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새
김선태
벌새는
1초에 90번이나 제 몸을 쳐서
날개를 지우고
공중에 부동자세로 선다
윙윙,
날개는 소리 속에 있다
벌새가
대롱꽃의 중심(中心)에
기다란 부리를 꽂고
무아지경 꿀을 빠는 동안
꼴깍,
세계는 그만 침 넘어간다.
햐아,
꽃과 새가
서로의 몸과 마음을
황홀하게 드나드는
저 눈부신 교감!
정(靜)과 동(動)이
동(動)과 정(靜)이
저렇듯 하나로 내통할 때
비로소 완성되는
허공의 정물화 한 점
살아있는 정물화 한
점(點).
- 시집 『살구꽃이 돌아왔다』(창작과비평사) 중에서
김선태 ː 전남 강진 출생으로 1993년 「광주일보」와 1996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애지문학상, 영랑시문학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목포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시집으로 『간이역』, 『동백 숲에 길을묻다』, 『살구꽃이 돌아왔다』 등이 있다.
시평
슬픔의 극점에서 영혼의 구원을 보듯이, 극과 극이 서로 통한다는 인식은 위의 시에서처럼 ‘완성’된 한 폭의 정물화를 형상화해낸다. “1초에 90번이나 제 몸을 쳐서/날개를 지우고/공중에 부동자세”로 서는 벌새는 시인의 시적 지향점을 그대로 상징한다. ‘동(動)’의 극단이 ‘정(靜)’의 상태를 구현해낸다. 이런 경지야말로 시적 완성의 경지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움직임이 정지된 듯한 한 폭의 정물화가 침 넘어가는 긴장을 포함한 교감을 이뤄낸다. 그 장면 속에 극단의 움직임과 정지가 팽팽하게 긴장한 상태에서 마주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장면은 정중동(靜中動)으로 표현될 수 있는데, 이것은 곧 시인이 바라보고 싶어 하는 내면의 ‘풍경’에 해당한다.
‘인내’는 극단의 경지에서 스스로의 속성을 초월해 전혀 다른 반대의 것과 교감할 수 있게 만든다. 즉 ‘천년의 인내’ 끝에 진창에서 ‘은은한 향기’를 만들어 내는 경지와 서로 통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김선태 시인의 미적 견인주의는 이 지점에서 ‘장인정신’ 혹은 ‘생의 구경(究竟)’에 다가서려는 치열한 의지를 보여준다.
‘살아 있는 정물화’란 생의 한 장면이 그대로 노출한 어떤 비의(秘意)의 포착 순간이기도 하다. 관념적인 교감이 아니라 극단의 순간, 세계가 숨죽이고 침을 삼키는 ‘완성’의 순간이 시인의 눈에 감지된 것이다. 이 장면은 따라서 시인이 지향하고자 하는 어떤 미적 완성의 경지를 암시한다. ‘견인주의’, ‘죽음을 관통하는 재생의 미학’, ‘눈물의 승화와 초월’을 넘어서 이 시가 지향하는 것은 그가 말하는 ‘느림’과 ‘둥긂’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설명해 준다.
변신과 재생, 초월이 어떤 시적 각성의 순간을 의미한다면, 그 각성에는 필연적으로 인내와 견인의 의지가 필요하다. 그 의지를 치열한 장인의식으로 승화시켜 세계의 느림과 둥긂에 호흡을 맞추는 것, 이것이 그가 지향하는 시학이다. 세계의 둥긂과 느림이란 이 점에서 어떤 시적 여유 혹은 이완에 의해서만 소통되는 것이 아니라 ‘극단의 움직임’, 다시 말하면 끊임없는 지향과 추구에 의해서도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시인의 이런 생각은 ‘느림’과 ‘둥 ’을 단순한 풍경의 미학이 아니라 극단의 긴장을 포함한 ‘완성의 경지’로 만든다. 즉, 모든 둥 과 느림 속에는 오히려 ‘인내’의 시간과 ‘필사의 노력’, ‘긴장’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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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식ː문학박사, 문학평론가. 1992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현재 동국대국문과 교수, 계간 「시작」 편집위원이며, 평론집으로 『불온한 정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