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는 낯설다. 전라도, 경상도, 바다 건너 제주도까지 가봤으나 수도권 바로 아래에 있는 충청도는 어쩐지 인연이 닿지 않았다. 그런 낯선 지역의 사찰 두 곳을 이번 특집 취재로 한꺼번에 방문하게 됐다. 하루는 충북 보은 법주사 템플스테이로 산사를 체험하고, 다음날 충남 공주로 이동해 마곡사를 답사하는 일정이었다.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라는 미술관을 관람하듯, 충청도 방언처럼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법주사와 마곡사를 만났다.
• 보은 법주사 •
| 호서제일가람의 장엄한 대불과 팔상전
일주문 현판에 적힌 ‘호서제일가람’. 그게 법주사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과연 충청지방 제일의 사찰답게 모든 게 다 높고 크고 장엄했다. 높이만 33m에 이르는 동양 최대 미륵불 입상인 금동미륵대불은 물론, 절을 들어서자마자 수문장처럼 천왕문 앞을 지키고 서 있는 27m 높이의 전나무 두 그루가 그랬다.
밥솥 크기도 남달랐다. 정유재란으로 사찰 대부분이 전소되기 전까지만 해도 전각 60여 동이 있던 법주사는 한때 3,000명의 스님들이 기거하던 곳이었다. 스님들의 밥을 짓고 국을 끓였던 철확(철로 된 대형 솥)은 쌀 40가마니를 부을 수 있을 정도로 커야만 했다. 지금도 법주사는 법랍 60년의 어른스님부터 행자까지 70여 명의 대중이 머무는 큰 절이다.
법주사는 553년 의신 조사가 창건한 뒤 720년(성덕왕 19년)에 중건됐다. 천년고찰 법주사는 그 유구한 역사만큼이나 수많은 국보·보물을 품고 있었다. 팔상전을 비롯해 쌍사자석등, 사천왕석등, 석련지, 마애여래의좌상까지…. 특히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유일한 5층 목조탑인 팔상전은 희소성 때문인지 더욱더 위엄있어 보였다.
절 내 수많은 보물을 구경한 탓에 등에는 금세 소금꽃이 폈다. 잠시 대웅보전 앞 ‘보리수’ 나무 그늘에 앉아 땀을 식혔다. 법주사에는 그늘이 별로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에 잠시 앉았다 간다. 사실 이 나무는 찰피나무로 붓다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그 보리수와는 다른 종류다. 인도의 보리수와 잎 모양이 비슷해서 붙여진 이름일 뿐이라고. 찰피나무 그늘은 대웅보전 스님들의 염불 소리도 들리고 시원한 바람도 솔솔 부는 그야말로 명당자리다.
| 부처님의 법, 다시 속세로
템플스테이 방사 정재당에서 하루를 묵은 다음 날, 도량석을 시작하는 목탁 소리가 들려왔다. 잠을 떨치고 얼른 대웅보전 앞마당으로 나갔다. 막 새벽예불을 알리는 사물의식이 시작되고 있었다. 법고를 치는 스님들의 모습을 보는데 템플스테이 김완식 사무장이 다가와 귀띔했다.
“안쪽(대웅보전)에서 금고(金鼓, 징)를 치면 밖(범종각)에서 그 소리를 받아 법고를 쳐요. 밖에서
다시 사물을 치면, 안에서 또 화답하죠. 법당의 안과 밖에서 부처님의 말씀이 연속적으로 전달돼 부처님의 나라가 지속하길 바란다는 의미가 있죠.”
안과 밖을 오가던 소리는 절 마당을 감돌다 산세를 타고 멀리 퍼져나갔다. 법주사가 있는 속리산의 이름은 ‘세속[俗, 속]을 떠난[離, 리] 산’이라는 뜻이다. 속세를 떠난 산에 부처님의 법을 ‘머물게 하는[住]’ 절이 바로 법주사인 것. 산도 절도 서로에게 정말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흔히 사찰은 속세를 떠난 스님들의 고립된 수행지라 생각한다. 하지만 산세를 따라 ‘네발짐승(법고)’, ‘물속 생명(목어)’, ‘날짐승(운판)’, ‘지옥 중생(범종)’에게 널리 퍼져나가는 사물 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사찰이 꼭 속세에서 유리된 공간만은 아닌 것 같았다. 속세를 떠나 법이 머무는 절은 다시 그 법을 속세의 중생들에게 되돌려 주고 있으니 말이다. 소리의 파동이 가슴으로 전해지는 울림을 느끼며 대웅보전으로 갔다. 목탁과 염불 소리에 맞춰 절을 하며 속세에서 쌓인 복잡한 생각을 하나씩 내려놓았다.
| “절에 사는 새는 맑게 운다”
법주사 마지막 일정으로 템플스테이 연수국장 일오 스님과 세조길을 걸었다. 스님은 이번 ‘나의 법주사 문화유산답사기’의 고마운 안내자였다. 일오 스님은 과거 속리산 종주를 하다가 물이 없어 탈진해 쓰러질 뻔한 경험이 있었다. 그때 속리산 관음암 바위틈에서 한 방울씩 떨어지는 석간수를 마시고 겨우 기력을 회복했다고 한다. 그 맑고 시원한 감로수의 기억 때문에 법주사로 출가하게 됐다고.
“절에 사는 새는 스트레스가 없어 맑게 울죠.”
스님 말을 듣고 새소리에 귀 기울여 보니 정말 그랬다. 도시의 새들과는 다르게 청아하고 부드럽게 울었다. 헤어짐이 아쉬워 발걸음을 늦춰 세조길 소나무들이 내뿜는 상쾌한 향을 들이마셨다가 다시 내뿜었다. 온몸에 쌓인 먼지와 스트레스가 깨끗이 씻겨 내려가는 듯했다.
다음 여정을 위해 법주사를 나와 속세로 돌아가는 길, 맑게 우는 새소리가 귓가에 자꾸 맴돌았다.
법주사 템플스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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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 법주사 템플스테이는 ‘속마음도 쉬어가는 자리’다. 현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체험형은 중지하고
휴식형 프로그램만 진행한다. 이곳에 머물면서 수정봉에 올라 마음 명상을 하고 세조가 거닐었다는 세조길을 산책해 보자. 스님이 주시는 꽃차 한잔 마시면서 속세의 시끄러운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천년고찰의 풍취를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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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법주사로 405
문의: 043)544-5656 beopjusa.templestay.com
• 공주 마곡사 •
| 깊은 산중 숨겨진 보물, 마곡사
충북 법주사에서 충남 마곡사를 가기 위해서 시외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했다. 속리산터미널에서 대전복합터미널로, 거기서 다시 공주버스터미널로. 설레는 한편 법주사에서의 일정과 장거리 이동으로 몸이 많이 지쳤다. 3시간이 조금 넘게 걸려 공주터미널에 도착했다. 쏟아지는 잠을 동여매고 공주에 두 발을 디뎠다. 아직 한여름이라기엔 시기가 이른데도 날씨가 무척 후덥지근하고, 눈이 따가울 정도로 햇빛이 강했다. 배낭을 멘 등판은 이내 땀으로 젖어 짠내가 올라왔다. 시내에서 버스를 타면 마곡사까지 40분 정도 소요되는데, 하필 이 버스가 한 시간에 한 대씩 운행한단다. 방금 차를 놓쳐 근처를 좀 더 둘러보기로 했다. 낙동강과 한강 다음으로 큰 강이라는 금강 변을 걸었다. 금강에는 노란 금계화가 강변을 황금빛으로 수놓고 있었다. 아름다운 풍경을 눈에 담고 다시 급하게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마곡사는 태화산 동쪽 산허리 기슭, 금강의 한 지류인 태화천이 흐르는 곳에 자리 잡았다. 충남 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산이 많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마곡사 일대는 첩첩산중으로 둘러싸여 있다. 『정감록』에서는 마곡사를 십승지(十勝地, 천재나 싸움이 일어나도 안심하고 살 수 있다는 열 군데의 땅)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이런 이유로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일본군을 죽여 옥살이했던 백범 김구는 탈옥한 뒤 마곡사로 들어와 은신해 있다 출가했다고 한다.
태화산 자락을 5km 정도 깊숙이 들어가면 마곡사가 나온다. 신라 640년(선덕여왕 9년) 당나라에서 돌아온 자장 율사가 창건한 7대 사찰 중 하나로, 신라의 보철 화상이 설법할 당시 모인 사람들이 마치 삼[麻]대가 서 있는 듯하다 해서 ‘마곡(麻谷)’이라 불렸다.
태화천은 마곡사 전체를 ‘S’자로 감아 도는 태극 모양으로 흘렀다. 극락교 다리를 건너며 법주사에서 그랬듯 다시 속세에서 피안의 세계로 들어갔다. ‘춘마곡 추갑사’라는 말이 있듯 마곡사는 아름다운 봄 풍경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미 봄은 지나 여름이 오는 때였지만 봄 풍경의 여운에 마곡사는 여전히 아름답고 고즈넉한 경치를 뽐내고 있었다.
| 작은 소원 하나 돌탑에 쌓으며
마곡사는 대웅보전을 비롯해 대광보전, 영산전, 5층 석탑, 석가모니불괘불탱 등을 보유한 문화재의 보고다. 과거 불화를 그리는 유명 화승들을 많이 배출해 남방화소(南方畵所)라고도 불린 마곡사는 1678년 120명이 넘는 대인원이 참여해 그린 석가모니불괘불탱을 보유하고 있다. 연꽃을 든 석가모니불과 청중을 그린 대형 불화(괘불)로 전체 높이가 11m, 너비 7m, 무게 174kg나 된다고 한다. 괘불은 사찰의 큰 행사 때만 공개해 직접 볼 수 없었지만, 문화재해설사가 지난 불모다례제 때 찍었다는 사진을 보여줘 아쉬움을 달랬다.
대광보전 앞마당 한가운데 위치한 5층 석탑은 평면 폭이 좁은 반면 탑신(기단부 위에 놓인 부분)이 높은 전형적인 고려 시대 석탑이다. 그런데 탑의 머리 장식이 여느 탑들과는 달랐다. 원나라 라마불교의 영향을 받아 금동보탑이 올려져 있는데 전 세계적으로도 매우 희귀한 사례라 한다.
마곡사 하면 또 빼놓을 수 없는 보물이 있다. 바로 석탑 뒤편에 있는 대웅보전으로 우리나라에서는 흔치 않은 2층 불전이다. 외관상으로는 2층이지만 내부는 층이 구분되지 않고 하나로 트였다. 대웅보전에는 재밌는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죽어서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이 마곡사 대웅보전 싸리나무 기둥을 몇 번이나 돌았는지 묻는다고 한다. 많이 돌수록 극락에 가깝고 한 번도 돌지 않았으면 지옥에 떨어진다고 한다. 또 싸리나무 기둥을 안고 돌면 아들을 낳는다고도 전해지는데 이런 전설 때문인지 기둥은 참기름을 발라놓은 듯 윤기가 나고 맨들맨들했다.
손에 참기름을 잔뜩 묻히곤 대웅보전을 나서는데 인상적인 풍경 하나가 눈길을 붙잡았다. 대적광전이 내려다보이는 담 기와 위에 자그마한 돌탑들이 올망졸망 쌓여 있었다. 누군가의 소원이 간절했기 때문일까. 돌탑의 돌들은 위태롭지만 딱 그 위치가 제자리인 양 아랫돌과 윗돌이 떨어지지 않고 꼭 붙어있었다. 그곳에 작은 소원 하나를 쌓았다.
백범 김구는 조국 광복 후 50년 만에 다시 마곡사를 찾았다. 그때 대광보전 기둥에 걸려있던 ‘각래관세간 유여몽중사(却來觀世間 猶如夢中事)’라는 글을 보고 감개무량했다고 한다. ‘돌아와 세상을 보니, 모든 일이 꿈만 같구나.’ 훗날 마곡사에 다시 오면 어떤 감회에 젖게 될지 생각했다. 얼마나 긴 꿈을 꾸고 마곡사로 다시 돌아오게 될까? 그때도 소원 하나 쌓은 돌탑이 여전히 그곳에 있을까?
마곡사를 나와 다시 5km의 울창한 소나무 숲길을 걸어 나왔다. 깊고 깊은 산사에서 다시 세속으로 밀려 나가는 길. 나가는 길은 왠지 더 짧게 느껴졌다.
마곡사 템플스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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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고찰인 마곡사 주변은 이중환의 『택리지』에서
십승지로 꼽혔을 만큼 절경을 자랑한다.
태화산 울창한 소나무 숲속 ‘백범 명상길’을 걸으며
휴식과 명상 시간을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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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충남 공주시 사곡면 마곡사로 966
문의: 041)841-6226 magoksa.templestay.co
글. 송희원
사진. 유동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