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침야장(不寢夜長) 잠 못 이루는 자에게 밤은 길고,
피권도장(疲倦道長) 피곤한 자에게 갈 길은 멀다.
우생사장(愚生死長) 바른 법 알지 못하는 자에게
막지정법(莫知正法) 생사의 갈 길은 멀고 길다.
내가 곧잘 즐겨 읽는 법구경 가운데 우암품(愚闇品)에 나오는 구절이다. 얼마나 멋들어진 말씀인가.
이 경전을 모아 엮고 번역한 이는 각기 다르지만, 이 경(經)의 원작자는 물론 석가모니 부처님이시다.
내가 법구경을 처음 대한 것은 서울 성북구 돈암동 소재 녹야원(鹿野苑)에서인데, 그때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대학 입시 공부에 급피치를 올릴 때였다. 잠시 머리도 식히고 말씀도 나눌 겸 해서 당시의 주지로 계셨던 김도안 스님(현재는 미국 나성 관음사에 계심) 방에 들어갔다가, 책상 위에 몇 권의 경전들이 놓여 있길래 그중에서 무심코 한 권을 펴 들었을 때 첫 번째로 맞닥뜨린 게 바로 앞에 소개한 구절인 것이다. 물론 경남 해인사에 호국 팔만대장경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특히나 법구경은 이제 막 불교에 입문하는 사람에게, 그리고 이미 불교에 깊이 들어간 사람에게 좋은「스승」이 되겠고, 또 불교신자가 아니더라도 긴 긴 밤 잠 못 이루어 뜬 눈으로 날을 샜거나 피곤에 지쳐 먼 길을 여행한 경험과, 어떻게 해야 사람답게 사는 길인지 생(生)을 아파하고 괴로워 몸부림치고 있는 비불교인(非佛敎人)에게 이 새해에 한 번 읽어 보도록 권하고 싶다.
왜냐하면, 나는 이 한 권의 경전으로 인하여 지금까지의 나의 직장 생활 가운데 몇 년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을 불교권(佛敎圈) 안에서 불교운동으로 세월을 보내게 되었고, 또한 불교권을 못 떠나는 지금도 법구경 한 권을 내 인생의 지침서(指針書)로 삼고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한 권의 경전이 주는 감화(感化)는 그 사람의 인생도정(人生道程)을 선(善)과 감사의 길로 바르게 인도하는 큰 힘을 지니는 것이다.
순응보다는 반항을, 긍정보다는 부정을, 순풍에 돛단배처럼 원만한 항진(航進)보다는 좌절과 역경과 시련이 더 많았던 삶의 터전을 그나마도 조금은 덜 괴롭게, 덜 고통스럽게 해줌으로써「생사의 갈 길이 멀고 길지 않게」하기 위하여「바른 법」을 알고 배우는 일에 게으를 수가 없었다. 나를 알고 내가 내 자신과 싸워 이기기 위한 한때의 부단한 노력이 없었더라면, 그 참담했던 시절에 법구경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지금의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하고 생각할 땐 더없이 부처님을 찬탄하게 되고 또 절에 가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그리하여 늘 법구경을 펴들며 마음으로 읊조리는 말이 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이 한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