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의 특정된 기능을 요구하는 대승불교의 교화활동은 미술적 방법을 적용함으로써 더욱 구체화되었다. 그러므로 교주에 대한 미술 뿐 아니라 보살에 대한 미술 활동 역시 매우 중요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그 가장 대표적 보살로는 관음(觀音)과 함께 문수(文殊)와 보현(普賢)을 들어야 할 것이다. 이들 가운데 관음은 극락정토 미타(彌陀)의 협시(挾侍)로서 자비의 상징으로 표현되었고, 또 문수와 보현은 화엄(華嚴)의 세계에 있어서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法身佛)의 대지(大智)와 대행(大行)을 상징하는 양대보살로써 등장하게 되었다.
특히 이들 가운데 문수보살에 관한 신앙을 중국의 오대산(五臺山) 신앙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일찍부터 성립되었음을 주목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설립자 자장법사(慈藏法師)는 그가 처음으로 체험한 문수보살에
관한 신앙을 중국의 오대산에서 받은 문수보살의 감응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는 귀국 후 황룡사(皇龍寺)와 통도사(通度寺) 등 대찰을 창건함과 동시 결국 월정사(月精寺)를 중심으로 하는 오대산 신앙을 국내에서 완성하기에 이른 것이다. 오대산 신앙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문수보살에 대한 신앙이 그 중심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먼저 협시로서의 문수보살은 대체로 일반적 보살의 형태를 취하는 것과 또는 사자를 탄 모습(騎獅像)으로 나타나지만 화현으로서의 문수는 그때 그때 교화의 방편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일정하지 않다.
이곳에서는 먼저 한국 불교미술상에 나타나는 문수보살에 대한 일반적 개념 및 형태를 살펴보고 다음으로 협시로서의 문수 또는 화현으로서의 문수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Ⅱ
문수보살은 불교미술에서 말하는 소위 대보살 가운데 포함되고 있는 매우 중요한 보살이다. 8대보살이란 대체로 문수·보현·관음·세지·미륵·지장, 금강장·제장애 보살을 말함인데 이들의 위치는 『좌체우용(佐體右用)』이라 하여 앞의 보살 즉 문수, 관음, 미륵, 금강장 등은 주존의 왼쪽에 놓이게 된다. 그러므로 문수보살 역시 본존의 왼편에 위치하는 게 원칙이다. 그런데 문수보살의 특징은 일반보살과 크게 다를 바 없으나 다만 몇 가지 특징이 잇을 뿐이다. 즉 『문수오지(文殊五智)』라 하여 머리부분에 머리카락을 다섯 가닥(五髺)으로 표현하는 점이다. 이는 대일여래(大日如來)의 다섯 가지 지혜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다른 보살과 구별되는 점이다. 그리고 지물(持物)로는 대체로 보현보살이 연꽃을 갖게 된다. 또 드물게는 양손 모두 지물을 갖는 경우가 있는데 바른 손에 칼 왼손에 청연화(靑蓮華)를 갖게 된다. 이들은 모두 지혜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무명을 끊은 지혜의 칼, 또는 청정을 뜻하는 연꽃에 상징으로서 이해된 것이다. 또는 양손에 각기 오고(五鈷)의 금강저(金剛杵)와 불자(拂子) 또는 경권(經卷)과 경첩(經帖)을 갖게 되는데 이들 역시 무명을 쳐 없애고 번뇌를 털어버리는 등 지혜를 상징하는 도구로서 일관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보현보살이 코끼리를 타고 있는데 반해 문수는 사자를 타고 있는 것도 위엄과 용맹을 상징하는 것이다. 화현문수 역시 예부터 많이 조성됐겠지만 애석하게도 국내에 현존하는 것은 없고 전설을 간직한 동자상이 오대산 상원사에 전할 뿐이다.
Ⅲ
먼저 협시로서의 문수는 역시 토함산 석굴암 문수보살을 그 대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물론 주벽(周壁) 여러 상의 존명(尊名)에 대해 아직 완전한 해명이 없고 또 혼돈을 가져오기도 했지만 그 위치나 조형으로 봐 본존 왼편에서 연화좌 위에 직립한 보살이 틀림없는 문수보살로 추정된다. 오른손에는 보발을 들었고 왼손으로는 흘러내리는 천의를 부드럽게 받쳤다. 그리고 보발(寶髮)은 측면관의 부조상이므로 3가닥만 보이고 있지만 이면에 두 가닥이 더 있는 것이 대칭에 의해 충분히 짐작된다. 그렇다면 8세기 중엽에 이미 이 같은 아름다운 부조로서 문수보살에 관한신앙을 왕성했다는 말이 된다. 물론 이는 자장의 구국 후에 일로서 오대산 신앙의 교리적 뒷받침을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신라 사회에 있어서 문수보살의 신앙이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는 해석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고려시대에도 이를 문수의 존상과 함께 불화가 많이 조성되었다고 짐작되지만 현존하는 작품은 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다만 조선시대 불화로서는 청양 장곡사 영산장 속에 문수보살을 주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후기의 작품 조선 영조(25년, 1749년)이긴 하지만 그런대로 구도와 기법이 잘 처리된 작품이다. 주존이 대좌 아래 직립한 보살의 모습 역시 고식을 따르는 수법이며 5지를 나타내는 머리카락이라든지 두 손으로 불자를 받쳐 든 모습이 매우 유연하게 처리되고 있다. 천의는 국화무늬 같은 흰색의 화문을 군데 군데 나타냈고 발아래까지 길게 처져있되 그 옷이 무거워 보이지 않는 것은 역시 율동적 조형미를 최대한 살렸기 때문이다.
또 조선시대에는 목조상(木造像)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들 가운데 금산사와 해인사 대적광전(大寂光殿)의 제상이 주목된다. 금산사는 5여래 6보살의 존상을 배치했고 해인사 역시 주존 비로자나의 협시로서 보현과 함께 문수가 등장하는데 이들은 불자 또는 경권을 갖던 문수 본래의 기본 수법에서 변화도니 채 연꽃을 갖게 되는 점을 주목할 수 있다. 이밖에 사경(寫經)의 변상도(變相圖)나 경전 판화에 나타나는 문수보살을 볼 수 있는데 그 형태는 불화의 경우와 비슷하지만 대체로 합장한 모습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화현으로서의 문수는 삼국유사 등의 사서에서 상당한 영적을 보이고 있지만 이들 기록들은 대체로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할 것이다. 또 현존하는 존상(尊像)으로는 오대산 상원사의 문수동자상을 주목할 수 있다. 이는 세조의 원찰(願刹)로서 그가 직접 친견했다는 문수동자상을 장인으로 하여금 수차에 걸쳐 조성케 한 것이라 한다. 이 동자상은 조각수법이 특이하여 조선시대 목조상으로는 보기 드문 걸작이다. 대체로 조성 년대도 확정할 수 있는 목조상으로서 그 유래와 함께 매우 주목되는 우수작이다.
Ⅳ
지금까지 우리들은 불교미술에 나타난 문수보살의 일반적 성격 및 형태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지목해야 할 것은 문수보살 역시 불교미술의 일반적 성격과 같이 어떤 미의식을 목적으로 하여 이룩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다만 불도들의 정성에 의한 신앙의 소산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현실세계의 무상 앞에 영원을 지향하는 불교미술의 가장 큰 당면문제는 교리의 이해와 함께 교주의 덕화(德華)를 가장 적절하게 표현해야 한다는 두 가지 큰 과젤ㄹ 안고 있었다. 다만 부교미술이 중생이 중생교화의 한 선도적 장편이요, 또 일ㄹ 위한 신앙행위라고 한다면 문수존장에 대한 착실한 조성의지도 좋겠지만 문수의 감응이나 영적(靈蹟)에 관한 미술적 표현이 더욱 요청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