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 정토사 주지 선오 스님
마른 논에 앙상히 말라비틀어져 서있던 연이며, 남의 화단에 버려져 걸림돌만 되어있던 돌과 나무밑동, 요리하고 남은 무 쪼가리…. 당진 정토사의 차방에는 재미있는 물건들이 많다. 그것들의 원래 용도로 보았을 때, 그것들은 이미 제 쓰임을 다하고 진작 버려져도 마땅했을 것들이다. 그런데 더 이상은 아무런 것도 아닌 것들이 되어버린 그것들에게 나는 왜 자꾸 시선이 가는 걸까.
| 아무 것도 아닌 것들의 재생에 봄을 맞이하다
돌과 나무밑동은 조그마한 화초들이 뿌리내리고 자라는 터전이 되어, 그렇게 서로 어여삐 어우러져서는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작품이다. 누렇게 말라비틀어진 연도 이 방에서는 공간을 한결 운치있게 꾸며주는 훌륭한 인테리어 소품이다.
물이 담긴 작은 소반에 태연히 자리 잡고 있는 무 쪼가리는 또 어떤지. 늦가을 무렵에 시래기를 만들기 위해 툭 잘려나간 자리에서 슬그머니 다시 생명이 움터, 마치 화초인 양 키를 뻗고 있는 무청은 관상용 화초로 보일 만큼 충분히 예쁘다. 그 곰살맞은 천연덕스러움과 속임수 아닌 속임수에 나는 그만 마음을 빼앗겨, 실실 웃음을 흘린다. “봄이야 봄!” 하며 어디선가 소곤대는 것도 같다. 아무 것도 아닌 것들의 아기자기하고 소박한 재생再生에, 이미 성큼 와있는 봄을 그제야 실감한다.
“이쁘잖아요. 하나로 낱낱이 보면 다 이쁘죠. 꽃도 풀도 사람도. 하나씩 놓고 보면 다 귀하고 특색있게 생겼는데, 다른 것과 비교하는 분별심이 들어가면 그 순간부터 전혀 다른 것이 되고 말죠. 그 자체로 예뻤던 것이 못생긴 것이 되고, 모자란 것이 되고, 모난 것이 되고 말아요.”
세상 것 어느 하나 예쁘지 않은 것이 없다는 선오 스님(정토사 주지)은, 농사지을 때 신도들에게 풀 하나 뽑지 못하게 해서 종종 잔소리를 듣는다고 한다. 그러나 스님은 고집을 꺾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 자기 나름대로 생명을 피우기 위해 긴 겨울을 기다려 세상에 나온 것을, 우리 눈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우리 생각에 필요 없다는 이유로 쏙쏙 뽑아내 버리는 일이 미안할 따름이다. 어차피 질 때는 지고, 피어날 때는 알아서 피어나는 그 예쁜 것들을 굳이 왜 뽑아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세상에서 애써 뽑아내야 할 것이 있다면, 이것은 좋고 저것은 싫고 이것은 예쁘고 저것은 못생겼다는 분별의 마음인 것을.
| 단순하게 생각하고 단순하게 요리해 먹는 즐거움
정토사의 선오 스님은 연 전문가다. 연 농사꾼이고, 연 요리사이며, 연 전문 강사다. 꽃을 좋아할 뿐이고 꽃을 곁에 두고 싶었을 뿐인데, 그 마음 하나가 어느 사이 스님을 그렇게 만들어버렸다.
“몸이 좋지 않아 꽃구경을 다닐 수 없어서 도량에 연을 심어보자 했죠. 돌이 많은 산간지역이라 논농사도 안 되고 밭농사도 어렵다보니 절 주변에도 연을 심어봤어요. 그랬더니 양이 많아져 농사꾼 아닌 농사꾼이 돼버렸죠. 수확한 것으로 요리를 하다 보니 요리사가 되어있고, 연에 대해 강의 좀 해달라고 해서 불려 다니다보니 연 전문가가 되었더라고요.(웃음) 그런데 알면 알수록 연만큼 좋은 게 없는 것 같아요. 땅 관리도 되고, 보기에도 아름답고, 몸에 좋은 음식재료도 되고, 또 비만이나 불면증, 성인병에도 좋아 한방에서는 중요한 약재로도 쓰이죠.”
씨에서부터 꽃, 잎, 줄기, 뿌리까지 어느 하나 버릴 것이 없는 연. 몸과 땅의 생명을 튼튼히 해주는 연의 그 향기는 꽃 한 송이만으로도 넓은 도량이 그윽해진다. 꽃이 지고 잎만 피어있을 때도 온 도량이 향기로 가득 채워진다.
“연은 어떤 꽃에도 비할 수 없는 자태가 있어요. 잎도 넓고 꽃도 크고 하늘로 곧게 뻗어있는 자태도 그렇고, 고고하면서도 당당하고 품위있고 풍성한, 그런 여유가 있죠.”
바람 불면 서두름 없이 일렁이며 그윽한 향기를 퍼트리고, 비가 오면 후두두 넓은 잎으로 빗방울을 받아들여 그 어떤 음악보다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낸다. 멀리 들려오는 웅장한 북소리처럼 마음을 편안하고 여유롭게 만들어주는 비와 연잎의 하모니를 선오 스님은 특히 좋아한다. 그것만으로도 연을 키우기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연으로 요리해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정말 다양하다. 그러나 연이 흔한 것은 아니므로 사람들은 연으로 해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야 고작 연근조림 정도밖에 생각하지 못한다. 그리고 뭔가 조금은 복잡하고 어려운 요리법이라야 연 요리가 될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연 요리도 라면만큼 쉽고 간단하다.
연근만 하더라도 그러한데, 선오 스님은 연근을 조림보다는 생채나 샐러드로 만들어 먹을 것을 권한다. 요즘철에는 쑥이나 민들레를 섞어도 좋다. 입맛도 살리고 봄의 원기를 회복하는 데 그만한 약이 없다. 그 외에 우리가 일상적으로 해 먹는 음식 어디에나 연근을 섞어 조리할 수도 있고, 그것도 귀찮다면 생으로 썰어 한두 쪽씩 먹어도 좋다.
연근을 가루로 만들면 일 년 내 먹을 수 있는데, 미지근한 물에 풀어 약 삼아 마셔도 좋고, 밀가루나 전분 가루를 조금 섞어 전을 부쳐 먹어도 좋다. 연잎은 연잎밥을 만들어 먹을 때 사용하거나 주로 차로 이용한다. 연줄기 또한 잘게 썰어서 덖으면 아무리 마셔도 부작용이 없는 무카페인 차가 된다. 탄닌 성분이 들어있는 연밥은 중화작용을 하기 때문에 하수구처럼 오염된 장소에 넣어두면 악취를 잡아주고, 이것 또한 볶아두었다가 차로 끓여먹으면 된다.
분별없이, 정해진 것 없이,
내 식대로 내 멋대로
복잡하지 않게 요리하기.
이것이 선오 스님이
일러주는 요리비법이자
요리철학이라 할 수 있다.
| 후두두, 연잎이 빗방울을 맞이하는 그 소리
사실 선입견만 버리면 모든 요리가 쉽고 만만해진다. 선오 스님의 요리법은 누구나 따라할 수 있을 만큼 쉽고 간단한 것이 특징인데, 그 비법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요리는 이렇게 해야 하고, 저 요리는 저렇게 해야 한다는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버리는 것. 정해놓은 틀이 요리를 복잡하고 어렵게 만든다.
시대가 변하면 요리법에도 변화를 줄 필요가 있다. 사찰음식도 마찬가지다. 절에서는 주로 저장문화가 발달했는데, 그것의 유래를 살펴보면 현대에도 그 방식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원래 옛날 스님들은 복잡하게 볶고 지지고 튀기지 않았어요. 만행을 다니며 공부하거나 산속에 살면서 불이 흔한 것도 아니고 양념이 딱히 있는 것도 아니라서 거의 생식에 가까운 섭식을 했죠. 그런데 많은 대중들이 큰절에 모여 살게 되면서 저장문화가 발달되고 정형화됐어요. 그때그때 채취한 것만으로는 양을 감당할 수 없으니까 평소 나물과 채소를 말려두었다가 식재료로 이용했죠. 그것들을 사용하려면 장시간 물에 불리고 삶고 다시 물에 헹궈 짜는데, 그런 과정에서 영양소가 많이 파괴돼요. 물론 그런 문화가 갖고 있는 장점도 많지만, 이젠 냉장문화가 발달하고 시장에 나가면 언제든 필요한 재료를 구할 수 있으니까 신선한 재료를 최대한 영양소 파괴 없이 건강하게 먹을 수 있는 방법에 관심을 기울여야 해요.”
분별없이, 정해진 것 없이, 내 식대로 내 멋대로 복잡하지 않게 요리하기. 이것이 선오 스님이 일러주는 요리비법이자 요리철학이라 할 수 있다.
“사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골치 아프게 살 필요 없어요. 대부분의 시비분별이 들어가 보면 아무 것도 없어요. 그저 아주 작은 분별에서 생겨난 것들이죠. 주제거리도 안 되는데 사람들은 그걸로 인해 다툼을 하고, 다툼이 꼬리를 물면서 증애심憎愛心을 키우죠. 아무 것도 아닌 일로 죽을 때까지 싸우는 거예요. 무명이란 게 그렇게 미미한 분별로부터 생겨나요. 거기에서 망상이 생기고 번뇌가 생기고 증오와 차별심이 생겨서 너는 너, 나는 나로 영원한 평행선을 긋게 되죠. 그런데 근본적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을 내 마음이고 내 몸이다 생각하면 미운 것도 없고, 딱히 잘한 일도 못한 일도 없게 돼요. 그래서 내가 뭘 잘했느니, 남이 뭘 잘못했느니 말할 가치도 없어져요.”
본디 깨달음이란 것도 어렵게 생각할 것이 없다. 분별에 물들지 않는, 있는 그대로의 순수를 아는 것. 그리고 지켜가는 것. 그리하여 완전한 자유로움을 발견하는 것. 이제 내게는 새로운 계획 하나가 생겼다. 비 내리는 날, 연이 가득 핀 절에 가보기! 후두두, 널따란 연잎이 빗방울을 맞이하는 그 소리에 대체 어떤 생각이며 마음이 일어날 수 있으리…. 아마 나는 그 속에서 아주 잠깐 온전한 순수를 만나게 될지도 모르리라.
선오.스님이.추천하는.참.쉬운.연.요리
연 전문가 선오 스님이 빚어내는 생연근과 연근가루의 봄빛깔 변신! 비타민과 섬유질이 풍부하며 노폐물을 내보내고 피를 맑게 하는 연근은 어떤 재료와도 손쉽게 궁합을 맞출 수 있다. 민들레와 함께 생채를, 봄동으로 전을, 연두부에 곁들여 샐러드를 만들어 봄맞이 건강밥상을 차려보자.
연근민들레생채
- 연근 100g
- 민들레 100g
- 식초 1T
- 설탕 1T
- 소금 1t
- 양념장: 고춧가루 1T, 매실효소 1T, 간장 1T, 참기름 1T, 깨소금 1T
1 연근껍질을 벗겨 얇게 썰고 식초, 소금, 설탕으로 밑간을 한다.
2 민들레는 다듬어서 깨끗이 씻고 식초물에 헹구어 건진다.
3 연근과 민들레에 양념장을 넣고 버무려서 담아낸다.
연근봄동전
- 연근가루 2T
- 밀가루 1컵
- 물 1컵
- 소금 1/2t
- 봄동 200g
- 들기름 3T
- 초간장: 진간장 2T, 매실효소 1T
1 연근가루와 밀가루를 고루 섞고 물과 소금을 넣어 반죽한다.
2 봄동은 씻어서 건져 연근가루에 굴린다.
3 봄동에 반죽옷을 입혀 중간불에서 들기름을 두른 팬에 노릇하게 지진다.
4 접시에 담아 초간장을 곁들여낸다.
연근연두부샐러드
- 연근 30g
- 연두부 100g
- 상추 30g
- 홍고추·청고추 1개씩
- 밑간: 식초 1T, 설탕 1T, 소금 1t
- 양념장: 진간장 2T, 사과즙 3T,
참기름 1T, 산초장아찌 1T
1 연근은 얇게 썰어서 식초, 설탕, 소금을 넣어 밑간을 한다.
2 연두부는 끓는 물에 데쳐 놓는다.
3 상추는 깨끗이 씻어서 건져 채를 썬다.
4 고추는 둥글게 썰어 양념장에 버무린다.
5 그릇에 상추와 연근을 깔고 연두부를 올린다.
6 연두부를 한 수저 떠내고 양념장을 얹어낸다.
연.요리로.근심을.덜다
비만과 스트레스. 이 두 가지는 현대인의 건강에 가장 큰 걱정거리가 아닐까요? 이를 한번에 해결할 수 있는 음식이 바로 연 요리라고 하네요. 연의 효능에 대해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요, 송나라 때 어느 대관집 부엌에서 요리사가 실수로 선짓국에 연근을 빠뜨렸는데 선지가 엉기지 않더랍니다. 이때부터 피가 탁해져 생기는 질환에 연근을 썼다고 합니다.
연 요리 하면, 연근조림 말고는 연잎밥이나 연꽃차처럼 재료 구하기 어려운 요리가 먼저 떠오릅니다. 왠지 우리집 식탁에 올리기엔 어울리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요. 연 전문가 선오 스님은 “연 요리처럼 쉬운 게 없어요.”라고 말합니다. 마트에서 사시사철 구할 수 있는 연근으로 생채, 샐러드, 튀김, 국 등 다양한 음식을 만드는 것이 의외로 간단하다고 합니다. 기본적으로 쓰는 재료 대신 얇게 썬 연근을 넣기만 하면 되는 거지요. 조금 더 응용범위를 넓혀 연 요리에 도전해 보고 싶다면, 『선오 스님의 백련으로 만드는 사찰음식』 책을 권해 드립니다.
정토사에서는 연근가루 등 시중에서 구하기 힘든 연 요리 재료들을 판매하고 있다니 선오 스님과 함께 연 요리에 도전해 보세요!
-
문의 | 당진 정토사 041)356-1383
ⓒ월간 불광 -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불광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