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나이는 자기만 빨리 먹는 것이지 손아래 사람은 언제나 그 나이에 머물러 있거나 느리게 먹는 것으로 착각한다. 그래서 그 나이를 알아보고서는 『그래!』하고는 상상 밖의 많은 나이에 새삼스럽게 놀라는 일이 적지 않다.
나는 고향에서 스물 일곱에 처음으로 여학교의 교단에 섰다. 그 때의 제자들이 서울에서 꽤 많이 살고 있다.
그 중에서도 자주 집에 드나드는 몇 명의 제자들이 있다. 이제 모두 50대의 중반에 들어서며 손주까지도 있는 부인들 이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그들을 「국순이」, 「생기」, 「정복이」하고 학교 때처럼 이름을 부른다.
뭐라고 부를 적당한 칭호가 없는 것도 이유의 하나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여학교 시절의 어린 학생으로 생각되기 때문도 있다.
아무개 「여사」라고 하기도 어색하고 또 「님」이라고 부르기에도 어쩐지 쑥스럽다. 그러나 나의 저작(著作)을 증정할 때에는 아무개「여사」, 또는 아무개 「님」이라고 기명을 하기는 하지만......。
그런데 부르기에 적당한 칭호가 있기는 하다. 아이들의 이름을 알면 아이들의 이름 밑에 「어머니」를 붙이면 된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 「경일이 어머니」하면 무난하다.
그리고 또 있다. 손주들 이름 밑에 「할머니」를 붙여 부르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50대 중반에 들어서는 그들에게 너무 가혹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가장 편리한 것은「아무개 어머니」로 호칭하는 것이기는 하나 그 아이들의 이름을 몇 번 들어도 기억이 잘되지 않는 때도 있다.
그러다 보니 학교 시절에 불렀던 이름을 부를 수밖에 없다.
학교 시절부터 익살을 잘 부리는 「생기」는 얼마 전에도 사람들을 웃기다가 나를 보고,
『선생님,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라고 하여 모두가 폭소를 터뜨린 일도 있다.
그들은 50대의 중반에 들어서며 나는 60대의 중반에 들어선다. 그러니까 「같이 늙어가는 처지」라고도 할 수 있는 실정 이다.
한번은 전화를 걸어 「아무개 할머니」를 바꿔 달라고 했더니 전화를 넘겨받은 그 제자는,
『선생님, 할머니가 뭐예요。』
하고 웃으며 소리쳤다.
본인들도 「아무개 어머니」는 좋아도 아직은 「아무개 할머니」는 그리 달갑지 않은 모양이다.
얼마 전에 필요가 있어 제자의 둘째 아들이 근무하는 병원으로 갔다. 물론 가기 전에 전화로 제자의 아들 이름을 알아 가지고 갔다.
그는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어디에 내 놓아도 당당한 사회인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럼, 그 어머니의 나이는?」하고 느끼었다.
집에 돌아와서 아내에게,
『XX도 이제는 보통 나이가 아니야。』하고 그 의사의 어머니를 이야기 했더니, 아내는,
『그래 아직도 여학생인 줄로만 알고 있었오?』
하고 웃으며 말했다.
나와 아내는 유쾌하게 한바탕 웃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