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석양이
김선우
하루가 저물어 간다, 참 잘 곰삭은 저 저녁 풍경이 실은 천연스레 뒤를 보이고 앉아 볼일 보는 크낙한 엉덩이라면 저물녘 저 태양이 문이라면
금빛 항문-어슴푸레 열리는 새벽으로부터 한낮 지나 저물녘에 이른 우리의 하루가 뒤를 보이고 앉아 시름없이 일을 보는 크낙한 엉덩이의 한 오분 시원한 용변과 같다면
수성이랄지 목성은 그녀의 젖가슴쯤 명왕성이랄지 천왕성은 쌔근거리는 정수리 문쯤이 될까
금빛 거웃 바람결에 흔들려 드문드문 하늘자리 젖는 저 풍경이 우리가 셈하지 못할 어떤 하루의 한 오분 마지막 순간이라면
저물어 간다, 허방지방 거미줄 치고 있는 목마른 나의 하루는 긴가 너무 짧은가 아득한 물병자리 옆얼굴이 슬몃 보였는데 뭉게구름 느릿느릿 금빛 항문을 닦아주며 흐르는데
― 『도화 아래 잠들다』(창작과비평사) 중에서
-----------------
김선우 _ 1970년 강원도 강릉 출생으로, 1996년 「창작과비평」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현재 ‘시힘’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으로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도화 아래 잠들다』, 『내 몸 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등이 있으며, 산문·칼럼집으로 『물 밑에 달이 열릴 때』, 『우리말고 또 누가 이 밥그릇에 누웠을까』 등이 있다.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우수상, 노작문학상 우수상, 천상병시상 등을 수상했다.
시 평
김선우의 도발성은 배변과 출산을 비롯해서 우주적인 생태와 인간의 모든 희로애락, 육체적인 작용이 하나의 원리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과정에서 독창적인 의미를 획득하고 있다. 즉, 똥과 태양, 배변과 일출 사이의 유사성을 통해서 우주적인 생태의 상징을 추출하고 있는 그녀의 상상력은, 상당히 익숙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금기에 덮여 있던 생각의 출구를 열어 놓은 결과물이다.
아름다울 수 없는 행위로 터부시된 여러 가지 배설작용과 그 결과물 즉, 똥, 월경, 오줌, 또 출산과정의 적나라함까지 그는 우주적인 생태의 차원에서 바라봄으로써 이것들을 새로운 ‘미적 대상’으로 변형시킨다. 이 점이 무엇보다도 자극적이면서 동시에 건강한 그녀의 미덕이다.
굳이 여성임을, 여성의 억압을 힘주어 강조하지 않지만 이미 그녀는 여성의 내부에 담긴 신적인 성향을 이런 식으로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그녀의 시는 도전적이면서도 동시에 모든 생명을 포용하는 상생의 원리를 그 안에 담고 있다.
인용된 시처럼 우주가 더러움과 깨끗함, 귀함과 천박함의 구분이 없듯이 인간의 생태적 우주는 한꺼풀 편견을 벗어 버리면 우주의 생태처럼 그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 자연스러움 안에 신성이 깃드는 것이다. 그녀가 여성의 몸을 통해서 우주를 읽는 것은 이 점에서 자연스럽다. 그것은 그녀가 의식적으로 여성적인 것과 남성적인 것을 구분하지는 않으려고 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그녀는 이 점에서 페미니즘의 전사라기보다는 누구보다도 여성의 몸이 우주와 통하는 기운을 잘 느끼고 또한 깨닫고 있는 시인이다.
더러움과 깨끗함의 구분이 없듯이 그녀의 시에는 여성성이 넘쳐흐르되 그것이 섣부른 ‘분별지(分別智)’로 안착하지는 않는다. 이 점이 차별적 사유를 넘어서 상생과 순환, 치유를 꿈꾸는 그녀의 가장 큰 장점이다.
--------------
김춘식 _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1992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현재 동국대 국문과 교수, 계간 「시작」 편집위원이며, 평론집으로 『불온한 정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