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자의 품성이 빚은 흥겨운 듯 붉은 빛깔
전남 고흥, 소백산맥의 지류가 흥에 겨운 듯 남해로 곧게 뻗은 곳. 지형의 6할 이상이 산이지만 대부분 500미터를 넘지 않는 낮은 구릉이고 유자나무, 비자나무, 동백나무의 보고寶庫다. 이 지역에서 고교 영어교사를 하던 이길만 선생은 교편을 놓고 사업을 시작했으나 IMF 여파로 실패에 직면한다. 작은 흥에도 어깨가 들썩이는 쾌활한 성격이지만 처지는 마음은 어쩌지 못했다. 그가 마음을 다잡게 된 건 우연히 장에서 만난 석류 묘목 덕분이었다. 어릴 적 집 마당과 동네 곳곳에서 흔이 봤던 석류를 과수로 재배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 그 후 수년간 석류나무 북방한계선 남쪽 장터와 마을을 돌아다니며 묘목을 구해 심고 열매를 쉼 없이 검증했다. 석류나무는 과수 등록조차 없어 재배기술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 긴 장마가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생육이 어려우며 집단재배 역시 까다로운 과수였다. 많은 시행착오 끝에 최적의 묘목이 선별되고, 고흥에 국내 최초의 석류 과수원이 조성되었다. ● 그는 품질이 떨어지면 가차 없이 베어 불태웠다. 그 열정과 의지는 교육자로서 좋은 제자를 키우고자 했던 그의 품성에서 기인했으리라. 지금은 고흥군에서 유자의 뒤를 이어 석류가 새로운 소득원으로 무럭무럭 커나가고 있다. 석류는 예로부터 다산과 부의 상징. 붉은 석류를 닮은 낯빛과 인자한 눈매를 가진 그는 못다 이룬 참스승의 길을 석류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정두철
서울대 농경제학과. 동대학원 졸. 펀드매니저, 메주와첼리스트 CEO, 안그라픽스 기획이사를 거쳐 지금은 다리컨설팅 CEO로서 ‘명인명촌’을 기획・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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