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명법문
일운 스님.
현재 울진 불영사 주지로 있으며 천축선원을 중심으로 25여 동에 이르는 가람을 일구었다. 또한 매년 사찰 음식축제와 울진군민을 위한 산사음악회, 초중고 어린이와 청소년 백일장을 개최하고 있으며, 2011년 5월에는 염불만일수행결사를 시작하여 회원이 800여 명에 이르고 있다. 그 결사를 통해 해외 어린이 교육지원과 북한 어린이 돕기에 동참하고 있으며, 2012년 7월에는 울진읍내에 지역주민과 함께 문화 및 복지사업을 일구어갈 심전문화복지회관 기공식을 가졌다. 현재 전국비구니 선문회 부회장, 울진불교사암연합회장, 조계종 중앙종회의원으로서 수행과 포교에 진력하고 있다.
옛날 구두쇠로 온 동네에 소문이 자자한 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소문을 들은 어떤 사람이 구두쇠를 찾아가‘단추’하나로 국을 맛있게 끓여주겠다고 하였고, 구두쇠는 그 말이 조금 의심스러웠지만 생각해보니 그리 손해나지 않을 것 같아 흔쾌히 허락을 했습니다.
그 사람은 솥에 물을 붓고 단추 하나를 넣고는 열심히 젓기 시작했습니다. 한참을 젓다가 한 국자 간을 본 그 사람이“아! 소금이 좀 있으면 맛이 좋겠는데...”라고 하자 그 광경을 뚫어져라 지켜보던 구두쇠는 얼른 소금을 대령했습니다. 그리고 한참을 끓이다 또 간을 보고는 “아! 양배추가 좀 있으면 맛이 좋겠는데...”라고 하자 구두쇠는 얼른 양배추를 또 가져왔습니다. 그렇게 점점 한 개씩 한 개씩 재료가 모아지자 구두쇠도 모르는 사이에 정말 맛있는‘단추국’이 완성 되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단추스프』의 일부분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관념을 넘어선 곳엔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진실한 힘이 있습니다. 늘 생각만으로 된다 혹은 안 된다고 굳게 믿어왔었던 자신을 잠시 내려놓으시고, 마음을 활짝 열고 지금 현재 온전히 깨어있을 수 있다면 우리는 순간을 통해 전체를 사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중생들의 삶과 함께 하는‘안거’
최근 쉼 없이 내리던 비가 그치자 천축산 골짜기 골짜기마다 안개가 피어오르고 계곡의 물소리는 마치 살아있음을 증명하듯 힘차게 산자락을 감싸며 흐르고 있습니다. 탁탁탁. 스님들의 정진을 알리는 선원禪院입승스님의 죽비소리가 허공을 담을 때면 만 중생들이 함께 그 자리에 있음을 압니다. 여름 석 달 동안 산문 밖 출입을 삼가고 정진에 몰두하는 하안거 결제가 시작된 지 벌써 두어 달이 지났습니다. 안거는 불교의 오랜 역사 속에서 시대별로 지역별로 또 나라별로 변천과정을 거치면서 그 모습을 조금씩 달리하여 왔는데, 남방불교의 경우는 우기에 한번 안거가 행해지고 있으며, 안거가 끝난 후에는 재가불자님들이 가사와 그 밖에 필요한 생필품을 마련해서 스님들께 공양 올리는 의식이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로 불교가 넘어오면서 추운 겨울에도 안거가 제도화되기 시작하였고, 그 뜻과 정신을 이어 불영사 천축선원에서도 봄가을 두 번의 산철결제를 포함하여 연중 내내 안거를 통해 수행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2,600년이 흐른 지금, 선불교를 중시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이 안거제도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방법 중 하나로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각인시켜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안거의 어원을 살펴보면 팔리어로 왓사vassa라고 하여,‘ 우기雨期’라는뜻을가졌다고합니다. 인도의 기후는 건기와 우기로 나뉘는데, 특히 우기가 되면 억수같이 내리는 비로 인해 농지가 범람하여 돌아다니며 걸식하기가 불편할 뿐만 아니라, 대지에 사는 작은 미물들을 죽일 염려 또한 있어 부처님께서 여름 석 달간은 만행을 중단하고 한 장소에 머물러 수행과 정진에 힘쓰도록 허락하시게 된 것입니다.
사실 안거를 한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수행이요. 깨달음으로 나아가기 위한 시간이기도 하겠지만, 안으로 좀 더 살펴보면 생명존중사상과 함께 중생들의 삶이 함께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수행은 실천적 삶
자비심을 내고 수행하는 것은 스님들만의 일이 아닙니다. 고苦에서 벗어나 완전한 즐거움과 행복을 추구하는 것도 훗날로 미루거나 누군가가 대신해 줄 수 있는 일도 아닙니다. 수행이란 앎이 아니라 바로 실천적 삶입니다. 아무리 많은 안거를 통해 자신을 성찰한다고 해도 그것을 행行으로 옮기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는데 그친 죽은 공부라 생각합니다.
하루살이가 그런다고 합니다. 참 살기 힘들다고.... 천상의 시간으로 본다면 인간세상 또한 하루살이와 다름없다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순간을 놓치는 삶은 누군가에겐 일생을 놓치는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까요?
지금 이 순간 한 번쯤 자신에게 반문해보시길 바랍니다. ‘현재,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가?’어디를 가나 자신을 쫓아다니는 그림자가 싫어서 그 그림자를 지우기 위해 달려도 보고 쭈그려 앉아도 보고 누워도 봅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그대로 따라다니던 그림자가 어느 날 그늘에 들어가고 나서야 스스로 사라진 것을 알게 됩니다. 고통을 고통으로 직시할 때 우리는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를 살아갈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생각은 눈에 보이는 현실을 만들어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생각인 ‘무’가 눈에 보이는 현실인 ‘유’를 창조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누군가가 대신해주는것도아니고, 스스로가그렇게짓고스스로가그렇게받는것입니다.
안으로는 자신의 보리심을 발견하고, 밖으로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인연을 심어 모두가 행복해지는 세상을 만들고자 실천하는 지금 이 순간이 바로 수행의 시작이자 마지막인 것입니다. 그 수행의 시작으로 작년 5월 보름 불영사에서는 누구나 쉽고 평등하게 함께할 수 있는 염불만일결사회가 발족되었습니다. 그렇게 함께 뜻을 모은 것이 얼마 전 1주년을 맞이하였고, 그 탄생을 기념하며 해외 어려운 나라에 자신의 미래를 포기하고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교육을 지원하고, 굶주리는 북한 어린이들을 돕도록 결정하였습니다. 뒤이어 울진지역사회복지의 일환으로 심전문화복지회관 기공식 또한 있었습니다. 마음을 열고 믿고 함께 해준 많은 이들의 진심어린 정성이 개인의 수행을 시작으로 모두에게 빛이 되는 삶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오늘도 우리는‘일상’이라는 이름으로 안거를 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깨어있는 순간 우리의 삶은 그대로 수행의 장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순간 속에서만 온전히 존재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놓치는 삶은 자기 자신의 전부를 놓치는 것과 같습니다. 매순간을 생활 속에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집중하여 몰입해 간다면 내가 진정 누구인지, 그 진실을 깨닫게 되리라 믿습니다. 오늘도 불영사 천축선원에는 스님들의 용맹정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진을 하는 순간순간은 나를 비롯해 이 우주 안의 모든 생명에게 동일하게 소중한 시간입니다.
부처님께서는‘생명 있는 모든 존재는 영원한 생명 속에 무한한 불성의 힘을 지니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자기 자신의 무한한 내면의 힘을 믿고 생활속에서 실천수행만 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며 모든
것에서 자유로움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늘 현재 일념에 집중 몰입하시고 자비심으로 현재 일어나는 마음을 잘 다스리기를 기원 드립니다. 이 인연공덕으로 지구촌에 함께 사는 모든 이들이 마음의 평화를 얻고 진정 행복하시길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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