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의료 정신은 [약사본원경{藥師本願經} 속에 잘 표현되어 있다. 죽음의 계곡에서 허덕이는 병자라도 이 경전을 지심으로 독송하면 귀중한 생명을 건질 수 있다고 쓰여 있다. 약사여래{藥師如來}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열두 가지의 큰 원을 세웠다. 그 중 여섯번 째의 대원은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장님,귀머거리, 벙어리, 절름바리, 백치{白痴} 등의 선천적 불구자가 되지 않도록 바라는 보건{保健}정신이며 일곱번째 대원은, 일체 중생의 만병을 다 고치고 약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약을, 간호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간호를, 집 없는 사람에게는 집을 주고자 하는 의료, 복지 정신이다. 이 세상의 모든 고통과 병, 훙사{兇事}, 악사{惡事}를 모두 쓸어내면 곧 극락이 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는 이름조차 알 수 없는 무서운 질병이 가득하다. 옛날에는 콜레라, 장티부스, 천연두 등의 급성 전염병과, 결핵이나 폐렴 등의 감염증 질병이 많았으나, 현대에는 만성질환인 뇌혈관질환{腦血管疾患}, 악성신생물{惡性新生物 ㅡ 암}, 심질환{心疾患}등과 같은 질환이 많으며, 사회적 요인으부터 발생하는 노동 재해{勞動災害}, 직업병{職業病}, 교통사고, 공해{公害}, 약해{藥害},정신장해{精神障害} 등 예측할 수 없는 질환들이 많이 발생하는 현상이다. 과학이 발달하고 의술[醫術}이 고도화되었지만 현대 사회에서 발생하는 질병은 더욱 만성화되고 고질화되어 질병에 대한 공포심은 날이 갈수록 증대하여 간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이다. 인간의 일상 생활은 생명을 유지하고 존속시키며 발전시키는데 그 목표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건강을 중시하고 건강에 커다란 가치를 인정하며 최고 수준의 건강을 향유하고자 하는 끊임없는 노력이 계속되어 왔으며, 인류의 건강이 평화와 안전에 불가결의 요건이 됨을 자명한 이치로 확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원류가 불교경전 구석구석에 스며 있는 것이다.
[대지도론{大智度論}에는, 한 의사가 만병을 고칠 수 있으면 대의{大醫}요, 수십 종의 병밖에 고칠 수 없으면 중의 {中醫}라 했다. 불교의료의 근본 정신은 만병을 고치는 대의{大醫}를 말함이요, 의사, 간병인, 환자가 한마음 한덩이가 되어 치료 효과를 상승작용시키는 화합심{和合心}이다. 의사가 아무리 고도의 의료 기술을 가지고 환자를 치료한다 하여도 환자의 효응 없이는 바람직한 성과를 기대할 수 없으며, 반대로 환자는 의사의 훌륭한 시료{施療} 없이 조기(早期)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의계{醫戒}, 간병인계{看病人戒}, 병인계{病人戒}를 말씀하셨다.
[1]醫戒
[금광명최승왕경{金光明最王經}]의 제병품{際病品}에는 의사에 대한 훈계{訓戒}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요약하면, 의사는 기후의 변화를 잘 관찰하여 풍병{風病}, 열병{熱病}, 담음{淡蔭} 등의 병상{病狀}을 알고, 치료 방법을 회득{會得}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이에 따라 약과 식이요법{食餌療法}을전해 주어야 한다. 이 경우, 자민{慈愍}의 마음으로 병자를 치료해야지 이재{利財}를 갈취하는 마음을 가져서 는 안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의사는 사람의 생명을 손에 쥐고 있기 때문에 양질{良質}의 의료를 환자에게 베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고도의 의술을 연마하기 위하여 정진을 거듭해야 하고,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의사가 병자의 치병{治病}을 미끼로 이재{利財}를 갈취해서는 안된다는 의료 윤리를 강조했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어떠한가? 의사의 수입이나 병원경영 관계로 과다한 주사와 투약으로 약해{藥害}와 의원병{醫源病}이 발생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부처님께서는 이미 이천 년 전에 오늘의 현실을 미리 내다 보시고 의료윤리를 강조하셨는지도 모른다.
대지도론에는 불법{佛法}을 약{藥}에 비유하여 말했다. [약은 병자가 복용하여 병을 고치는데 목적이 있으며, 병자의 빈부귀천{貧富貴賤}을 문제시하지 않는다] 의료가 화폐와의 교환가치로 통용되는 사회에 서 어떻게 의사가 빈부귀천을 문제시하지 않고 지심으로 병자를 돌볼 수있을까? 그리고 의사는 과학자이며 과학자는 준엄과 냉정한 이성을 필요로 하는데 의사는 냉엄한 과학자임과 동시에 따뜻한 정을 아는 종교가가 아니면 안 된다,
과학적 냉엄과 종교적온정을 겸비할 때 비로소 훌륭한 의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의사가 병자에 대해서 자민의 정을 갖지 않고 물질적인 면만을 냉정하게 강조하고, 빈부나 신분의 고하에 따라 치방{治方}을 달리 한다면, 병자의 마음을 죽이고 마는 결과가 된다. 의술이 인술{仁術}이며, 의사가 종교심을 함양해야 하는 까닭도 여기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 시대의 의사는 거의 승려였으며 승단{僧團}의 일원으로서 수행정진하였기 때문에 종교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승의{僧醫}가 인술{仁術}로써 의료를 실천하고, 의료의 윤리를 제창한 배경에는 승려로서의 생활 보장이 확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의료 수입을 문제로 하지 않았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의사는 일면 냉엄한 과학자일 것을 요구한 반면 온정있는 종교가일 겻을 요구한것은 의사의 양면성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셨기 때문이다.
[2] 看病人戒
병을 치료하는 데에는 의사의 치료가 중요하지만 의사의 치료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환자를 보살피는 간호인의 역할이다. 부처님은 간병인 看病人}에 대한 엄중한 규칙을 정하여 간호에 만전을 다 했다. [범망경{梵網經}에는 [모든 불자여 , 병자를 보면 항시 공양하고 부처님 대하듯 지심으로 간호하라. 여덟 가지 복전{福田}중에 간병{看病} 복전이 최고이다,]라고 쓰여 있으며 [사분율{四分律}에는, [간병은 부처님 모시는 것과 똑같은 선행{善行}이다]라고 말하였으며, 석가모니께서는, [나를 공양할 뜻이 있으면 먼저 병자를 돌보라]고 하였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사문을 공양하는 것 이상으로 병고[病苦}에 시달리는 사람을 간호하는 것이 중요한 공덕이 됨을 석가모니께서는 잘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병자를 간호하는 사람은 조금이라도 나태한 마음이나 혐오의 마음을 품지 말고 언제나 자비로 운 마음으로 병자를 대해야 한다고 했다. 그럼으로써 병이 빨리 치료될 수 있다.
간병계는 [십송율{十誦律}], [마하승기율{摩詞僧祇律}], [대품{大品}] 등의 경전에 나타나 있다, 이러한 경전 속에 있는 간병계를 요약하면 대충 다음과 같다.
[1] 자민의 마음을 가지고 병자를 대하라.
[2] 약탕[藥湯}을 잘 조합{調合}하여 안배{按配}하라.
[3] 병자의 호증{好憎}을 살펴 병자에게 적합한 음식을 제공하라.
[4] 병자의 오물{汚物}을 항시 깨끗하게 치워주어라.
[5] 병자를 위하여 불법{佛法}을 말하여 주고 병자로 하여금 법희{法喜}를 느끼도록하여 주어라.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에는 이러한 간병도 모두 승려가 하였지만 지금은 직업적인 간호부가 맡고 있다. 온정이 넘처 흐르는 간호는 자기를 텅비운 지심의 성의가 아니면 안된다.
[3] 病人戒
의사나 간호부가 아무리 성심을 다하여 병을 치료하여도 병자가 의사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자기의 마음대로 행동한다면 치료는 늦어지거나 어려워진다. 그래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의사나 간병인{看病人}이 지켜야 할 계율{戒律}을 정하고 동시에 병자에 대해서도 늘 지켜야 할 계율을 정해 놓으셨다. 부처님께서는 [마하승기율{摩하 僧祇律}에 병자가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방법(病人戒이 적혀 있다,
{1} 병에 따라 약을 먹고 병에 따라 음식을 섭취하라.
{2} 병의 증손{憎損}을 알라.
{3}간병인{看病人}의 말에 순응하라.
{4}고통을 능히 참아 이겨라.
{5} 나태한 마음 없이 혜{慧}를 닦아라.
[대품]에는 5법을 지키지 않는 병자는 간호하기가 힘들고, 병을 치료하는데 불리한 일을 골라 하고, 약을 복용하지 않고 병세의 실재를 모르며 육신의 극렬한 고통을 참고 이겨내지 못하면 쾌유하기 힘들다 하였다. 병자 자신이 스스로 섭생을 지키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한다면 나을 병도 낫지 않는다. 병은 의사의 치료만으로 낫는 것이 아니다. 의사와 간호부, 병자가 삼위일체가 됨으로써만 치료 효과를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명의{名醫}가 있고 아무리 훌륭한 명약{名藥}이 있어도 셋이 조화되지 않으면 병은 쾌유되지 않는 것이다.
(국제 불교도협의회 국제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