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 연
세월이 흐르는 걸 잊을 때가 있다. 사는 게 별반 값어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파편 같은 삶의 유리조각들이 너무나 처연하게 늘 한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무섭게 반짝이며
나도 믿기지 않지만 한두 편의 시를 적으며 배고픔을 잊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랬다. 나보다 계급이 높은 여자를 훔치듯 시는 부서져 반짝였고, 무슨 넥타이 부대나 도둑들보다는 처지가 낫다고 믿었다. 그래서 나는 외로웠다.
푸른색, 때로는 슬프게 때로는 더럽게 나를 치장하던 색. 소년이게 했고 시인이게 했고, 뒷골목을 헤매게 했던 그 색은 이젠 내게 없다. 섭섭하게도
나는 나를 만들었다. 나를 만드는 건 사과를 베어 무는 것보다 쉬웠다. 그러나 나는 푸른색의 기억으로 살 것이다. 늙어서도 젊을 수 있는 것. 푸른 유리조각으로 사는 것.
무슨 법처럼 한 소년이 서 있다.
나쁜 소년이 서 있다.
-시집 『나쁜 소년이 서 있다』(민음사) 중에서
허연 _ 196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추계예술대학 문예창작과와 연세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1991년 「현대시세계」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저서로는 시집 『불온한 검은 피』, 산문집 『그 남자의 비블리오필리』가 있으며, 2006년 한국출판학술상을 수상했다. 현재 매일경제신문 문화부 기자로 있다.
시 평
누구나 ‘한 때’가 있는 법이다. 평생을 두고 쉽게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 있는 그런 ‘한 때’가 종종 정신없이 바쁜 일상을 비집고 들어와 넋을 놓게 만든다. “푸른 색의 기억” 마치 ‘한 때’에 모든 삶과 영혼을 못 박아 버린 듯한 기억, 그것은 아프고 시리며 찬란하다.
“무슨 법처럼 한 소년이” 우두커니 서 있는 장면을 떠올리며 일상으로부터, 현재로부터, 모든 세속적 삶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누군가를 간신히 기억에 떠올리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법처럼’ 거스를 수 없는 기억으로 남은 ‘푸른 기억 속의 나’ 그것은 이미 지나가 버렸으나 ‘운명’ 같은 것이기에 ‘법처럼’ 시인의 삶을 지배한다.
“늙어서도 젊을 수 있는 것. 푸른 유리 조각으로 사는 것.” 시인의 모든 삶은 그 순간에 고정되어 있으며 그 기억 이후의 삶은 어쩌면 ‘잉여의 것’ 혹은 ‘군더더기’인지도 모른다. 설사 그 소년이 나쁜 소년이었을지라도 그는 여전히 무섭게 반짝이며 찬란하게 그 자리에 서 있다. 왜? 어째서? 그는 법처럼 그 자리에 못 박혀 있는가? 아마 그 이유는 “나는 나를 만들었다. 나를 만드는 건 사과를 베어 무는 것보다 쉬웠다”라는 구절 속에 담겨 있지 않을까.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세상에 던져졌고, 또 피동적으로 누군가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길들여졌으며 거스를 수 없이 결국 넥타이 부대가 되어 삶을 살아가는 이 지극한 평범 속에서, ‘나쁜 소년’은 길들여지지 않은 모습으로 내가 만든 그대로의 모습으로 그곳에 서 있다. 무슨 법처럼, 단호하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가 만든 나, 사과를 베어 무는 것보다 쉬웠던 그 일이, 별반 값어치가 없는 삶의 반대편에서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것이다.
일상적 삶, 안정된 삶의 반대편에 서 있으므로,
그는 나쁜 소년이다.
처연하게 파편처럼, 서 있으므로,
그는 나쁜 소년이다.
섭섭하게도, 이제 한 때 ‘슬프게 더럽게’ 나를 치장하던 그 색이 이젠 내게 없으므로,
그는 나쁜 소년이다.
그 나쁜 소년은 법처럼, 나를 그 젊은 기억 속에 살게 한다.
법처럼 그 소년이 ‘나’를, 내가 누구인지를,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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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식 _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1992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현재 동국대 국문과 교수, 계간 「시작」 편집위원이며, 평론집으로 『불온한 정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