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찰을 찾아서] 영취산 통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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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찰을 찾아서] 영취산 통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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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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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찰을 찾아서

   ①  머리말

   한국의 사찰은 각기 나름대로의 특징과 성격을 지니고 있다.  동화사는 유가종과 깊은 관련을 갖고 있었고, 금산사는 법상종의 근본도량이었고 부석사는 화엄종의 근본도량이었다.  또 통도사는 불보사찰, 해인사는 법보사찰, 송광사는 승보사찰, 범어사는 선찰대본산이라 일컬어 온다.  이렇듯 대부분의 명찰들은 고유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우리들이 절을 찾을 때, 그 절의 건물이나 문화재, 경치등 외형적인 것에만 눈길을 돌릴 게 아니고 그 절이 갖고 있는 역사적인 배경, 고유한 성격, 그 절의 창건정신등 보다 깊숙한 곳에 눈을 열고 마음닦는 도량으로서의 사찰의 본래적 의미를 깊이 새겨봐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찰을 바로 아는 일 또한 중요하다 하겠다.  이에 우리의 선인들이 정성을 드려 갈고 닦은 도량을 불보사찰 통도사부터 살펴보기로 한다.

   ②  창건역사 및 유래

   통도사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였기 때문에 불보사찰이라 불리게 되었다.  통도사란 명칭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해석이 전해져 온다.   첫째, 통도사가 위치한 산의 모습이 부처님께서 설법하시던 인도의 영축산의 모습과 통하므로 통도사라 이름했단다.  둘째, 스님이 되려는 사람은 모두 통도사의 계단을 통한다는 의미에서 통도사라 했다고 한다.  세째, 모든 진리를 회통하여 일체 중생을 제도한다는 의미에서 통도사라 했다한다.  통도사는 서기 646년(신라 선덕여왕25)에 자장율사가 창건하였다.  그후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03년(이조 선조36)에 송운대사가 재건하고 다시 1641년(인조19)에 우운대사가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통도사의 창건에 대한 유래가 다음과 같이 전해온다.  창건후 자장율사는 서기 638년에 불법을 구하러 당나라에 들어가서 종남산 운제사 문수보살상앞에서 밤낮으로 부지런히 참회 정진하였더니 하루는 문수보살이 나타나서 말씀하시기를, 「그대는 무슨 법을구하러 멀리서 왔는가?」하니 자장이 말하기를,「오직 불법을 구하러 왔나이다」하고 대답했다. 

문수보살이 말씀하시기를 「불법을 구하고자 할진대 이 게송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일체법을 알면 자성이 있는 것 없네, 이와 같이 알면 바로 노사나 부처님을 보리라.」하고 가사 한 벌과 부처님 사리등을 자장에게 주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본사 석가여래계서 친히 입으시던 가사와 부처님의 진신사리이다.  그대는 말세에 계율을 지키는 사문이 될 것이므로 내가 이제 이것을 그대에게 부촉하니 그대는 받들어 가지라.  너의 본국 신라의 남쪽, 축서산 아래 득룡이 거처하는 연못이 있는데 그대가 그 연못에 금강계단을 쌓고 부처님의 사리와 가사를 봉안하면 삼재가 들어오지 못하며 불법이 오래 머무르리라...」하니 얼마후에 자장이 사리와 가사 등 성물들을 가지고 귀국하여 축서산 아래 독룡이 사는 연못에 이르러 용을 위하여 설법하고 악심을 조복받고 못을 메워 계단을 쌓아 사리와 가사를 봉안하였다.

   ③  창사정신

   통도사는 계율을 그 근본정신으로 하고 있다.  불교 신앙의 첫째 요건인 계율을 수지하고 확고부동한 불퇴전의 믿음을 지닐 수 있는 요건인 계율을 창사정신으로 삼았던 것이다.  계율을 지니는 일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첫째가는 요건이요, 불교신앙의 발단이라고도 할 수 있다.  통도사의 이러한 성격은 창건주인 자장율사의 계율정신에 의해 확립되었다.  자장율사의 투철한 계율정신은「내 차라리 하룻동안 계율을 지키다가 죽을지언정 계율을 어기고 백년동안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하신 그 유명한 말 속에 응결되어 나타나 있다.  통도사는 이러한 계율정신을 창사의 근본정신으로 삼았던 것이며, 이로 말미암아 신라불교에 있어서 계율의 근본도량이 된것이다.

   ④   통도사의 특징적 건물.유적

    금강계단           창건 당시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한 금강계단은 대웅전 뒤 북쪽에 있는 통소사의 창사정신이 집결되어있는 최상의 성지로서 전체 가람배치의 중심이 되는 곳이다.

   대웅전               신라 선덕왕 15년9서기64+0에 자장율사에 초창된 이래 수차에 걸쳐 중수를 거듭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버렸는데 지금의 건물은 인조대왕 19년 (서기1641)에 우운대사가 중건한 것이다.  대웅전이란 석가세존을 모신 곳을 말하는데 대웅이란 부처님을 가리키는 말이다.  통도사의 중심건물인 대웅전에는 불상이 모셔지지 않고 있다.  석가여래의 진신사리가 법당 뒤 쪽에 모셔져 있기 때문에 따로 불상을 모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정방형의 외부의 사면에는 각각 다른 이름의 편액이 걸려있다.  동쪽에는 대웅전, 서쪽에는 대방광전, 남쪼ㄱ에는 금강계단, 북쪽에는 적멸보궁이라고 했다

   횽화전과 봉발탑    통도사 약지에 의하면 공민왕 18년에 초창되었다고 하며, 영조대왕 원년(1725)에 청성대사에 의하여 중수되었다고 전한다.  이 용화전앞에는 화강석을 발우모양으로 조각하여 안치했는데 현재 보물 491호로서 그 모양이 특이하다.  연화대 위에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다시 연화대롤 놓고 연화대는 육중한 발우를 받치고 있다.  그리고 그 위에 육중한 뚜껑을 덮었는데 전체의 높이는 230센치미터로 내세의 미륵 신앙에 대한 신표로 조성되었다고 전한다   구룡지     그러니까 통도사는 창건이전에는 그 주위가 큰 못이었다고 한다.  그 못에는 구룡이 살고 있었는 데 자장율사가 문수보살의 부촉에 의하여 구룡을 항복받아 퇴거시키고 못을 메워 대가람을 세웠다고 하느데 구룡 가운데에서 다섯 용은 오룡동으로 또 삼룡은 삼곡동으로 가고 오직 한마리가 남아서 기지를 호지할 것을 서원하므로 못에 모무르게 했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수심은 한길도 다 안되지만 아무리 가뭄이 심해도 물이 줄어들지 않는다.  이외에도 명부전, 나한전, 삼성각, 중노각, 관음전, 대광명전, 세존비가, 장격갖등 대가람의 위용을 갖춘 도량으로서 오늘날까지 그 명맥을 면면히 이어오고 있다.

   ⑤  현황

   가람은 길게 동서로 뻗쳐 웅장하게 펼쳐있다.  통도사에 당도하면 맨먼저 <영취산. 통도사>라는 큰 현판이 걸려있는 일주문을 보게 된다.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을 들어서면 영산전, 극락전, 약사전, 가람각 등이 있고 그곳에서 서쪽으로 조금가서 불이문을 지나면 대광명전, 용화전, 관음전, 해장보각이 있다. 조금더 서쪽으로 가면 대웅전 나한전, 명부전, 삼성각, 산령각이 보인다.  이밖에 보광전, 감로당 일로향각등 크고 작은 67동의 건물이 깨끗하게 단장되어 있다.  통도사의 산내암자는 서북쪽으로 안양암, 자장암, 극락암, 비로암, 백운암, 축서암 그리고 남산쪽으로 보타암, 취운암, 수도암, 서운암, 사명암, 백련암, 옥련암이 있어 모두 13개 암자이다.  특히 극락암의 호국선원에는 한국의 대선지식 경봉노스님께서 지도하고 계신다. 

해마다 여름과겨울 결제철이면 수많은 납자들이 이곳을 거쳐 노사의 방망이질로 단련을 받고 간다.   보광전의 보광선원에는 현 동국학원 이사장이신 월하 조실 스님께서 이 곳을 찾은 맣은 참선객들을 지도하고 계신다. 통도사 불교전문강원에는 약40여명의 학인들이 종범강사 스님의 지도로 부처님의 경전을 연구하고 있다.  또 머지않아 정토수련원을 개설하여 나이 많은 노스님들이 모든 노후문제를 잊어버리고 오직 수련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초우 주지스님은 말씀하신다.  이것은 현재 우리나라 사찰 가운데 처음있는 일로서 수도승들의 노후보장책에 대한 매우 고무적인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사실 의지 할 데 없는 노스님들로 하여금 생을 마칠 때까지 오직 수도에만 전념케하는 이런 제도는 모든 본사들이 본받아 실시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지금 우리나라의 승려가 되는 분이 너무 난맥을 이루고 있는 실정인데 전국 사암에서 추천되어온 득도 대상자들을 이곳 계율의 근본도량인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일정기간 모든 계법을 익히게 하고 수계절차를 일원화하여 수계토록 함으로써 아무렇게나 승려가되는 난맥상을 막고 승려의 지계정신을 엄정히 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주지스님은 강조하신다.  도량을 정숙한 분위기로 가꾸어서 관광지가 아닌 수도장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이곳을 찾는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이 맑아지고 깨끗해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하신다.  방송시설을 갖추어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여 이 절을 찾는 사람들로 하여금 부처님의 가르침에 가까이 하여 부처님의 향기 속에 젖게 하겠다고 하신다.  또한 도계양성을 위한 장학금을 지급하여 연구에 전념토록 하고 있다고 한다.  말로만 도계양성을 할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인재를 키우는 정책인 배려가 모든 절에서 하루 빨리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또한 우선, 통도사 교구내의 군종법사에게만이라도 적극적인 후원을 하여 군 포교에도 힘쓰게 하고 이곳으로 수련하러 오는 학생들에게 가능한한 최대의 편의를 제공하여 젊은 불자들을 부처님의 품안에 안길 수 있도록 하겠으며 본사에 우선 한명 정도라도 상임포교사를 둘 예정이라고 하신다.  이렇듯 모든 절들이 수도장으로 바꿔져 절을 찾는 사람들에게 불심을 키우고 도제양성에 인색하지 않고, 포교에도 적극 힘쓴다면 한국불교의 앞날이 사뭇 밝아 질 것이라고 초우 주지스님은 강조하신다..  하루빨리 한국 불교가 새로운 차원에서 진정한 불국토건설에 앞장서 매진해 나가지 않으면 안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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