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밀 교학강좌(2)-진리이신 부처님
이 세상의 선지식이란 거룩하고 훌륭한 모습만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선재동자의 구법과정은 이와 같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교묘하게 상징하고 있습니다.
선재구법(善財求法)
선재동자(善財童子)는 화엄경의 제일 마지막인 입법계품에서 나오는 동자입니다. 이 동자는 문수사리보살이 장엄당 사라림의 대탑묘(大塔廟)에 이르렀을 때 복성의 사람들 중에서 대지(大智)라는 우바새(優婆塞)가 오백 명의 동자를 데리고 문수사리보살께 부처님의 가르침을 구하였는데, 이 때 선재동자는 문수보살로부터 가르침을 받고는 커다란 서원을 세우게 됩니다.
"도대체 이 세상의 진리라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을 내가 끝까지 파헤쳐 보리라" 이러한 다짐을 하고 가르침을 찾아 헤매게 됩니다. 그래서 이 아이가 만나는 사람이 53분의 선지식입니다.
이 구도의 과정을 통해서 만나는 사람들이 훌륭한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선재동자가 만난 사람을 살펴보면 깡패도 있고 심지어는 창녀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이 선재동자는 만나면서 거기에서 배워서는 안되는 것들은 버립니다.
이 과정은 하나의 교묘한 상징입니다. 즉 이 세상에 선지식이란 거룩하고 훌륭한 모습만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교묘하게 상징하고 있는 것이 이 선재동자의 구법(求法)과정입니다.
이 선재동자가 제일 마지막으로 만나는 분은 미륵입니다. 미륵보살을 만났을 때 미륵보살은 그를 칭찬합니다. "장하도다. 이 어린 나이에 구도의 집념이 장하다'하면서 선재동자에게 보살의 가르침을 베풀어 줍니다.
선재동자는 미륵보살의 가르침에 힘입어 드디어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선재동자가 깨달음을 얻은 장소는 바로 그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떠났던 바로 그 자리입니다. 이것은 불교가 지니는 고도한 상징이며 발전입니다.
이러한 상징을 의상 스님께서는 '간다 간다 하지마는 본래 그 자리. 닿았다 닿았다 하지마는 떠난 그 자리'라고 표현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명심해야 하는 것은, 진리가 한 바퀴돌고 와 보니 바로 그 자리라고, 해서는 안됩니다. 진리의 세계 깨달음의 세계는 하늘 저 쪽 무지개 건너 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본래 그 자리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선재동자의 구법행각이 왜 중요하냐 하면, 제가 믿기에는 신라의 '화랑'이라는 집단은 이 선재의 집단이었으리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신라의 젊은이들 --김유신 장군이 16살 때 판석산에 들어가서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삼국 가운데서 제일 열세한 우리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며 기도를 드리니 어떤 도인이 나타났는데 그 도인의 이름이 난승입니다.
화엄경에는 십지품이라는 품이 있어 화엄의 도를 닦아 나가는 열 가지의 단계, 십신 십회향 십행 십지 해서 열 가지로 설명하는 것 가운데 두 번째 자리가 난승지입니다. 즉 화엄의 보살이 나타나서 김유신 장군에게 신검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화엄의 세계를 모르고 역사학자들이 이 난승을 산신령이라고 합니다. 매우 어리석은 이해입니다. 이 난승이라는 스님으로부터 보검을 받은 후 그는 국선이 됩니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김유신과 그의 향도를 용화향도라 부릅니다. "용화"라는 것은 하생불이신 미륵보살님이 부처님으로서 나타나신 산이 용화산인 것에서 유래하며, 용화향도란 화랑들이 스스로 미륵의 후예임을 자부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화랑과 그의 무리인 낭도는 선재를 자신들의 모델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선재가 53분의 선지식을 찾아 다니듯이 화랑은 산수를 찾아 다니며 심신을 연마했습니다.
따라서 신라의 젊은이들은 선재가 되려는 원과 행을 가지고 살았음을 알 수 있으니 이 얼마나 멋있는 삶의 태도입니까. 그런데 요즈음 우리들은 어떤 원행을 가지고 사느냐 하면, 어떻게 하면 내가 좀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느냐 등의 원행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신라의 화랑에서 우리는 신라인들의 독창적인 불교의 수용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즉 화엄경과 같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면서, 경전으로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직접 불국토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 것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도 화엄경에 나오는 선재가 되어야 합니다.
신라인들의 불교 수용태도가 상당히 순수한 선행에 바탕을 두면서도 원융적인 이해를 하고 있으며, 창조적 이해를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직접 시리현시키고자 한 그 의지와 노력을 우리 불자들은 배워야 할 것입니다.
의상스님의 생애
의상(의상:625~702.AD)스님은 해동화엄종의 초조(초조)로서 한국 불교사에 큰 발자취를 남기신 분입니다.
스님은 29세에 항복사에서 출가하였고, 650년 당나라에 구법할 뜻으로 원효 스님과 함께 중국으로 가던 도중 원효 스님은 무덤 속에서 물을 마시고 나서 유심(唯心)의 도리를 깨닫고 신라에 남기로 하자, 스님은 홀로 당으로 건너가
양주를 거쳐 662년 종남산 지상사에서 지엄(智嚴)스님 아래서 현수(賢首)스님과 함께 화엄경을 연구하였고 그 결실로서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를 저술하였습니다.
당시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자, 당이 다시 신라를 공격하려 하기에 스님은 이를 알리기 위해 670년에 귀국하여 이 사실을 신라 조정에 알립니다. 이후 스님의 모든 국민들의 존경 속에서 화엄종의 전파에 힘써 부석사해인사옥천사범어사화엄사청계사 등 수 많은 사찰의 건립에 노력합니다.
이 때 당에서 스님을 사모하던 선묘여인이 용이 되어 스님의 불사를 도와 준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스님은 불교의 가르침을 통해서 당시 문무왕이 올바른 정치를 행하도록 하였으며
스스로도 화엄일승법계도를 비롯하여 백화도량발원문(百花道場發願文), 일승발원문(一乘發願文), 법계품초기, 대화엄십문간관법, 관진일승추요, 천세구경 등의 많은 저서를 통해 한국불교를 발전시켰습니다.
특히 중국화엄의 삼조(三祖)인 법장 현수 스님이 화엄수현기(華嚴授玄記)를 짓고 그 부본(副本)을 의상스님께 보낸 것이 지금까지 유전하기에 의상 스님의 영향이 얼마나 지대하였는가를 알려 주고 있습니다.
화엄일승법계도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는 의상 스님이 당에서 지엄(至嚴:600 ~ 668)스님하에서 8년 구도한 화엄사상의 결실로서 7언 30구 210자에 불과하지만 그 담긴 뜻은 화엄의 전 사상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화엄일승법계도'는 각이 54개인데, 이는 선재동자가 53분의 선지식을 만나 가르침을 받고 54에 이르러 불(佛)이 되었음을 나타내는 구도의 여정을 의미하며, 길이 외길인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은 하나임을 뜻하고,
이 법계도의 상하좌우가 대칭인 것은 불교의 사섭(四攝)사무량(四無量)을 상징하는데 이는 자비희사보시애어동사이행(慈悲 喜捨 布施 愛語 同事 利行)등 보살의 실천적 덕목을 강조하는 것이기에 우리는 이 법계도가 깊은 의미를 지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법계도의 주요 ㅇ사상을 살펴보면, 원래 불교에서의 법(法)은 인도어로는 '다르마(Dhar-ma)'라 하여 여러 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 법이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지녀야 할 도리'를 의미할 때, 법은 인간들 사이의 훌륭한 관계, 불교적 의미로는 계율을 지키는 삶을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관계는 동등한 입장에서 바라보아야 하며 상대편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자기만의 이득을 위한 행위를 저버려야 하는 것이 인간 사이의 다르마(Dharma)라면, 불교에서는 인간과 자연 사이에도 다르마가 존재하고 있음을 보이고 있으며 여기에 불교의 위대성이 있습니다.
서양사상은, 모든 사물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인간중심적 입장에서, 인간 이외의 모든 것을 철저히 객관화 시키면서 인간의 편의를 위해 자연을 정복해 왔고 따라서 인간 이외의 생물에 대한 살생도 자연스럽게 인식되고 있습니다.
반면에 동양사상, 그 중에서도 특히 불교는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불교는 윤회사상(六道輪廻)에 근거하여, 인간과 자연의 정당한 관계를 수립하고 자연과 인간은 별개의 존재가 아니며 차별 존재 또한 아님을 법(Dharma)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의상 스님의 법계도 핵심사상
이법(Dharma) 우주의 성품은 두 모습이 아닙니다. 원융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인간은 두 모습이라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 법을 알지 못하여 인생은 허무하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영혼은 영원해서 영원히 어떻게 된다고 하나 이는 둘 다 깨닫지 못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一中一切多中一
一卽一切多卽一
(하나 가운데 전체가 있고, 전체 가운데 하나가 있네.
하나가 즉 전체이고 전체가 즉 하나일세)'
의상 스님 법계도의 핵심사상인 이 뜻은 화엄의 논리에 의하면, 전체는 하나하나가 모여서 된 것으로 하나가 없으면 전체도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와 전체 사이에 긴밀한 유대 관계가 유지될 수 있는 것으로 우리의 인생은 '一中一切多中一, 一卽一切多卽一'이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의 예로서, 미당(未堂徐廷柱)의 시 중에서 '…영산록 이파리에 산이 어리고…'라고 한것은 화엄의 도리로서야 이해가 가능합니다. 우리의 손바닥만한 이파리에 어찌 산이 들어설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화엄의 사상으로는, 깨달은 자의 입장에서는 산뿐만 아니라 우주가 그안에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원용(援用)하자면, 민족 독립운동 시기의 독립운동가이면서 불교 시인이셨던 만해(萬海韓龍雲)의 시 '님의 침묵'에서 '…우리는 만날 때 떠날것을 염려하는 것처럼 떠날 때 만날 것을 믿습니다…'
우리들은 사람을 만날 때, 만남의 기쁨만 알고 헤어질 때의 쓰라림과 슬픔의 눈물을 알지 못하며, 헤어질 때는 땅을 치고 통곡하기만 할 뿐 다시 만난다는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이미 만남 속에서 떠남을 보고, 떠남에서 만남을 보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만해의 '인간과 인간의 만남의 천리'가 화엄의 사상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이러한 화엄의 사상은 신라시대의 향가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승려인 월명대사가 일찍 세상을 떠난 누이동생을 위해 지었다는 '제망매가(祭亡妹歌)'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너와 나는 한 가지에 태어나서 가는 곳을 모르겠구나. 아! 아미타 부처님의 나라에서 만날 나는 도를 닦으며 기다리련다…'
이 노래에서는 헤어짐의 슬픔이 없습니다. 우리들은 죽음을 대단히 두려워하여 가능한 한 피하려고 하며, 가족이나 친한 사람 중에서 누군가 사망하면 그 사람의 죽음이 자신의 문제로 다가와 큰 좌절과 슬픔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이 노래에서는 죽더라도 아미타 부처님의 세계에서 다시 만난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죽음에 대하여 침착합니다. 나고 죽는 것은 하나라는 불교의 뛰어난 사상이 잘 나타나 있기도 합니다.
이 법계도의 중요한 부분의 하나는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으로 부처님을 향한 올바른 첫 믿음을 내는 때가 곧 올바른 깨달음을 얻는 때라고 한것입니다.
이를 위와 연결지어 이해한다면, 초발심이 없으면 정각은 없게 됩니다. 부처님을 향한 올바른 믿음을 내야만 비로소 정각을 이룰 수 있기에 초발심 그 때가 곧 바로 올바른 믿음을 얻는 때라고 의상 스님은 제시하고 있습니다.
의상 스님의 '화엄일승법계도'에는 불가에서 자주 인용되는 '해인삼매(海印三昧'가 등장합니다. 이 '능인해인삼매중(能人海印三昧中)'이란, 바다에는 진주 호박산호 등 수 많은 보물이 있는데
물이 맑고 잔잔할 경우에는 10미터나 20미터 밑의 것도 보이지만 물이 흐리고 파도가 칠 때는 1미터 아래의 것도 볼 수 없듯이, 인간에 있어서도 인간의 마음에는 수많은 보물이 있으나 번뇌라는 파도로 인해 보물이 보이지 않기에,
마음 속의 번뇌(煩惱)라는 파도를 재우면 참답고 진실한 본성이 드러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해인 삼매(海印三昧)'란 '마음 속의 번뇌가 가라앉은 경계(境界)'를 말합니다.
이 화엄일승법계도'에는 '중생수기득이익(衆生隨器得利益)'이란 구절이 등장합니다. 이것은 '이 세상에는 허공(虛空)에 다라니의 비의 보배가 무수히 가득하지만 중생은 자기의 그릇에 따라 이 보배를 얻어 가진다'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즉 불교공부란 자신의 그릇을 넓히는 공부라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자비와 법은 이 우주 어느 곳에나 충만해 있으나 사람들의 마음은 넓거나 혹은 좁은 경우가 있어 이에 따라 불법을 받아들이는 데 차이가 있습니다.
이 마음의 그릇은 부처님께서 만들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이 스스로 넓고 깊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부처라는 존재는 '화엄일승법계도'에 의하면 결국
'우리가 우리 마음의 궁극을 깨달아서 아는 그 마지막의 경계'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부처는 옛부터 움직이는 일 없이 존재하고 계심을 화엄에서는 중시하고 있습니다.
후에 의상 스님의 제자들은 '법계도기총록'이란 해설서를 만들어 그 뜻을 심화시키고 널리 전파하여, 의상 스님의 화엄사상은 한국 불교의 교종(敎宗)을 주도해 온 가장 중요한 핵심사상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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