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의 미래, 어린이 포교 |
미래 불교의 주역인 어린이 포교가 위기라고들 합니다. 콘텐츠도 부족하고 사람도 부족하다고 합니다. 어린이 법회를 운영하는 사찰의 수도 크게 모자랍니다. 어디에서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답답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불광이 어린이 포교를 취재했습니다. 어떤 콘텐츠가 어떻게 부족한지, 무엇을 활용해야 하는지 들여다봤습니다. 그동안 어린이 포교에 헌신해온 분들의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수 십 년간 어린이를 위한 방송프로그램을 만들어온 담당자들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였습니다. 어떻게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는지,어린이 법회는 어떻게 시작하는 것이 좋은지 살펴봤습니다.
01 어린이 포교와 콘텐츠 유윤정 |
어린이 불자가 자라나려면?
“스님! 여기는 어떻게 접어요?” “나연이도 해주세요!” 자용 스님이 어린이집 교실에 들어서자 아이들은 스님 껌딱지가 되었다. ● 아이들은 조막손으로 스님 어깨에 매달리고, 스님의 옆구리도 간질이며 자용 스님이 가르쳐주는 종이접기를 같이 따라 했다. ● “이렇게 스님 안 무서워하는 애들이 세상천지 어디 있어요. ● 정말 예쁘죠?” 아이들 이야기를 할 때면 표정이 밝아지는 자용 스님. 스님은 전국 사찰을 다니며 어린이 법회를 열고, 평창 극락사 연화유치원과 서울 연화어린이집 원장, 중앙승가대 부설 보육교사교육원장, BBS ‘룸비니 동산’ 진행 등을 맡으며 수천 명의 어린이 불자를 키워낸 새싹 포교의 산 증인이다. ● 198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어린이 포교에 깊이 매진해온 자용 스님을 만났다.
| 목청 높여 뛰노는 놀이터 연화어린이집
자용 스님이 대표로 있는 서울 안암동 국공립 연화어린이집은 주말에도 아이들 뛰노는 소리로 가득했다. 건물 도심에서도 자연을 만끽할 수 있기에 엄마들이 먼저 아이 손을 잡고 나온다. 안암동 개운산 초입에 오목하게 들어앉은 어린이집 마당에는 아이들을 위한 친환경 모래 놀이터, 국화가 가득한 꽃밭, 상추와 토마토를 키우는 텃밭이 있다. 마당에서는 장난감 자동차도 실컷 탈 수 있다. 자용 스님은 주말에 놀러 온 가족을 만나면 간식이라도 하나 더 챙겨주려 했다. 며칠 전 비가 오던 토요일에는 아이들이 맘껏 놀수 있도록 어린이집 3층 대강당도 열어주었다.
“우리 어린이집은 하나부터 열까지 어린이들 것입니다. 아이들은 뛰어 놀아야 해요. 주말에 이렇게 절 마당에 나와 놀아주니 얼마나 좋아요. 없는 간식이라도 사서 나눠줘야지요. 또 소리를 질러야 애들입니다. 이곳에서 아이들이 큰 소리로 웃고 떠든다고 타박하는 사람이 있다면 제가 나서서 말합니다. ‘저게 다 법문’이라고요. 그러다 보니 엄마들이 먼저 알고 오세요. 한 가족이 뛰어 놀기 시작하니 이제는 네다섯 가족이 주말에 옵니다.”
아이들이 주말에도 오기 시작하면서부터 선생님들도 돌아가면서 어린이집에 출근했다. 언제든 필요한 것을 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연화어린이집 선생님들의 원력이었다.
“절에선 조용히 해야 한다는 의식이 바뀌어야 해요. 이렇게 절 마당을 뛰어다니며 보이지 않게 불심을 키운 아이들은 불교유치원에 진학하고, 다시 초·중·고 법회로 인연 맺으며 불자로 성장합니다.”
자용 스님은 아이들이 절에 와 놀 수 있도록 절 마당을 개방해주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스님은 진정으로 불교의 미래를 위한다면 한 사찰마다 하나의 어린이집‧유치원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냈다.
“전국에 어린이집·유치원이 4만 곳이 넘는데 그중에 불교 어린이집의 수는 100곳이 채 안 됩니다. 25교구본사 중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곳이 몇 곳이나 될까요. 다행히 조계사가 국공립 어린이집 개원을 앞두고 있습니다. 적어도 교구본사마다 나서서 주택가 주변으로 어린이집·유치원을 운영한다면 앞으로의 상황은 달라질 겁니다.”
| 원력으로 꽃피운 어린이 불자
자용 스님에게 왜 아이들이 좋은지 묻자, “아이들은 순수 그 자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를 스펀지처럼 받아들이기에 더욱 소중하다는 것. 스님이 아이들에게 반해 어린이 포교에 힘쓴 지도 30년이 훌쩍 넘었다. 1980년대초 부터 스님은 주말만 되면 조계사, 수국사 등 서울 근교 사찰의 어린이 법회를 두 팔 걷고 이끌었다.
스님의 포교 원력은 1987년 전남 여수여천불교포교원에서 그 진가를 드러냈다. 스님이 여는 법회에는 매주 500여 명의 어린이들이 참석했다. 여름불교학교는 500명씩 세 번에 걸쳐 진행해야 할 정도였다. 전주 전북불교회관에서 지도법사를 할 때는 대형버스를 운영할 만큼 어린이 수가 늘었고, 평창 극락사에서는 수천 명의 어린이 불자를 길러냈다. 자용 스님은 어린이 불자를 만들려면 아낌없이 주는 것밖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스님들이 줄 수 있는 것들은 정말 아낌없이 다 내주셔야 합니다. 장학금도 많이 주고, 선물도 많이 주세요. 아낌없이 주면서 ‘우리 친구 법당에서 한 번 놀러와’ 해야 합니다.”
덧붙여 절에 왔을 땐 그저 재미있게 뛰어 놀 수 있도록 환경을 가꿔준다. 그저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해준다. 경전 읽기도 하지 않는다. 스님의 어린이 포교 방법이다. 아이들은 배우는 게 지겹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법당에서 삼배하고 그저 놀기만 하면 돼요. 절에는 악기들도 넉넉히 구비해놓았습니다. 춤추고 싶은 사람은 춤추고, 노래하고 싶은 사람은 언제든 노래할 수 있게요.”
스님은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법회를 위해 찬불동요 등 포교 프로그램을 연구했다. 여름불교학교 캠프를 열 때는 연예인도 초청하며 조금이라도 더 즐거운 시간을 주기 위해 고심했다. 캠프를 갈 때면 아이들이 불편할까봐 책상, 의자까지 전부 챙겨갈 정도였다. 그 밖에도 어떻게 하면 어린이들에게 행복함을 줄 수 있을까를 떠올리며 BBS불교방송 어린이 프로그램 ‘룸비니 동산’을 23년간 진행했다. 2007년에는 ‘자용 스님의 신나는 종이접기’ 인터넷 방송프로그램을 만들 정도로 어린이를 위해서라면 능력의 120%를 이끌어냈다.
이렇게 끊이지 않는 관심을 주니 아이들은 저절로 스님을 찾는다. 어린이집부터 스님과 인연을 맺은 아이들은 초·중·고등학교를 거치며 스님께 고민 상담을 하고, 취업 상담이나 결혼 주례를 부탁하기까지 했다. 이들은 결혼을 하고 나서 또다시 아이와 같이 스님을 찾아왔다. 어린이 포교의 선순환인 것이다. 그렇기에 스님은 “스님들이 더 많이,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였다.
| “스님들이 힘써주셔야 합니다”
자용 스님은 어린이 포교에 있어 교사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하며 가만히 고개를 들었다.
“여름불교학교를 열어도 선생님이 없다는 곳도 있습니다. 교사가 어린이 포교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스님은 어린이 포교의 미래가 어둡다고 했다. 어린이 포교라는 일념으로 2,250명의 불자 어린이교사들을 양성했던 국가공인기관 중앙승가대 부설 보육교사교육원도 작년 말에 문을 닫게 됐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도 덧붙였다. 불교계에서 운영하는 유일한 보육교사교육원이 개원 26년 만에 폐원하면서, 전국 54곳의 보육교사교육원 중 불자 보육교사를 길러내는 곳은 단 한 곳도 남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타종교에서는 직접 보육교사교육원을 운영하면서 수백 수천 명의 교사를 배출합니다. 실제로 불교어린이집들이 보육교사 채용 공고를 내면 대부분 기독교인 선생님들이 옵니다. 이들에게 만일 주말 행사로 아이들과 함께 절에 갈 수 있는지 물으면 예배 때문에 갈 수 없다고 말합니다. 불자 교육자들이 없는 실정입니다.”
불교교육시설이 생기면 불자의 일자리가 그만큼 늘어난다. 불교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늘어나면 불자 선생님들이 지도하는 어린 인재들이 자라난다. 교육원을 폐원하고 나니 오히려 더 많이 채용 문의가 온다고 속상함을 전하던 자용 스님은 스님들도 수녀님처럼 현장에서 활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린이 포교는 지금 전멸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절에 아이들이 와도 반겨주는 스님이 별로 없어요. 스님들이 힘써주셔야 합니다. 수녀님이 어린이집 교사를 하고, 간호사로서 활동하듯이 우리 스님들의 활동이 늘어야 합니다. 우리 스님들이 원장, 대표만 할 것이 아니에요. 스님들이 직접 교사가 되어 아이들을 길러내야 합니다.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어린이 포교를 해야 한다고 말할 뿐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스님들이 정신 차려야 합니다. 행동으로 옮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자용 스님은 어린이 포교는 종단에서 키워나가야 한다고 두 번 세 번 그 중요성을 되짚었다. 스님은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보육교사교육원이 꼭 다시 열렸으면 좋겠다고 발원을 전했다. 그리고는 창문 너머 아이들 교실을 바라봤다. 스님의 눈앞에는 어린 부처님들이 뛰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