紅梅滿開 (홍매만개)
智異萬春 (지리만춘)
華嚴洞天 (화엄동천)
調和人心 (조화인심)
홍매화 붉은 꽃 피면
지리산에 봄이 옵니다.
지리산 화엄의 계곡
세상이 따뜻해집니다.
화엄사는 1,000년을 훌쩍 뛰어넘는 역사를 지닌 곳이고 국보와 보물 등 많은 문화유산을 지닌 곳이지만, 근래에 핫한 것은 ‘홍매화’다. 홍매화가 피는 봄이면 홍매화 축제가 열리고, 홍매화를 소재로 사진 콘테스트도 개최한다.
나무 한 그루가 화엄사를 전국적으로 알리고 있다. 또 하나, 홍매화는 구례의 밤 문화를 바꾸고 있다. 화엄사 관계자, 구례 사람 몇 분과 함께 홍매화를 세밀히 들여다봤다. 홍매화 축제를 시작하게 된 배경,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구례와 화엄사를 찾고 있는지 물었다.
구례를 찾는 사람들
우석 스님 홍매화 축제가 2021년부터 시작했으니 올해가 네 번째죠. 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이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면서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에 맞춰 사람들이 화엄사를 찾게끔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자고 하셨어요. 코로나19도 끝날 즈음이었죠.
홍매화야 본래부터 있던 것이고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들은 이전부터 알고 있었죠. 지리산의 봄을 알리겠다는 취지로 홍매화를 소재로 프로그램을 기획했습니다. 여름에는 요가축제와 모기장 음악회, 가을에는 화엄문화제를 준비했죠.
홍매화 축제가 시작되고 첫해는 5만 명, 작년에는 10만 명이 왔습니다. 프로그램이 알려지고 올해는 홍매화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면서 관람객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죠. 축제 기간에 화엄사를 찾는 분이 26만 명 넘었습니다.
장길선 홍매화 축제로 구례를 찾는 분이 실제로 많아졌습니다. 최근 발표된 통계에 의하면 구례는 살고 있는 주민 대비 방문객이 가장 많은 곳으로 선정됐습니다. 한 해에 620만 명이 구례를 찾습니다. 이 중 많은 사람이 화엄사, 천은사, 사성암, 연곡사 등의 사찰을 찾죠. 화엄사 홍매화도 유명하지만, 구례는 비슷한 시기에 열리는 산수유꽃 축제도 유명합니다.
올해 홍매화 축제 기간에 정말 많은 사람이 찾았습니다. 화엄사 주변 식당들이 주말에 식재료가 모두 떨어져 오후가 되면 장사를 못 할 정도였습니다. 섬진강을 건너면 구례읍인데, 거기 식당들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였죠.
김은창 문화재관람료가 면제되면서 방문객 숫자를 정확히 카운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2024년 3월 한 달 동안 화엄사를 찾는 분들이 26만 명이라는 것은 중복된 경우를 감안해도 정확한 숫자입니다. 작년까지 10만 명이었는데 올해는 그만큼 늘어난 거죠.
저희가 주말에는 일반 차량을 통제하면서 전기버스 2대와 화엄사 버스 1대, 총 3대를 통해 주차장부터 화엄사 입구까지 관람객을 수송합니다. 주말에는 하루에 6,000명이 넘습니다. 상가지구 대부분의 가게가 준비한 재료가 떨어져 오후 4시면 문을 닫았습니다. 역대 처음입니다.
홍매화는 언제 피나?
모두 홍매화가 화엄사와 구례에 영향을 줬다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한다. 조금 가벼운 이야기를 물었다. 올 2월 초중반 날씨가 푸근해서 ‘홍매화가 예년보다 일찍 피지 않나?’ 하는 이야기가 많았다. 날씨가 좌우하는 홍매화의 개화 시기.
우석 스님 봄 날씨는 가늠하기 힘들잖아요? 그렇거니 생각해야죠. ‘뉴스에서도 올해는 개화가 빠를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내부적으로도 ‘날짜 변경을 해야 한다’ 등 여러 이야기를 했죠. 화엄사는 홍매화가 가장 아름답게 피는 시기에 맞춰서 행사를 준비하려 합니다.
올해 1주일 앞당겨 기간을 설정했는데, 결국 음력 기준으로 예년과 동일한 시기에 꽃이 폈습니다. 주지 스님하고 “홍매화는 역시 절개가 있어서 날짜에 맞춰 피는구나”라며 웃었죠.
나종주 애간장을 많이 탔죠(웃음). 보통 3월 셋째 주에 맞추는데 올해는 1주일 앞당기니까 갑자기 추위가 오는 거예요. 고생 좀 했습니다.
장길선 구례는 산수유가 유명하죠? 산수유꽃이 피고, 거의 비슷한 시기에 홍매화가 핀 다음에 벚꽃이 핍니다. 홍매화 축제가 끝날 즈음 벚꽃 축제를 진행하는데, 벚꽃이 제대로 피지 않은 거예요. 그래도 홍매화 축제도 그렇고, 벚꽃 축제도 그렇고 많이 다녀갔습니다. 자연의 섭리를 사람이 어찌할 수 있겠습니까?
김은창 3월 지리산은 산수유꽃, 홍매화, 벚꽃이 피고 지리산의 녹음이 푸릇푸릇 돋아나는 시기입니다. 그런데 눈도 내리죠. 지리산의 3월은 꽃으로 아름답기도 하지만 사계절을 모두 느낄 수 있는 기간이기도 합니다.
구례의 밤 문화를 바꾸다
화엄사는 홍매화 사진 콘테스트도 진행한다. 또 그 기간에 밤 12시까지 야간 개방도 한다. 찾는 사람들은 잠시지만, 준비하는 사람들은 꽤 오랜 기간 준비한다. 스님들에게는 생활 공간이기도 한 사찰을 밤늦게 개방하는 것은 사찰 입장에서 꽤 큰 결단이다. 이 기간에 홍매화와 화엄사를 즐기는 법, 사진 콘테스트에 입상하는 비법을 물었다.
우석 스님 사찰을 늦게까지 개방하는 것은 화엄사뿐 아니라 여러 사찰에서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철야기도를 하더라도 문을 잠그고 스님과 신도들만 참여했었죠. 요즘은 법회 참석인원도 줄고, 특히 젊은 세대들의 정기적 참여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스님들도 사찰을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사람이 줄어들면서 많은 아쉬움을 느끼죠.
노장 스님들에게 “여차여차해서 야간에도 절을 개방했으면 합니다”라고 말하면, “그럼 좋지, 사람이 오는 게 좋아” 말씀합니다. 다소 시끄럽더라도 정겨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종주 저희는 홍매화 축제가 끝나면 곧바로 다음 해를 준비합니다. 올 사진전 응모작이 1,141 작품인데요, 휴대폰 사진 작품도 736개입니다. 휴대폰으로 응모하시는 분들에게 팁 하나 드리자면, 가족 단위 사진을 추천합니다. 공고할 때부터 가족 단위 사진을 권합니다. 3대가 함께 찍은 사진, 아이들이 있는 사진 등이 심사위원들에게 어필합니다.
많은 사람이 오기에 저녁이나 새벽에 촬영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가족 단위 방문객은 아무래도 낮에 많이 오죠.
장길선 홍매화 축제는 구례의 밤 문화를 바꿨습니다. 저녁이 되면 밥 먹을 곳이 없는 곳이었습니다. 화엄사와 군이 협의해서 화엄사에 야간 조명 시설을 설치했죠. 평상시에도 8시까지 개방되는데, 구례군민들도 저녁이면 연기암까지 많이 산책합니다.
홍매화의 후계자들
화엄사 경내에는 세 그루의 천연기념물이 있다. 올벚나무, 들매화, 홍매화. 홍매화와 들매화 나무는 ‘화엄매’라는 이름으로 함께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화엄사를 비롯해 여러 기관이 천연기념물을 보존하고 증식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
나종주 올 2월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됐습니다. 화엄사 들매화는 이미 천연기념물이었는데, 이번에 들매화와 홍매화를 합해 ‘구례 화엄사 화엄매’라는 이름으로 지정됐습니다. 2023년 2월부터 조사해서 올 2월 19일 고시됐습니다.
김은창 화엄매를 비롯해 천연기념물을 보존하고 증식시켜야 하는데, 국립공원공단에서는 2020년부터 보존과 증식 사업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지장암에 있는 올벚나무 씨앗 1,021개를 파종했는데 161개체만 싹을 피웠어요. 화엄매는 498개를 파종했는데, 1개체만 성과를 보았죠. 수령도 몇백 년 됐고, 최근 기후 변화 등으로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천연기념물이기에 씨앗을 함부로 채취할 수도 없고, 파종 시기도 잘 맞춰야 합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되면서부터는 화엄사와 국립공원 등 6개 기관이 업무협약을 체결해 진행하고 있습니다. 국립공원공단에서는 화엄매를 지리산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키울 예정입니다.
장길선 화엄사 신도 한 분이 홍매화 한 그루를 파종했는데, 각황전 밑에 있어요. 당신 스스로는 ‘홍매화의 후계목’이라는 사명감으로 정성껏 돌보고 있습니다. 2~3년 뒤면 꽃을 피울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구례군청에서도 후계목을 키우고 있는데, 잘돼야 할 텐데…. 이것도 자연의 섭리로 생각하며 지켜보고 있습니다.
나종주 홍매화를 보존하는 것도 중요한 책무죠. 그런데 꽃을 손으로 만지거나 지나치게 나무 곁으로 들어가는 등 불편한 행위도 가끔 일어납니다. 저희는 화엄사를 찾는 모든 분이 즐거운 마음으로 가셨으면 해요.
우석 스님 저희가 홍매화 축제를 하는 이유는 홍매화를 통해서 모두에게 행복한 마음, 평화로운 마음이 깃들기를 바라는 거죠. 사진전도 단순히 촬영하고 응모하는 것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가족 간의 소중함을 알아갔으면 하는 바람이죠.
화엄사는 홍매화 사진을 달력이나 엽서로도 만들고 있습니다. 축제 기간에 소란함과 작은 불편함이 있지만, 화엄사를 방문할 때 간직한 첫 마음으로 홍매화를 보셨으면 합니다.
이야기를 끝낼 무렵 장길선 의장이 꼭 이 말은 남겨야 한다고 한다.
“구례가 제 고향인데요, 구례는 축복받은 곳입니다. 화엄사만 아니라 천은사와 사성암, 연곡사를 꼭 들러야 합니다. 부모님이 저를 낳으려고 기도한 곳이 사성암입니다. 저도 8년 기도해서 자식을 보았고요. 천은사 호수길과 피아골 연곡사의 단풍도 꼭 보셨으면 합니다.”
대담. 우석스님(화엄사 부주지), 장길선(구례군의회 의장), 김은창(지리산국립공원 전남사무소 소장), 나종주(화엄사 홍보과장)
사진. 유동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