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자 출가수행자인 동명 스님의 ‘시가 말을 걸다’를 매주 화요일마다 연재합니다. 원문은 필자의 다음카페 ‘생활불교전법회’, 네이버 밴드 ‘생활불교’에서 볼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동백나무 그늘에 숨어
목탁 소리 도량석을 도는 새벽녘이면
일찍 깬 꿈에 허망하였습니다
발목을 적시는 이슬아침엔
고무신 꿰고 황토 밟으며
부도밭 가는 길이 좋았지요
돌거북 소보록한 이끼에도 염주알처럼
찬 이슬 글썽글썽 맺혔더랬습니다
저물녘이면 응진전 돌담에 기대어
지는 해를 바라보았습니다
햇어둠 내린 섬들은
마치 종잇장 같고 그림자 같아
영판 믿을 수 없어 나는 문득 서러워졌는데
그런 밤이면 하릴없이 누워
천정에 붙은 무당벌레의 숫자를 세기도 하였습니다
서른여덟은 쓸쓸한 숫자
이미 상처를 알아버린 숫자
그러나 무당벌레들은 태아적처럼
담담히 또 고요하였습니다
어쩌다 밤오줌 마려우면
천진불 주무시는 대웅전 앞마당을
맨발인 듯 사뿐, 지나곤 하였습니다
달빛만 골라 딛는 흰고무신이 유난히도 눈부셨지요
달빛은 내 늑골 깊이 감춘 슬픔을
갈피갈피 들춰보고, 그럴 때마다 나는
동백나무 그늘에 숨어 오줌을 누었습니다
눈앞에 해우소를 두고서 부끄럼성 없이
부처님께 삼배를 드릴 때처럼 다소곳이
무릎을 구부리고 마음을 내릴 때
흙은 선잠 깬 아이처럼 잠시 칭얼거릴 뿐,
세상은 다시 달빛 속에 고요로워 한시절
동백나무 그늘 속에 깃들고 싶었습니다
영영 나가지 말았으면 싶었습니다
(김태정 시집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창비 2004)
[감상]
김태정 시인! 서울 태생이지만, 젊은 나이에 해남으로 내려가 해남에서 생을 마쳤습니다. 미황사에서 생활하면서 여러 편의 시를 썼습니다.
이 시도 미황사에서 쓴 시입니다. 미황사에서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이 시가 잘 보여줍니다. 대체로 도량석 소리를 자명종 삼아 깨어났고요. 이슬이 사라지지 않은 아침에 부도밭 가는 길을 산책했습니다. 저물녘에는 응진전 돌담에 기대어 지는 해를 바라보았지요. 해가 지는 바다에는 섬들이 둥둥 떠 있었는데요. 그 모습이 마치 종잇장 같고 그림자 같았습니다.
세상이 허무하여 서러워지는 밤이면 천장에 붙어 있는 무당벌레의 숫자를 세기도 했습니다. 세어보니 서른여덟! 김태정 시인이 서른여덟에 해남으로 내려갔나 확인해보니 마흔한 살에 해남으로 내려갔더군요.
한밤중 소변이 마려우면 흰고무신 신고 대웅전 앞마당을 살짝 지나 동백나무 아래서 오줌을 누었습니다. 바로 앞에 해우소가 있었지만, 달빛 내리쬐는 동백나무 아래서 오줌 누는 것이 시인은 좋았었나 봅니다.
“무릎을 구부리고 마음을” 내려주면, 오줌을 받는 흙이 아이처럼 잠시 칭얼거릴 뿐, 세상은 달빛 속에 한없이 고요합니다. 그때 시인은 이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동백나무 그늘 속에 깃들고 싶었습니다.
영영 나가지 말았으면 싶었습니다.”
시인은 미황사를 떠났지만, 시인의 마음은 미황사 동백나무 그늘 안에 영원히 있을 것입니다. 미황사를 가시거든 김태정 시인과 이 시를 한번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동명 스님
중앙승가대 비구수행관 관장. 1989년 계간 『문학과사회』를 통해 등단, 1994년 제13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인으로 20여 년 활동하다가 지난 2010년 출가했다. 저서로는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제13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나무 물고기』, 『고시원은 괜찮아요』, 『벼랑 위의 사랑』과 산문 『인도신화기행』, 『나는 인도에서 붓다를 만났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