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도화상이 창건한 절의 위치를 두고 여러 말들이 있으나 선산·구미에 터를 잡고 사는 이들에게는 ‘신라불교 초전법륜지’로서 도리사와 태조산의 위상이 달라질 게 없어 보인다. 동네 어디를 가든 불교와 도리사에 호의적이었다. 구미에 딸린 작은 선산이 아닌 선산에 속했던 큰 구미라는 것도 새삼 실감했다. 구미 배후에 선산이 든든하게 버티고 있었고 선산 안에는 불교가 있으며 그 중심에 도리사가 있었다. 사진은 열흘 동안 도리사에 드나들며 내 나름으로 정한 ‘도리사 8경’을 담은 것들이다. 남은 제9경은? 우리 안에서 만들어지는 도리사의 어떤 풍경이다.
제1경 아도화상 도리사에 오르는 전반적인 길이 깊거나 가파르지는 않으나 산문에서 절까지 차로 오르는 길이 꽤 길다. 주차장에 닿기까지 회전이 크고 시야 확보가 되지 않는 마지막 구비도 넘어야 한다. 주차장에 닿는 순간 펼쳐지는 소나무 숲은 오를 때의 힘겨움을 단숨에 잊게 한다. 아름드리 소나무 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첩첩으로 펼쳐지는 산들이 보이고 어느새 고즈넉한 태조선원 마당에 이른다. 극락전과 태조선원, 그리고 아도화상이 자리한 이곳은 도리사 제1경이다.
제2경 적멸보궁 1977년, 세존사리탑을 옮기던 중 금동육각사리함에 봉안된 사리가 발견됐다. 이전에 없었던 직경 8mm 크기의 타원형이었다. 모습은 맑고 영롱해서 계정혜 삼학의 결정체인 법신체 그대로였다. 사부대중은 사리 공덕의 가피를 빌어 1987년 9.1m 높이의 진신사리탑을 세웠다. 이후에 좌우협시로 문수·보현을 모시며 삼존불을 완성했다. 도리사에서 해가 가장 먼저 닿고, 늦게 떨어지는 곳이 적멸보궁 영역이다. 5대 보궁만큼의 세월이 쌓이지는 않았으나 몇 호흡만 가다듬으면 선산·구미를 외호하는 태조산의 정수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제3경 극락전에서 수행 좌대까지 본래의 도리사는 1677년 큰 화재로 모든 전각이 불탔고, 1731년 금당암이었던 현재의 터에 건칠아미타부처님을 모시고 이름 또한 도리사로 했다. 같은 해 아미타부처님을 개금하면서 복장물이 나왔고 이로 미루어 부처님은 17세기에 조성한 것으로 본다. 현재의 극락전은 봉은사 판전과 남장사 보광전 그리고 화계사 대웅전 등 40년 동안 승려 장인으로 활동한 김룡사 민열 스님이 1876년에 중창한 것이다.
법당 벽 마감이 나무판으로 돼 있는 것은 민열 스님 건축의 특징이다. 도리사 극락전 외에 김룡사 화장암과 대성암, 봉은사 판전, 남장사 보광전 등 모두 판벽으로 돼 있다. 습기와 단열에 약하긴 하나 비용을 줄이고 도리사 극락전과 같이 판 위에 벽화를 그리기에 유용하다. 부처님 후불탱화는 1876년에 중창과 함께 점안했고, 신중탱과 독성탱은 1881년에 조성했다. 극락전과 석탑, 담 넘어 아도화상 사적비와 좌대는 도리사의 변치 않는 고졸미다.
제4경 태조선원과 마당 현존 대표 선객인 송담 스님의 스승 전강 스님과 현대 손꼽는 선지식 성철 스님이 방부를 들였으며, 고려 말에는 이곳 해평 태생인 야은 길재가 불법을 공부했다고 하는 유서 깊은 태조선원이다. ㄷ 자 구조인 선원의 큰방은 선방으로, 작은 방들은 템플스테이 숙소로 활용 중이다. 태조선원 현판은 민족대표 33인으로 이름난 서화가이자 감정가였던 오세창이 썼다. 지금은 참선 공부 모임인 8명의 수선회원들이 월·수 저녁에 두 시간씩 가부좌를 튼다. 수선회의 역사는 해평 불자 10여 명이 차를 빌려서 해인사 원당암 혜암 스님께 공부하러 갔던 시기로 올라간다.
제5경 아름드리 소나무 법성게 길 당시 동참자 중 한 명이자 현재 수선회장인 극락원 보살의 수행 정신은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손에 쥐는 것도, 재미도 없는 것이 이 공부인데 이것만큼 남는 장사가 없다”며 수선회원들을 격려하며 죽비를 잡는다. 태조선원의 팽팽한 기운이 도리사의 밤을 밝힌다. 수선회 외에 진신사리 봉찬회·헌향회·관음회·자비나눔회 등의 신행 단체가 있다. 주차장에서 극락전으로 가는 사이에 있는 소나무들은 도리사와 태조사의 도량신과도 같다. 이 나무들에 남아 있는 일제 송진 수탈의 상처는 번잡한 참배객들의 마음을 다독인다.
제6경 솔밭 객석과 서대 도리사 산사음악회는 유명하다. 음악회 무대는 주차장에 놓이고 객석은 솔숲이다. 이 무대에 올랐던 소리꾼 장사익은 “노래하는 내가 오히려 힐링이 되는 무대”라며 솔숲 객석에 감동했다.
제7경 도량석과 예불 도량 전각 중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적멸보궁은 위로는 태조산 정상과 닿고 아래로는 팔공산과 이어진다. 새벽 예불을 마친 뒤 보궁에서 적막하게 맞이하는 여명, 저녁 예불을 마친 뒤 잔잔하게 보내는 노을은 남향의 양명한 터에 자리한 도리사에서 느끼는 감동이다.
어느 곳 어느 절의 도량석·종송·범종 소리가 엄숙하고 장엄하지 않을까. 도리사의 도량석은 극락전 부처님 전을 시작으로 적멸보궁 계단 아래에서 인사를 올린 뒤 극락전으로 되돌아와 마친다. 적멸보궁에서는 종송으로 도량석을 잇고 범종각에서는 종송을 받은 범종이 울린다.
제8경 팔공산과 금오산 조망 해가 뜰 때는 팔공산 능선이 또렷하고 해가 질 때는 금오산 와불 형상과 낙동강의 물빛이 선명하다. 차를 타고 힘들이지 않게 올라 새벽부터 저녁까지 눈을 뗄 수 없는 곳이 도리사다.
글・사진. 유동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