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갓집 맏며느리인 내가 해마다 치르는 첫 해 첫 새벽의 일과로 대문부터 활짝 연다. 골목은 아직도 깊은 어둠에 잠겨 있다. 살갗을 찌르는 날카로운 냉기에 몸이 오싹하며 머릿속이 쇄락해진다. 그 예리한 차가움이 새해라는 신선한 감각으로 가슴에 와 닿는다.
주방으로 들어간다. 벽에 마지막 남은 일력(日曆) 한 장을 마저 떼어내고 나니 어느덧 내 인생이 사십이유여(四十而有餘)의 고비도 넘어 망오십일(望五十一). 덧없는 세월에 잠시 가슴 섬찟했으나, 그것은 세월이 덧없음이 아니라 게으름으로 하여 잔고 없는 텅 빈 나의 손이 허전했음임을 깨닫는다.
그러나 새 일력으로 바꾸어 걸며 손아름 뿌듯한 그 부피에 나의 마음은 어떤 소망으로 부푼다. 새 일력과 함께 펼쳐질 새해는 새로운 시간, 미지의 세계. 설레는 가능성으로 어느덧 나이를 잊고 젊음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새해는 거르는 법 없이 세세연연 나를 찾아와 줄 터인데 구태여 먹는 나이를 안타까워할 것이랴.
만약 사정이 허락한다면 금년부터라도 사군자와 서예를 익히고 싶다. 새해가 되면 언제나 고마운 분들을 상기해 내고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 그러나 뱃속에서의 육조배판이 무슨 소용이랴. 작은 정성이나마 표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면서도 늘 곤혹을 면치 못하다가 정초를 넘겨 버리곤 한다. 내 정성과는 아무 상관없는 그림과 인사말이 인쇄된 그 흔한 연하장을 사서 보내드리기는 예절을 잃고 싶지 않은 내 마음이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다. 금년에는 사군자와 붓글씨를 꼭 배우게 되었으면 좋겠다.
또 불경공부를 좀 착실히 해보고 싶다. 그러면 나도 조금은 더 착한 사람이 되어 주름진 얼굴이나마 누구에게나 새해를 느끼게 하는 밝은 미소로 대하게 될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기온이 내려가고 눈이 쌓여도 신년은 천지 구석구석 봄을 느끼게 한다. 나뭇잎 줄기 밑에 새 순을 예비하듯, 꽃잎 밑동에 씨방을 마련하듯 새해는 이미 봄을 잉태하여 간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 추운 이에게 더욱 따사로운 빛이 되어 줄 새 봄을…….
삼재팔난(三災八難) 사고팔고(四苦八苦)의 고해에서 시련이 많고 슬픔이 많아도,「금년은 괴로웠지, 어서 이 해가 가 주었으면…….」하고 새해에 거는 희망으로 해서 아주 좌절하지 않을 수 있는 우리의 삶, 부처님의 자비 광명이 그러하듯 이 희망의 새해가 빈부귀천 가리지 않고 사람 누구에게나 골고루 찾아와 준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자연이 이룩한 가장 위대한 걸작이 매일 아침 새롭게 해가 뜨는 일이라면, 우리 선인들이 전해 준 가장 훌륭한 업적은 해마다 새로운 신년을 맞게 해 준 일이 아닐까.
오늘따라 별나게도 붉고 커 보이는 해가 칼칼하도록 맑은 얼굴을 중천으로 쑤욱 몰려 밀고 있다.
[보리수 그늘] 정월 아침에
- 정재은
- 승인 2007.12.1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보리수 그늘
저작권자 © 불광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