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용선에 불보살, 스님, 선업을 쌓은 사람들이 아닌 특별한 대상이 올랐다. 바로 고양이다. 고양이는 배 난간 위를 도도히 다니거나, 가만히 앉아 달관한 듯 미소 짓고 있다. 극락세계로 향하는 반야용선에 작가는 왜 고양이를 태웠을까? 2023년 10월 25일 개막한 무우수갤러리 기획초대전 《취향의 카르텔》에서 심재담 작가는 <반야옹> 시리즈 6점을 처음 선보였다. 심 작가는 대학에서 불교미술을 전공한 뒤 선후배들과 전통예술 콘텐츠를 제작하는 사회적협동조합을 창업해 경주에서 운영 중이다. 지자체 사업, 사찰 불사 등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와중에도 개인 창작활동을 게을리하지 않는 성림조형원 대표 심재담 작가를 사무실이자 작업실에서 만났다.
반려묘를 천도하며 애도하다
“아내가 키웠던 강아지와 제가 키웠던 고양이가 하늘나라로 갔어요. 여섯 살이던 고양이는 원래 조금 아프긴 했었지만, 예기치 못한 죽음이었죠. ‘얘네들을 천도하는 마음으로 반야용선에 담아보자’ 해서 그리기 시작했어요.”
왕생을 바라는 대상이 비단 사람뿐이겠는가. 심재담 작가는 자신의 반려묘와 아내의 반려견을 천도하는 마음으로 반야용선에 태워 보냈다. 갑작스러운 죽음을 마주하며 스스로를 치유하는 과정이 절실했다.
“상실해 보니까 알겠더라고요. 준비된 상태에서 보내줬으면 마음의 준비가 되는데, 갑자기 가버리니까 슬픔을 주체할 수 없었어요. 극락으로 가길 염원하는 차원에서 탱화를 조성하잖아요. 마찬가지로 내 이야기를 솔직하게 화폭에 담아서 아픔도 잊고, 다른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며 소통하고 싶었어요.”
2021년 고양이가 죽은 그해 그리기 시작한 <반야옹> 시리즈는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맞닥뜨린 죽음과 그 상실한 대상을 떠나보내는 과정에서, 그가 강구한 일종의 ‘애도 작업’이다. 키우던 고양이를 실질적으로 묘사하기보다, 추억을 각색해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닮게 그리면 마음이 너무 아파서다. 그래서 장난치던 모습을 가볍고 귀엽게 그렸다. 그러다 보니 그리는 행위 자체를 즐기고 웃게 되면서 아픈 감정이 토닥여졌다.
첫 번째 작품 <반야옹1>은 반야용선에 인로왕보살과 지장보살을 먼저 모시고 한동안 비워둔 채로 놔두다가 고양이와 강아지를 태웠다. 이후 가장 좋아하는 색인 황과 양청의 천연 석채 안료를 사용해 네모 형태의 레이어를 겹겹이 쌓아 올렸다.
“그리다가 다시 덮어버리고 그 위에 다시 새로 그리기를 곧잘 해요. <반야옹1>은 오래된 상자나 땅속에 묻혀 있던 걸 꺼낸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잊혔는데 어느 날 문득 창고에서 발견하고는 ‘맞아, 우리 이런 추억이 있었지’ 같은 느낌이요. 사용한 안료도 고가의 천연 석채인데, 가족 장례를 치를 때 최고로 좋은 걸 해주고 싶잖아요. 일종의 부장품 같은 거죠.”
<반야옹> 시리즈 작품 중에는 단청 문양에서 착안한 당초문(唐草文, 덩굴식물 무늬)을 그려 넣거나, ‘화판은 네모나다’라는 고정된 관념을 깨기 위해 나무에 스케치하고 그 형태대로 오려 채색을 하기도 했다.
새로운 시도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자신의 진솔한 이야기를 <반야옹> 시리즈에 계속 녹여내고 싶다고 말하는 작가에게, 왜 하필 시리즈로 그리는 게 ‘반야(반야용선)’와 ‘옹(고양이)’이냐고 물었다. 심재담 작가는 “고양이(옹)야말로 지어내거나 상상한 게 아닌 나의 이야기기에 좀 더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어서”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반야(반야용선)’는 왜 소재로 선택했을까?
“반야용선은 표현이 자유롭다는 게 매력적이었어요. 졸업작품으로 극락을 가는 16가지 방법이 담긴 <관경16관변상도>를 그렸어요. 어떻게 하면 극락에 갈지, 극락 가는 다양한 방법들을 고민했었죠. 결국엔 가는 수단이 중요한데, 그게 반야용선인 거예요. 또 불교미술의 현대화도 염두에 두고 작업하다 보니 불보살을 모시기에는 조금 어려웠어요. 왜냐면 용은 방향을 조금 틀어도 누가 봐도 불편하지 않은데, 부처님이나 보살님들을 현대적으로 자칫 잘못 각색했다가는 누군가는 봤을 때 불편하잖아요. 부처님 탱화는 신중을 다 갖춰서 그려야 되고, 보살마다 지물이라든지 그려야 할 법칙들이 있는데, 통도사 <반야용선도>를 보면 왕생자 표정이 제각기 달라요. 그만큼 자유롭다는 거죠.”
“슬픔을 나누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심재담 작가는 현대미술 시장에서 “너무 불교스럽지 않은, 그래서 대중에게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한 방법”을 모색 중이다. <반야옹> 시리즈는 초기작과 후기작으로 나뉜다. 최근에 그리는 <반야옹> 시리즈에는 불보살을 그리지 않는다. 근간은 불교미술이지만 처음부터 불교를 너무 내세우지 않고 대중에게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해서다. 사람들이 관심 가졌을 때 ‘이게 사실은 불교미술이야’라고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전략이다.
“일단은 제가 더 유명해지기 전에는 너무 불교적인 요소들은 배제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불교미술과 현대미술의 밸런스를 맞춰가는 과정인데, 어느 한쪽으로 너무 치우치면 ‘이게 불교미술이랑 뭔 상관이야’라거나 ‘이거 절에서 보던 건데? 이게 어떻게 현대미술이야?’라는 말이 나올 수 있죠. 그 아슬아슬한 지점을 계속 찾아가고 있어요.”
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미술과 선후배 10명이 모여 2019년 청년 창업으로 시작한 비영리 사회적협동조합 ‘성림조형원’도 그가 대중과 접점을 넓히는 일 중 하나다. 사회적협동조합은 수익금 60%를 지역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사업들로 구성한다. 일례로 전통등으로 경광봉을 만들어서 지역 대학생들과 한 달에 한두 번 우범지역을 순찰한다. 지역의 청년 예술인들과 모여서 함께 공공미술 전시를 하거나, 전통등 교육 사업도 진행한다. 대표적으로 남산골 한옥마을 전통 체험 행사를 진행했고, 연등회 전수 교육도 맡고 있다.
또 성림조형원의 중요한 사업 중 하나인 사찰 불사를 위해 전국을 다닌다. 불전 사물을 만들거나 탱화, 벽화, 단청, 개금을 하거나 장엄등도 만든다. 전통문화를 알리고 싶어서, 좋아서 시작한 일이 점차 잘 됐다. 경주 지역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일하는데, 청년 불교미술 작가들의 사회적협동조합으로는 성림조형원이 유일하다는 게 작업을 많이 의뢰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단청 작업을 하면 4대 보험이 적용이 안 될 때가 많아요. 굳이 법인으로 하며 계속 규모를 키우려고 하는 이유는 우리 스스로 시스템을 만들면서 법이나 제도적으로 갖춰지도록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죠. 일용직 근로자가 아닌, 어떤 브랜드에서 소속돼 활동하면서 전반적인 사회 통념을 좀 바꿔보자, 라는 취지예요. 대한민국에서 불교미술을 한다는 게 조금 더 자랑스러운 일이 됐으면 좋겠어요.”
평균 수면시간이 5시간에 못 미친다는 심재담 작가는 사무실에 출근하고, 갤러리 큐레이터 일을 하고, 퇴근 후 개인 작업을 한다. 그야말로 하루를 쪼개서 쓴다. 지자체 계약을 따오랴, 조합 운영하랴, 개인 작업하랴, 성림조합원 대표로 주말도 없이 일하는 심재담 작가에게 앞으로의 작품 활동 계획을 물었다.
“국가지원사업은 특정 종교를 지지하면 아예 참여할 수 없어요. 그래서 성림조형원은 ‘불교’보다는 ‘전통’ 관점에서 접근해요. 사실 경주가 곧 신라고, 신라가 곧 불교잖아요. 그렇지만 불교라는 종교적 색채를 드러내면 사람들이 선입견을 가지고 거부감 먼저 내비치는 것 같아요. 종교를 떠나서 불교는 어쨌거나 한국 역사의 한 부분인데 말이죠.
하지만 되도록 불교미술을 강요하는 게 아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길 원해요. 아직 작가로서 <반야옹> 시리즈가 완성된 그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주제는 같아도 화풍이 변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해서 솔직하게 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그리고 슬픔을 나눌 수 있는 작가가 됐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