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만물은 태어나면 반드시 죽는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신분이 높고 낮든 모두 평등하게 죽는다. 진시황도 죽었고 삼천갑자(18만 년)를 산 동방삭도 죽었다. 착한 사람도 죽고 악한 사람도 죽는다. 그럼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인가?
사람과 동물의 갈림길도 바로 이 지점이다. 지능이 발달한 인류는 죽음 뒤의 세계가 궁금하다. 죽음 뒤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너무 허망하다. 애쓰고 살아 온 인생 뒤에는 다른 세계가 있다고 믿는다. 인류 문명사에서 가장 먼저 발달한 이집트 고대 왕조(BC 3200?~ BC 332)에서도 이미 죽음 뒤의 부활을 믿어 미라를 만들었으니 사후세계가 있다는 생각도 오랜 역사를 갖는다.
자연히 모든 종교에는 사후세계가 존재한다. 불교에는 지옥과 극락이, 기독교에는 지옥과 천당이 있다. 이슬람교에는 지옥과 천국이 있으며 도교에는 지옥과 신선 세계가 있다. 유교에도 저승에 해당하는 황천이 있다. 그중에서도 불교의 지옥은 지옥의 종류와 구체적인 내용이 많기로 으뜸이다. 그러나 불교의 지옥관도 인도의 고대 종교인 브라만교의 지옥을 받아들여 발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염라대왕도 당연히 인도 신화에 등장한다.
염라(閻羅)는 산스크리트어 야마라자(Yamaraja)의 음역인 염마라사(閻魔羅闍)를 줄여 부르는 명칭이다. 염마라고도 하며 raja가 ‘왕’이라는 뜻이므로 염라대왕이라고도 부르게 된 것이다. 야마(Yama)는 인도 고대의 태양신 비바스바트(Vivasvat)와 구름의 여신 사라뉴(Saranyu)의 아들로, 여자인 야미(Yami)와 남녀 쌍둥이로 태어났다. 인도 신화에서 최초의 인간이라고 여겨지는 마누(Manu)의 동생이다. 그러나 야마는 인간으로서 죽는 바람에 사후세계의 개척자가 됐다. 그 세계가 바로 천상 세계인 야마천이다. 수미산 정상에 있는 도리천 바로 위, 허공 중에 있는 천인들의 세계다.
기원 전후에 사람의 지능이 더욱 발달하면서 인도 신화에도 큰 변화가 온다. 전생에 나쁜 짓을 한 죄업 중생과 천상 세계에서도 죄를 지은 존재들이 가야 할 지옥이 필요해진 것이다. 야마는 사후세계의 개척자이자 관장자로서 자연스럽게 죽은 자를 심판하는 주재자가 됐다.
이러한 관념들이 불교에 수용되면서 야마는 현상 세계인 야마천의 통솔자이기도 하지만 지옥 세계를 관장하는 염라대왕의 임무도 맡게 됐다. 인도에서 나타난 불교의 지옥 관념은 시대가 내려가면서 점점 발전해 『대비비사론』등 여러 논서에 나타나고 『십팔니리경』에 이르면 지옥이 18개의 지옥으로 세분화된다. 불교의 지옥은 서역을 거치며 더욱 많은 정보를 담으면서 『지장보살본원경』에 이르면 24곳의 대지옥으로 늘어나고 대지옥 속에 작은 소지옥이 수도 없이 많은 것으로 묘사된다.
시왕十王의 출현
그렇지만 아직 지옥에 온 죄인을 심판하는 시왕은 나타나지 않았다. 시왕은 중국에 불교가 유입된 후에 나타난다. 중국은 당시 세계적인 선진국이었고 법치제도를 갖춘 나라였다. 당연히 죄가 있으면 경중에 따라 형벌을 주는 사법제도가 있었다. 또 사람이 죽으면 저승에 가서 선악에 대한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관념도 중국의 민간 신앙 속에 전해지고 있었다.
산동성의 태산은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태산부군이 머물고 있어 죽은 사람의 영혼은 여기로 돌아와 생전 행위의 선악을 재판받는다고 믿어져 왔다. 태산부군이 머무는 관청이 태산부(泰山府)이며 태산은 오악 중에서 동악(東岳)이라 했기에 동악대제(東岳大帝)라고도 불렀다.
또 도교의 서적인 『포박자』에는 사람의 몸에 깃들어 사는 세 명의 귀신인 삼시(三尸)가 매번 경신일(庚申日)이 돌아오면 사람이 자는 시간에 하늘로 올라가 허물을 고자질해서 사람의 수명을 단축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곧 불교가 들어오기 전에도 선악을 심판하고 길흉화복을 정한다는 믿음이 있었고 불교의 사후 관념이 들어오자 드디어 명부에서 죽은 자의 죄를 심판하는 열 명의 왕, 시왕(十王)이 탄생한다.
시왕의 내용을 담은 경전이 바로 당나라 말기 대자은사 장천 스님이 찬술한 『예수시왕생칠경』이다. 이 경전은 100% 중국에서 탄생한 경전이지만 이후 49재, 천도재, 예수재 등 불교의 천도의식에 큰 영향을 미친 경전이다. 그럼 시왕 중의 우두머리는 누가 되겠는가? 당연히 염라대왕이 그 우두머리가 된다. 인도에서 건너올 때부터 지옥을 관장하는 왕은 염라대왕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염라대왕은 황제나 왕이 쓰는 사각의 면류관을 쓴 모습으로 종종 등장한다. 중국에서 사후세계를 관장하던 태산부군도 역시 시왕에 편입돼 일곱 번째 왕으로 좌정하게 된다. 결국 불교와 중국 전래의 사후세계가 섞이면서 도교나 민간 신앙에서 믿어지던 심판관과 불교의 염라대왕이 함께 시왕을 구성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불교의 명부에도 시왕이 있고 도교의 명부에도 시왕이 있다. 하지만 명칭도 다르고 관장업무도 서로 다르다.
명부전의 출현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다음 세상의 몸을 받을 때까지 머무는 기간이 있다. 이를 중유(中有), 중온(中蘊)이라 하고, 그 잠정적인 신체를 중음신(中陰身)이라고 한다. 최대 49일로 이 기간 안에 다른 생의 몸을 받아 떠나게 된다. 곧 죽은 뒤 곧바로 내생의 몸을 받을 수도 있지만 늦어도 49일 안에는 다른 몸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부파불교의 한 갈래인 「설일체유부」에서 나온 것이지만 대승불교에 유입돼 정착하게 된다.
그럼 왜 49일로 정해졌을까? ‘유식론’에 의하면 사람이 죽은 다음 6근(六根, 안이비설신의)의 인식 작용이 소멸하는 데 49일이 소요된다고 한다. 눈의 인식 작용은 7일, 귀의 인식작용은 14일, 코의 인식 작용은 21일 만에 소멸한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마음의 인식 작용이 소멸하는 데는 42일이 필요하며 중생의 자아의식인 말나식(末那識)이 소멸하는 데는 49일이 필요하다고 한다. 결국 육신은 소멸해도 인식 작용은 49일이 돼야 흩어진다는 뜻이다.
시왕신앙이 성립되기 전에는 지장신앙이 서역을 거쳐 중국에 들어와 뿌리를 내리게 된다. 지장보살은 중생을 제도하는 큰 임무를 맡았다. 그 대표적인 지장보살의 서원이 “지옥의 중생이 모두 제도돼 지옥이 비워지지 않으면 맹세코 성불하지 않겠다(地獄未空 誓不成佛)”이다. 그렇다고 지장보살이 지옥의 중생만 제도한다는 뜻은 아니다. 6도(六道)에 윤회하는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는 의미다. 다만 지옥에 떨어진 중생이 가장 고통이 심하기에 가장 많이 출장을 가는 것뿐이다.
지장신앙은 서역에서 들어오고 시왕신앙은 중국에서 탄생했기 때문에 전각도 따로따로 있었다. 한반도에는 삼국시대에 중국에서 불교가 들어오면서 지장신앙이 먼저 들어오고 고려 때 시왕신앙도 본격적으로 들어왔다. 그래서 지장전과 시왕전은 별개의 건물이었다.
49재는 고려 때부터 지내기 시작했다. 『고려사』에 공민왕(재위 1351~1374)이 왕비인 노국대장공주가 난산으로 사망하자 7일마다 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고, 『동문선』에는 김제학이 죽은 아내의 영가를 위해 49재를 올릴 때 쓴 추도문이 실려있다. 이 글에서 당시에는 49재를 ‘칠칠재’로 불렀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면 그동안의 통치이념인 불교에서 급격히 유교로 전환된다. 유교에서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조상의 제례를 잘 받드는 것이 최고로 중요한 덕목이다. 하지만 돌아가신 선조가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서 큰 관심이 없다. 다만 사람이 죽으면 혼백이 분리돼 백(魄)은 신체와 함께 무덤에 묻혀 사라지고 혼(魂)은 없어지지 않고 4대(代)쯤 내려가면 없어진다고 보았다. 그래서 사당에 모시는 조상의 위패도 4대까지만 제사를 받들게 됐다. 이러한 유교 효 사상이 밑바탕이 돼 지장전과 시왕전이 합쳐져 조상의 명복을 빌고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겪으며 명부전이 급속도로 전국 사찰에 퍼지게 된다. 죽거나 다친 사람도 많았고 누구나 돌아가신 이들이 좋은 세상에 가기를 원하는 것이 인지상정이었기에 그 역할은 불교에서 맡을 수밖에 없었다.
지장보살은 그 위신력으로 지옥을 자유롭게 출입하며 선행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그 죄업 중생을 다른 세계로 보낼 수 있기에 당연히 명부전의 중심에 앉게 된다. 죄인을 심판하는 시왕들은 지장보살의 좌우로 나뉘어 앉는 구도로 정착된다. 이러한 구도는 고려의 지장시왕도에 이미 나타나 있었지만 이를 전각으로 꾸미고 존상을 배치하는 양식은 조선시대에 이뤄진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명부전 양식은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찾기 어렵다.
시왕은 왜 열 명인가?
죽은 망자의 중음신은 49일 안에 다른 몸을 받게 된다. 그사이 일주일에 한 번씩 재판을 받으면 7명의 심판관만 있으면 되는데 왜 열 명이 됐을까? 바로 유교의 상례 의식까지 포함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유교의 기본 경전인 『논어』에서부터 장례는 3년상이 마땅하다고 언급돼 있다.
공자는 제자인 재아(宰我)와의 문답을 통해 “어진 사람이라면 당연히 3년상을 치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모가 아기를 낳았을 때 지극정성으로 보살펴 3년(만 2년)이 돼야만 그 아이가 부모의 품을 떠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옛 시대에는 영아 사망률이 높아 100일을 못 채우고 죽는 갓난아이가 많았다. 영아가 100일이 되면 그제야 부모도 한숨을 돌리고 축하 잔치를 벌이게 되니 바로 백일잔치다. 첫 돌이 되면 걱정 없이 잘 성장할 것이라고 믿고 돌잔치를 한다. 만 두 살이 되면 비로소 젖을 떼고 부모의 품을 떠나 제대로 걷게 되면서 어린아이로 성장해 간다. 곧 부모가 3년 동안 품에서 내려놓지 않아야만 아이가 성인으로 잘 자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자식들은 당연히 3년 동안 품속에 안고 길러준 은혜를 생각해 100일, 돌, 두 번째 생일은 부모님을 기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49재를 치른 다음 유교의 상례 제도를 본받아 100일 날과 소상(小祥), 대상(大祥) 날에도 재를 올리게 됐다. 그때마다 망자의 영가를 심판할 왕도 필요해지니 세 명의 왕이 더해져 시왕이 됐다. 결국 시왕의 탄생에는 불교, 도교, 유교의 문화가 융합된 과정이 있었던 것이다.
사진. 유동영
노승대
‘우리 문화’에 대한 열정으로 조자용 에밀레박물관장에게 사사하며, 18년간 공부했다. 인사동 문화학교장(2000~2007)을 지냈고, 졸업생 모임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인사모)’, 문화답사모임 ‘바라밀 문화기행(1993년 설립)’과 전국 문화답사를 다닌다. 『바위로 배우는 우리 문화』, 『사찰에는 도깨비도 살고 삼신할미도 산다』(2020년 올해의 불서 대상)를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