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불교] 달라이 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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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불교] 달라이 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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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10.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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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불교

제 14대 달라이 라마 텐진 갸쵸는 1935년 티벳 북부의 타크스테르에서 출생했다. 그의 나이 2살 때 제 14대 달라이 라마로 인정받았다. 1959년 중국의 침략으로 그의 나이 불과 24세 때 그는 인도로 망명을 한다. 이후 그는 티벳의 스승이 아니라 세계인의 스승이 되어 전 세계를 두루 다니며 모든 종교를 형제처럼 끌어안았다. 그런 그의 평화를 위한 노력이 인정되어 1989년에는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관세음보살의 화신인 달라이 라마는 자비의 대사로서 전 세계인에게 다가가고 있다. 서양에서는 오랫동안 교황이 인간 정신의 표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나 교조적이고 수직적·권위적이며 이성에 위배되는 면이 많다는 이유로 그를 따르는 사람이 많이 줄었다. 그런 회의 계층을 흡수하고 있는 것이 달라이 라마이다. 세월을 두고 입증된 수행법이 존재하며 이성의 날카로운 칼을 댈수록 더욱 그 빛을 발하는 불교라는 종교를, 달라이 라마라는 인물이, 현실의 고난에도 약해짐 없이 부드러우면서도 힘찬 행동으로 주변에 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전혀 예사롭지 않은 삶은 몇 번이나 영화화되어 불교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친근하게 다가갔다. 그중에서도 특히 베르톨루치 감독의 ‘쿤둔’은 티벳에 있는 동안의 달라이 라마의 삶과 중국의 폭력적 언행을 예술적으로 잘 그려놓았다. 티벳인들의 평생 소원이 달라이 라마를 한번 친견하는 것이라면 그러한 마음은 이제 서양인에게도 그대로 옮겨간 듯하다. 달라이 라마가 직접 축복을 내려주는 입문식에는 줄을 서서 며칠이라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불교가 늘 그러했듯이 아름다운 본질은 변하지 않고 다만 좀더 현대화하고 일상생활에 다가간 모습으로 변신한 불교를 달라이 라마는 오늘도 전세계 구석구석의 민중을 직접 만나 달라이 라마라는 인물의 삶으로 전하고 있다.

달라이 라마의 목소리는 참 독특하다. 굵고 힘찬 목소리에서 전해지는 에너지는 목소리의 울림이 오래 귀에 남듯 사람들의 가슴으로 담박에 스며든다. 유창한 영어, 호쾌한 유머를 구사하는 그의 편안한 얼굴에서는 때로는 부드러운 웃음이, 때로는 뱃속까지 시원해지는 웃음이 번져간다.

대중에게 전하는 그의 불교는 어렵지 않다. 불교의 진리가 어렵고 때로 현학적일 수도 있다면 그것이 그의 삶 속에 녹았다가 다시 한번 떠오를 때면 너무나 쉽고 친근한 일상의 용어로 다가온다.

달라이 라마의 매력은 서구인 어느 계층이라도 다 흡수한다는 것이다. 그의 소박하면서도 빈틈없는 지성은 대학 캠퍼스에서 환영받았고, 포용적인 박애 정신은 미국 상류층의 호응을 받았으며, 창조적 에너지는 영화계, 가요계 스타들과 친밀한 관계를 갖게 했다. 한 인간이 이렇게 전천후적으로 많은 계층의 호응을 받는 것은 드문 일이며 게다가 그들의 삶의 스승 역할까지 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1980년대에 불교계 여러 곳에서 섹스 스캔들이 터져 물의가 생기자 1993년 달라이 라마는 불교계에서 가르침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위한 수련회를 개최하였다. 달라이 라마 자신도 인도나 티벳에 있을 때는 그렇지 않던 사람들이 서구로 나와 따르는 제자들이 생기자 변하는 사람들을 자주 목격했다고 했다. 사람들이 따르고 돈이 쏟아지면 자만심만 늘게 마련이며 이런 문제가 더욱 불거지는 것은 술 때문이기도 하다고 달라이 라마는 말했다.

“깨달은 사람은 적어도 자신의 삶에 만족한다. 그런 사람이 무엇 때문에 자신이 중요한 사람이라고 인정받고 싶어하나? 왜 술에 의지하고 왜 여러 사람과 성관계를 가지는가? 깨달은 사람은 도덕에 매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공의 진리를 이해한다는 것은 모든 생명의 연계성을 보는 것이기에 결국 경험에 바탕을 둔 도덕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룹 그레이트풀데드의 이전 멤버인 미키 하트는 1980년대 중반이후 여러 번 달라이 라마를 만났다. 이들은 주로 티벳 스님들의 성스러운 염불에 대해 얘기했다. 어떻게 하면 ‘소리의 만달라’를 창조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소리의 우주 속으로 함께 등정하여 몸에서 모든 생각을 다 비워낼 수 있는지에 관해 말이다.

“달라이 라마가 설하는 것은 전일한 깨어있음이에요. 저는 늘 소리의 의미와 그에 관한 그의 견해를 묻곤 하지요. 달라이 라마는 제 눈을 마주보고 손을 잡고는 허심탄회하게 말씀하지요. 달라이 라마의 머리가 제 머리에 닿을 때 전율이 제 몸을 지나는 것을 느껴요. 이 분은 정말 남들과 달라요. 그리고 잘 웃죠. 대단한 유머감각을 지니고 농담을 하는데 그게 주변에 다 옮겨가요. 가는 곳마다 자비심을 퍼뜨리는 힘을 가졌죠. 그리고 삶에는 다른 귀중한 것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지켜줘야 한다는 걸 우리가 알도록 해주지요.”

“내 종교는 사랑과 자비”라고 말하는 달라이 라마는 굳이 불교라는 말을 쓰지 않고도 불교의 정수를 모든 이에게 전해주고 있다. 그래서 독일의 성당에서 카톨릭 신자들과 함께 헨델의 메시아를 감상하는 그의 모습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즐거워보인다.

그가 노벨 평화상을 받던 1989년이 저물어갈 무렵 그는 동서독이 통일되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뜻깊은 행사에 참가했다. 그날 사람들은 붉은 촛불을 들고서 장벽 앞에서 기도를 했다. 달라이 라마의 가슴에는 만감이 교차했다.

“나는 붉은 초에 불을 켜서 손에 들었다. 한순간 그 작은 불꽃은 바람에 흔들리며 꺼질 듯했다. 그러나 불꽃은 살아남았고 군중이 내 손을 만지고 나를 둘러쌀 때 나는 기도했다. 자비와 깨달음의 불빛이 세상을 가득 채워 두려움과 억압의 어둠을 몰아내주기를 빌었다.”

달라이 라마는 순회강연을 떠나기 전에 측근들에게 늘 이런 당부를 한다고 한다.

“우리의 목적은 불교도를 더 많이 만드는 게 아니라 깨달은 사람을 더 많이 만드는 겁니다. 불교를 가르치되 불교도가 되라는 말은 하지 마세요. 그저 마음 안에 사랑, 자비, 모든 것에 대한 우주적 책임감, 지혜 같은 것을 기르면 됩니다. 업의 인연이 있는 사람이라면 불교도가 되는 것을 허용할 수도 있지만 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특정의 종교에 헌신하는 것보다 내면의 영적 가치를 닦는 것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자신에게 닥친 고난을 늘 자신이 더 성장할 수 있는 계기로 여기며 살았던 그는 “그대를 해하는 사람을 보기를, 스승이 현현(顯現)하여 그대에게 힘과 용기를 가르치러 온 것으로 보라.”는 대승의 가르침이 진정 옳음을 자신의 삶으로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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