證轉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당신도 나같이 한번 해봐라’하는 것이 권전勸轉입니다. 이를 삼전三轉이라고 합니다. 불교는 구경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강둑을 거닐면서 흘러가는 강물만 바라보는 것은 사이트시잉(sightseeing) 밖에 안 되잖아요.” 

- 사이트시잉요? 

“불교 관광입니다. 관광만 하지 말고, 물가에서 손을 씻고, 물의 온도도 느껴야 합니다. 불법을 법수法水라고도 합니다. 용수보살도 『지도론』에 ‘불법이라는 대해大海는 믿음으로 들어와서 지혜로 걷는다’는 말이 나옵니다. 불교를 관광하는 입장에서 이야기하면 안 됩니다. 손을 물에 담가야 합니다. 그렇게 믿어야 합니다. 불교가 피부에 닿아야 좋은 점이 느껴집니다. 내가 아는 거사님은 매일 108배를 합니다. 절할 때 항상 부처님을 생각합니다. 인품이 온화하세요. 그렇게 하면 됩니다. 근데 우리는 부처님을 잊어버리고 삽니다. 눈에 볼 때만 보이고, 안 볼 때는 사라집니다. 잠을 잘 때도, 일할 때도, 말할 때도 마음속에 부처님이 있는 겁니다. 그러면 불교가 자기 것이 됩니다.”

- 불자들이 일상에서 부처님을 생각하는 것을 어려워하기도 합니다. 

“의도적으로 해야 해요. 선禪에서도 ‘행주좌와어묵동정行住坐臥語默動靜’이라고 하잖아요. 부처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확고하게 심어져있으면 그것이 불심佛心입니다. 『열반경』에서는 ‘자기 불성을 믿는다’는 말이 있어요. 내 마음의 성품이 불성입니다. 현대인들은 자기 생각에 빠져있어요. 단견에 빠진 것입니다. 그래서 자살하는 사람도 많아요. 지금 현실이 고통스러워도 고통이 수행을 도와주고, 괴로움도 인생이란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고苦와 락樂은 같은 겁니다. 성숙된 이들은 괴로움을 즐거움으로 전환시킬 수 있습니다.”

 

|       여전히 지속될 인간의 물음, ‘나는 누구인가?’

- 의도적으로 부처님을 생각해본다는 것인데, 지속적으로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좋은 습관을 하나 만들어야 합니다. 매일 절을 하던지, 매일 염불을 하던지, 사경을 하던지 그래야 합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은 『반야심경』을 매일 사경해서 원을 성취했어요. 주의해야 할 점은 방일放逸에 빠지면 안 됩니다. 방일하면 몸과 마음의 피로 지수가 높아지고, 삶에 정성이 떨어지게 됩니다.”  

- 우리 불자들은 일상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까요. 

“불자들은 일단 모습이 편안해야 합니다. 부처님 얼굴이어야 합니다. 항상 밝은 표정과 온화한 모습을 해야 합니다. 무재칠시無財七施 중 첫 번째가 화안시和顔施라고 합니다. 얼굴로 보시한다고 하는데, 『잡보장경』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사회가 이권을 따지고 경쟁에 뛰어난 사람을 요구하는 것처럼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금은 소박하고 편안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불자 중에는 남을 도와주는 일을 보이지 않게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제가 아는 거사님 한 분이 밀행으로 남을 도와준 일도 한참 뒤에 알았어요.”

- 지금 우리 사회는 탈종교의 흐름이 꽤 많이 나타납니다. 불교의 가르침이 2천 6백 년 전의 말씀인데, 오늘의 시대에도 왜 유효한지요. 

“시대마다 인간의 사고방식은 조금씩 변화합니다. 불교의 중요한 점은 인간이 인간으로서 자기 정체를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내가 누구냐?’ 하는 겁니다. 문화가 아무리 변화가 일어나도, 가장 중심테마는 자기 자신에 대한 것, ‘내가 누구냐?’입니다. 우리가 역사적으로 풍습과 문화가 달라도, 항상 새로운 발견이 있는 겁니다. 그것을 불교가 가르쳐줍니다.”

- 내가 누구인가 묻는 것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할 수 없는 인간의 물음이란 것이군요.

“인간이기 때문에 자각의 물음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돌아갈 곳은 자기 자신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부처님을 믿는다, 신을 믿는다는 것은 결국 타자에 대한 믿음입니다. 자등명법등명自燈明法燈明은 대승경과 초기경에 모두 나옵니다. 살다보면 언젠가 스스로 자각해야 할 계기가 옵니다. 자각하지 못하고 생애를 마친다는 것은 큰 허물입니다. 결국 우리는 자각해야 할 입장입니다. 심하게 말하면 불교는 교단이 없어도 불교는 망하지 않습니다. 불교는 자각하는 것이니까요.”

- 앞으로 스님은 어떤 일에 집중하실 것인가요?

“나는 불교를 위해 발심하는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더 만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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