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알리는 홍매화
지리산에 봄이 오면 화엄사 홍매화 사진이 언론과 SNS로 거의 실시간 생중계된다. 덕문 스님이 홍매화 콘테스트를 생각한 것은 코로나19가 전국을 휩쓸 때다. 기차로 구례를 출발해 서울에 도착하면, 조계사까지 몇 정거장은 지하철로 이동한다.
“지하철 안 사람들이 마스크 쓰고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어요. 이야기 한마디 나누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집단 우울증에 걸린 듯했죠. ‘조금은 웃게 하는 방법이 없을까, 야외는 괜찮다는데 밖으로 나오게 하는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했습니다.”
그 기간에 화엄사를 찾는 사람도 줄었다. 홀로 홍매화 앞에 앉아 턱 괴고 고민하면서 시작한 일이었다. 화엄사 홈페이지에 핸드폰으로 촬영한 사진을 올리면 상품을 주는 것으로 처음 시작했다. 그때는 이렇게 큰 행사가 될 줄 몰랐다고.
지리산의 봄을 알리는 ‘홍매화’, 여름에는 ‘요가축제’와 ‘모기장 영화음악회’, 가을에는 ‘화엄문화제’, 겨울은 ‘눈꽃축제’. 화엄사의 사계절을 알리고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게끔 하는 기회를 만들고 싶었다.
“요가대회는 밀착된 옷을 입고 법당 앞에서 다리를 벌리는 동작이 있어서 조금 민망하지 않을까 우려하기도 했습니다. 예상외로 반응이 좋았죠. 그런데 너무 더워 가을로 옮겼습니다. 가을에는 이전부터 ‘영성음악회’와 ‘괘불재’가 있었어요. 국보로 지정된 괘불은 어차피 1년에 한 번 바람을 쐬어야 하니 괘불재를 ‘어머니길 걷기’, ‘음악회’ 등 문화행사와 더불어 진행했죠.”
겨울에는 눈꽃축제를 기획했는데, 지리산에도 눈이 제대로 내리지 않는다고. 올겨울은 ‘여성바둑대회’를 계획하고 있다.
문화재관람료 폐지
2017년부터 화엄사 주지 임기를 시작한 덕문 스님에게 빼놓을 수 없는 일이 ‘문화재관람료’ 문제였다. 화엄사 말사로 있는 천은사는 온 국민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
“그 도로가 지금도 천은사 소유고, 매표소가 있던 일주문도 공원입장료를 받고자 국가가 세운 겁니다. 군수님 이야기 들어보니 구례군청의 가장 큰 민원이 그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국가가 강제적으로 한 일이고 우리도 할 말이 많았지만, 국민은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죠. 사찰도 이득 본 것이 있잖아요?”
주지 임기를 시작할 때부터 맘먹은 일이었다. 전임 주지 스님이 후임자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천은사 주지 임명을 하지 않고 있었다. 스님의 첫 인사가 ‘천은사 주지 임명’인 셈이다.
여러 스님과 공양하는 자리에서 “나는 천은사가 조금 가난해지더라도 관람료를 없앴으면 좋겠다. 관람료에 의지하면 포교와 전법 등 본래 일을 등한시하게 된다” 말하고 대중의 의사를 물었다. 다행히 그런 뜻에 동감하는 스님이 있어 주지 발령을 할 수 있었다.
전라남도, 구례군 등 문제 해결을 위해 만나야 하는 기관이 8개였다. 8개 단체장이 모두 모이는 데 1년 걸렸고, 정부와 국회에서도 뜻을 함께해 2019년 천은사 문제가 해결됐다. 더불어 문화재관람료 문제 해결에도 진척이 생겼다.
“욕 많이 먹었어요(웃음). 조계종단이 결정했기에 된 일이잖아요? 당시 제가 조계종 ‘문화재보유사찰위원회’ 위원장이었어요.”
‘문화재관람료 면제’는 조계종이 요구한 정책대로 되지 않았고 어쩌면 아쉬움도 남는 미봉책이지만,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도별로 1개 사찰을 선정해 모니터링하면서 답을 찾고자 했는데, 여러 문제가 겹치면서 급히 해결됐다고.
“싫든 좋든 우리나라는 국립공원에 입장할 때, 문화재를 보러 갈 때도 관람료나 입장료를 받지 않는 유일한 나라가 됐습니다. 유네스코 규정에도 사람 수를 제한하라는 것이 기본 원칙입니다. 아쉬움이 남는 해결책이었습니다.”
구례 군민의 상
덕문 스님은 2024년 4월 구례군에서 시상하는 ‘구례 군민의 상’을 수상했다.
“내년 초 임기가 만료되니 준 것이죠. 제가 강화 보문사나 팔공산 갓바위 주지 소임을 마칠 때도 마을에서 작은 ‘감사패’를 받곤 했어요. 감사하게 생각하죠.”
보문사에서 받은 감사패는 소소한 사연이 있다. 2011년 3월 주지 임명을 받고 갔는데, 보문사가 위치한 강화 석모도 섬에 이전 3년 동안 가뭄이 심하게 들었다. 그런데 주지 부임을 받은 그해 여름 동안 40일 넘게 비가 왔고, 그런 인연으로 받았다고.
“스님은 보문사, 갓바위 같은 조계종 직영사찰 주지도 맡았고, 동화사 주지도 맡았어요.”
“자승 스님이 총무원장으로 계실 때, ‘직영사찰 실태 파악’을 위해 보내신 거죠. 동화사는 직영사찰도 아니었고, 제가 출가한 본사도 아니었죠. 갈등이 좀 있었는데, 갈등하던 양측이 중재자로 저를 선택했다 하더라고요.”
조계종 직영사찰은 수입이 많은 곳이고 조계종 예산의 많은 부분을 책임지는 곳이다. 보문사나 갓바위 소임 시절, 매일 아침 9시면 전날의 수입과 결산을 정리해 조계종 총무부에 팩스로 전송했다.
“그런 사찰 주지를 맡았으니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겠다’라는 시각으로 저를 바라보기도 하더라고요. 저는 소임을 보는데 공심(公心)을 우선으로 살아왔습니다.”
탈종교 시대
‘탈종교 시대’라는 이야기는 이제는 새삼스럽지 않다. 화엄사가 시도하는 일 역시 그 시대를 맞이하는 불교의 한 방편일 것이다.
“과학과 돈이 중요한 시대입니다. 솔직히 이 시대에 한국불교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입니다. ‘우리가 얼마만큼 국민에게 신뢰받고 있느냐’를 먼저 반성하게 됩니다. 좁게는 마을, 넓게는 사회적 갈등을 중재하고자 할 때 ‘누가 우리 메시지에 관심을 기울일까?’가 먼저 걱정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지난 30여 년간 절집에 포크레인 소리가 끊이지 않았어요. 이럴 때일수록 기도와 수행, 복 짓는 일, 마을과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일 등 기본에 충실했으면 합니다.”
대담은 자연스럽게 한국불교와 조계종 이야기로 흘러갔다. 조계종은 1994년 종단개혁을 통해 형성된 종헌을 이미 개정했고, 종법 개정을 준비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공의와 논의가 부족하지 않냐는 지적도 있다.
“종헌 개정에 누구보다 앞서 찬성했습니다. 30년 전 제정된 종헌과 이에 따른 종법을 개정하고자 한다면, 조계종의 미래를 설계하면서 진행했으면 합니다. 그런데 중앙종무기관 개편으로 협소하게 진행되는 듯해요.”
스님이 고민하는 것 중 하나가 수도권에 대한 포교 역량 강화다.
“넓게 보면 3,000만 명 이상이 수도권에 모여 있습니다. 그러면 수도권 포교를 위해 무언가 해야 하지 않겠어요? 수도권 역량 강화를 위해 ‘강남교구’, ‘강북교구’, ‘인천교구’ 같은 조직을 생각할 수 있어요. 기존 교구본사와 역할은 조정해야 하지만, 해외교구나 군종교구 같은 특별교구 형태는 가능하잖아요?”
조계종이라는 거대 조직에서 분산할 것과 집중할 것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한다. 중앙종무기관은 개별 사찰이나 교구에서 담당할 수 없는 정책과 제도 개선에 집중해야 한다고.
“교구본사의 역할을 강화하자는 이야기도 나온 지 30년 넘었죠? 1994년 이후 이런 기회가 언제 다시 올까요?”
때로는 천천히
화엄사도 때로는 ‘너무 보여주기식 아니냐’는 지적을 받는다. 그럴 때마다 ‘너무 과하면 안 된다’, ‘절을 개방하기 위해서는 내실을 먼저 다져야 한다’는 다짐을 스스로 한다.
“짧은 시간에 이야기 못 할만큼의 과제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출가자들은 줄고 있죠. ‘마음챙김’ 혹은 ‘명상’, ‘요가’ 같은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럼 ‘간화선은 뭐냐?’라는 문제가 당연히 나오죠. 한국불교의 수행 전통을 바탕으로 융합시켜 정리해 나가야 합니다.
재가불자들에게도 단계마다 맞는 프로그램을 제시해야 하고, 그들의 역할을 높일 수밖에 없잖아요? 할 수 있는 것, 기본을 다지는 것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재직 중 성과로 ‘도심 지역에 화엄도량을 마련한 것’과 ‘승가복지 체제 구축’을 말한다. 화엄사같이 산중에 있는 교구본사는 신도 분포가 전국적이다. 큰 도시 중심으로 거점사찰이 있었지만, 임기 중 부산 해동용궁사와 광주 빛고을포교원을 개원했다. 승가 복지는 ‘출가에서 열반까지’를 사찰이 책임지는 구조다. 화엄사가 재정적으로 여유 있는 사찰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체계를 마련한 듯하다고.
“불교방송 이사장 소임도 맡고 계시죠?”
“2년에서 조금 모자랍니다. 불교방송은 ‘책임지는 경영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불자들의 후원으로 운영되는데, ‘경영 마인드도 있고 불자로서 사명감’을 지닌 사람을 경영자로 선출해야죠. ‘계약직 직원’ 규정을 없앴고, 직원들의 자긍심을 높이는 일에 집중했어요. 이제는 ‘으쌰’ 한다고 하네요(웃음).
“내년이면 화엄사 주지 소임을 회향하시죠?”
“2025년 5월인데 부처님오신날 전에 회향할 겁니다. 새로운 주지 스님이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해야죠. 제가 2017년 주지 취임할 때 약속한 것이 몇 있는데, 마지막 남은 일이 ‘도광·도천 스님 행장기’를 만드는 것입니다. 2024년 9월 25일 ‘도광 도천 대종사 합동추모재’에 맞춰 발간하게 됐습니다. 불광출판사와 마무리할 수 있어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화엄사 대중들이 두 분 스님의 제자들인데, 뜻을 기리는 일이 조금 늦은 감이 있었습니다. 화엄도량의 소임자들이 두 분 스님 뜻을 잇고, 청출어람할 수 있게끔 하는 일이 마지막 일인 듯합니다.”
“소임을 마친 후 계획은요?”
“출가 40년 중 30년을 소임자로 살았고, 주어진 소임은 오직 공심을 가지고 열성적으로 해왔다고 자부합니다. 그 속에서 배운 것이라면 세상일이라는 것이 억지로 되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만사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요, ‘시절 인연’이라 하지 않습니까?
쉼 없이 30년 달려왔으니 미처 못 한 공부도 해야죠. 소임자라는 좁은 틀에서 벗어난 자유스러운 수행자로, 세상을 좀 더 넓고 깊은 시선으로 바라보며 자신을 충전하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정해진 길은 없지만 그래도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길을 가겠지요.”
마지막에 이르러 옛 추억을 내놓는다.
“1985년 수계했으니 내년이면 출가 40년입니다. 절집에서는 초발심 인연이 중하다고 하잖아요? 수계 도반들이 종단 내외로 많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금강 스님(중앙승가대 교수), 법해 스님(진관사 주지), 고경 스님(송광사 박물관장) 등 좋은 도반들을 찾아다니면서 차 한 잔 나누고 싶습니다.
‘좋은 도반은 수행 과정에서 전부다’고 이야기하잖아요? 출가 도반들은 저를 비춰주는 거울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대담. 류지호
정리. 김남수
사진. 유동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