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수 그늘] 귀심(歸心)
상태바
[보리수 그늘] 귀심(歸心)
  • 최하림
  • 승인 2007.11.3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보리수 그늘

  십여 년 전, 인식의 방법으로서의 관조에 대해서 들려 주던 한 스님의 말이 떠오른다. 두륜산 중턱의 작은 암자에서 기거하고 있던 그 스님은 청화{淸華}라는 깨끗한 이름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분은 무슨 이야기 끝에 화두{話頭}로부터 비롯되는 선{禪}은 완전한 선에 이를 수 없다고 했다.

  이미 있어진 화두는 그 흔적을 지우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님은 그의 선으로의 길을 화두나 질문방식을 버리고 관조방식을 택한다고 했다. 그는 기슭의 나무들을 보고 시냇물을 보고, 바람을 따라 산 밑에서 얼어오는 작은 물방울들의 안개를 본다.

  안개는 나무들을 가리고 산을 가리면서 천천히 밀어오다가 어느 틈엔지 햇빛 속에서 자취를 감추어 버리고 만다. 그러한 안개와  바람과 나무들의 움직임을 보고 있으면,  그것들은 저 먼 곳의 사물과 소리들을 느끼게 하고, 저 먼 곳을 감지하는 이 자연을 보는 방법은 자신을 한없이 고요하게 하고 자연의 정일한 세계에 이르러 명료하고 신선하게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게 한다. 그 스님은 저 먼 곳의 소리를 듣는다고까지 했다. 나는 물론 믿지 않았다. 인식을 통해서 사물을 이해하고 사물끼리의 보이지 않는 관계를 보아온 내가 스님의 말 속에서 얻은 것이라곤 기껏해야 [본다]라는 말의 고요함과 투명함에 대한 매혹 정도였다.

  우리가 개인으로서 사물과 접할 수 있다는 것은 크나큰 기쁨이고 행복이리라. 그리고 그 기쁨은 반드시 아름다운 사물이라는 단서를 통해서 만날 수 있으리라. 그러나 과연 인간이 아름다운 사물만을 만날 수 있을까. 아름다운 사물이란 이미 아름답지 않은 사물을 전제로 한 것이다. 또한 사물을 의미화하는 우리들의 내부에 이미 미추의 감정이 도사려 있음으로써, 그것은 아름답다든지 추하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 아닐까.

  되풀이하자면 청화스님 같이 사물을 고요하게 보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고요한 마음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 자신에게서 선악과 미추의 갈등 요소가 극복됨으로써만이 고요하게 사물을 볼 수 있는 여건이 놓여지는 것이다. 따라서 대립과 갈등을 극복하고 사물을 고요하게 볼수 있다면 이미 본다는 문제는 명제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나]와 [우리]의 갈등의 해소를 뜻하기도 한다. 여기서 우리는 [본다]는 사고방식이 [나]와 [너]가 이질적 존재가 아니라 동류계층일 때 가능한 전근대적 의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이미 혼자 있을 수 없는 이 불행한 시대에서는 그러한 사고는 퇴화할 수 밖에 없다는 것 또한 인지할 수가 있다. 불행의 단초는 나와 너가 의견을 합일시키지 못하는 데서 시작된다.

  나와 너가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일념적{一念的}인 규범은 태어나지 못한다. 그럴 때 우리는 대립적에서 갈등적 존재가 되는 것이며 사회적 감정은 미추에 기초를 두게 되는 것이다. 이 질곡을 극복하기 위하여 우리는 끊임없이 왜, 무엇때문에,  어떻게  하고 육하원칙에 의해서 현장을 검토하고 해부하는 것이다.

  그러나 [본다]는 그 정적인 인식 방법을 믿지 않고 질문의 방법을 통해서 자기를 찾고자 했던 내가 그 길에서 과연 무엇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일까.  20세기의 질병인 혼돈과 자기 분해 이외에 그 무엇이 있었던가. 나는 지금까지 내가 터득하여온 시를 꾸미는 방법, 말과의 친화, 유년시절에 갖는 자연에의 그 모성적체험 등이 하나 하나 빛을 잃어버리고, 급기야는 그것들을 무화시키는 저 끝을 모르는 질문의 근원까지 먹구름이 끼는 것을 보았다.

  물론 이러한 먹구름은 저 질문의 내부에 있어진 것이 아니라 거기에 생생한 활력소를 부어 넣는 행위와 그 행위를 통한 친화감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사회적 변혁의 기운이 끊임없이 타율적인 요소에 의해서 교묘히 저지되고 기만 당하는 사회에서는, 행위는 인식의 근간이 되지 못하고 절망과 파멸의 구렁텅이가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사회적 중심이념이 생성되지 못한, 이러한 사회에서는 인간은 방황할 수밖에 없는 것이며, 그 정신적방황은 급기야 사회적 방황을 자초하여 한 시대를 유랑인으로 가득 차게 하는것이다,

  어떤 사람도 떠돌지 않는 사람은 없다. 어떤 소리도 떠도는 소리가 아닌 것이 없다. 우리의 시도, 산문적인 양식도 심연 위에 뜨고 흐르는 것이 되어 발전한다. 돈의 노예가 된 여자들은 돈을 모으기 위하여 이 아파트에서 저 아파트로 옮겨 다니고, 아이들도 이 학교에서 저 학교로 옳겨 다닌다. 오랜 시간을 통해서 나누는 친구의 우정이 그들에게는 없다. 고향이라는 말 또한 저 바다와 노을로 싸인 산야와 사투리 등이 혼연일체가 되어 이루는 그리움의 저수지 같은 뜻을 지니지 못하고 호적등본의 필수사항인 본적지 이상의 것이 되지 못한다.

  고향이라는 말을 쓰다보니 생각이 나는데 한없는 유랑생활이라고 해야 마땅할 서울살이 십여 년의 어느날 안수길{安壽吉}선생댁을 찾아간 일이 있었다. 가을이었다고 생각된다. 누추한 골목을 돌고돌아 목조대문을 밀고 들어가자 선생은 늙은 학 같은 주름살 많은 얼굴을 들고 천식기 있는 어투로 찾기가 불편하지요 하고 말했다.

  이사가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어도 저 나무때문에 갈 수가 있어야지, 저거저거 내가 이집에 이사와서 심은 나무거든. 선생은 안경낀 얼굴을 들어 마당의 한 나무를 쳐다보았다. 지붕을 넘을까 말까한 볼품없는 나무였다. 그러나 선생이 심고 기르고 사랑한 나무였다. 아하 선생은 저렇게 세계에 마음을 주고 뿌리를 내렸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고, 그런 그 분들의 월남행이 얼마나 마음 아픈 것이었나를 생각했고, 그들에게 통일의 염원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생각했다.

  그때 그분은 [귀심]{歸心}이라는 연재소설을 쓰고 계셨다. [ 歸心]이란 자의{字意} 그대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다.

  이 가을 들어서, 선생이 귀심을 쓰신 것은 다만 고향으로 가고 싶은 마음을 담고자 해서가 아니라 글의 고향, 진정한 삶의 고향으로 가고자 한 그분의 개결한 정신을 함축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바로 그것이 그분의 문학적 이상이었으리라. 이런 생각이 머리에 떠오를 때마다 장례식에 참석치 못하였던 나의 불철한 태도가 뉘우쳐지고 그 뉘우침과 더불어 사람은 생을 완결짓고 가는 것이 아니라, 선생이 나무와 함께 문학하는 우리들을 두고 가셨듯이 기나긴 인간 역사의 일부분을 살고 갈 뿐이라는 깨달음이 온다.

  그 일부분이 나의 몫이고 소중한 우리의 삶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삶을 사랑해야 되고, 그 사랑을 실천할 수 있어야 될 것이다. 즉 혜매임을 끝내야 될 것이다. 허나 어떻게 혜매임을 끝낼 수 있을 것인가,  아니 어떻게 질문의 질문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인가 ,,,,,,,

  (시인)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