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진불교미술관 불상조각장 이진형 관장
부처님의 성상聖像을 모시는 사람이라서일까. 미소 띤 선한 눈매를 바라보니 언뜻 부처의 미소가 겹쳐 보인다. 제불諸佛을 낳는 어머니 불모佛母 40년, 여진불교미술관 불상조각장 이진형(61세, 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 제6호) 관장이 그렇다. 백여 명의 직원을 이끌던 공방을 하루아침에 그만두고 나와 황무지나 다름없던 곳을 손수 가꿔 여진불교미술관을 세우더니, 미술관 터에 법당까지 여법하게 불사하고는 돌연 미술관 전부를 불교계에 회향했다. 깨달은 자, 붓다를 성상으로 모시기 위해서는 길고 긴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마저 수행으로 삼는 사람에게 불상佛像은 숱한 인연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져다주었다.
| 문수 보살의 지혜, 보현 보살의 행원
“제게 있어 불상佛像은 전생부터 이생, 다음 생애까지 닿아있는 인연 같습니다. 내 삶에 있어 불교도, 불상도, 여진불교미술관도 모두 인연이란 것을 깨달았지요.”
이진형 관장이 한참 고민하다 내뱉은 인연이라는 단어, 그 두 글자가 그렇게도 묵직하게 다가왔다. 항상 부처님 모습을 떠올리고 부처님 가르침을 새기며 성상을 조성하는 사람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 뿌리 깊은 불가佛家의 인연은 불모 40년의 세월 동안 4,000기에 달하는 부처님을 만나게 했다.
그가 불상과 맺은 첫 인연도 범상치 않았다. 14살 때부터 생계를 위해 작은 나무인형 공장에서 일을 배우던 소년은 훗날 젊은 나이로 공업품경진대회에 나가 무수한 상을 받으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가내공업센터에서 강사역할을 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는데, 그 길로 1976년 젊은 기능공들을 소개하는 KBS ‘수출전망대’라는 TV프로그램에 몇 개월간 출연하게 됐다.
마침 방송을 본 부산 내원정사 주지 정련 스님(동국대 이사장)이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부산에 계시던 스님이 직접 그를 찾아와 부처님 일을 해주었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22살 젊은 청년에게 내민 정련 스님의 손, 그렇게 맞잡은 인연으로 내원정사에서 5년, 해원정사에서 4년을 지내며 법당에 자리잡을 목조각들을 조성했다.
“당시 내원정사에 정련 스님의 은사이신 석암 노스님이 계셨어요. 스님을 생각하면 아직도 남다른 그리움이 솟아오릅니다. 노스님께서 ‘불교조각연구소’라는 휘호를 내려주셨어요. 그래서 부산에 터를 잡고 부처님 모시는 공방을 운영하게 됐습니다.”
혈혈단신으로 차린 공방의 사업은 날로 번창해 어느덧 100여 명의 제자와 직원들을 데리고 일을 할 만큼 규모가 커졌다. 하지만 그는 잘 나가던 공방을 훌쩍 후배들에게 넘겨버렸다. 혜원정사 불사 때 유발상좌로 인연을 맺은 쌍계사 조실 고산 스님의 한마디 때문이었다.
“부처님으로 사업을 해서는 안 된다. 정직과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성상을 조성해도 모자랄 판인데 사업이 되면 거짓도 따르고, 보이지 않는 정신적인 도둑질도 해야 한다. 다작多作이 뭐가 중요하냐, 이 세상 누구든지 공감할 수 있는 한 분의 성상을 모시는 것이 중요하다.”
스님의 말씀이 섬광처럼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부처님을 조성하면서 내 마음의 모자람을 깨닫고 뒷골이 찡해지던 그 순간, 그 길로 공방을 정리했다. 문수 보살의 지혜를 얻었어도 보현행원이 따르지 않으면 그 길을 완성할 수 없듯이 공방을 정리하고 제대로 된 성상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그 계기가 된 장본인이 바로 고산 스님이다. 스님의 말씀은 그의 삶의 화두가 됐다.
| 스님, 아이들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옛날에 민초들이 조성했던 부처님들은 지금도 곳곳에 많이 있지요. 그들이 만든 부처님이 부처님으로 보일 수 있는 것은 간절한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불상 조각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부처님은 마음이 없으면 끝내 완성할 수 없더군요.”
은사스님의 말씀에 깨달은 바가 컸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부산에서 22년 간 닦아온 터를 하루아침에 정리하고 3년 후인 1995년, 서울 인사동 공평아트센터에서 ‘부처님의 탄생부터 열반까지’를 주제로 33점의 목조각 개인전시회를 열었다. 전시회는 산중의 불교미술을 대중 앞으로 끌어냈다는 호평 일색이었다. 전시회의 수입을 가지고 또 아무런 연고 없는 대전 땅에 자리잡았다.
한 분의 성스러운 부처님을 모시기 위해 그저 작품 활동에만 매진할 생각이었다. 우직하게 한 길을 가는 사람에게는 빛이 비춰지는 법, 1999년 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 제6호 불상조각장佛像彫刻匠으로 지정됐다. 전국의 유일한 무형문화재 불상조각장으로 임명받고 난 후 그는 큰 결심을 했다. 아이의 얼굴을 하고 파안대소하는 천진불 불상을 조성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천진불은 도심불교 법당에서부터 새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사실 천진불을 조성하는 것이 굉장히 조심스러웠습니다. 아이처럼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는 모습으로 표현하려니 이래도 될까 싶었지요. 하지만 이 천진불을 모시게 된 이유는 분명합니다. 어린 아이들에게도 불성이 있다고 석암 노스님께 배웠기 때문입니다.”
내원정사에서부터 생각했던 일이라고 했다. 얽힌 일화가 있었다. 할머니, 어머니 손을 잡고 절에 왔지만 법당은 무서워서 절 마당에서 뛰어놀던 몇 명의 아이들이 그만 벌집을 건드리고 말았다. 할머니고 어머니고 아이들에게 치마를 뒤집어씌우고 얼싸안으며 벌떼랑 싸우는 모습을 보곤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리고는 ‘아이들도 법당을 따로 만들어주면 좋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석암 노스님께 여쭸다. “스님, 아이들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그럼, 당연히 있지.” 노스님의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말에 힘을 얻었다. 언젠가는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부처님을 모시고 아이들을 위한 법당을 만들리라 다짐했다. 어린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던 그는 불상조각장으로 지정된 후 상상을 실천으로 옮겼다. 그 결과 어린 아이들이 자신들을 닮은 천진불을 보고 스스럼없이 법당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전국적으로 어린이법당에 많은 천진불이 봉안됐다.
| 한 번 하기가 어렵지 두 번 하기는 쉽다
이제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으로 포교 할 수 있겠다 싶었다. 부처님의 인연으로 얻은 것이니 부처님 가르침을 받드는 제자로서 모두를 회향하겠다는 굳은 결심이었다. 2000년 11월, 평생 모은 재산을 털어 대전에 불교미술관을 만들겠다는 원을 세우고 부지매입부터 설계, 작품조성까지 모든 과정을 직접 이끌었다. 손수 벌목을 하고 땅을 다져 2005년 개관시킨 불교미술관에는 은사스님께 받은 법명 여진如眞을 남겼다.
여진불교미술관이라는 이름으로 연건평 5,097평에 2층으로 세운 작품전시실, 수장고, 학예연구실, 무형문화재 전수관까지 갖췄다. 1, 2층 전시실에는 삼천불이 가사에 수놓인 삼천석가모니좌상, 천년의 나이를 간직한 은행나무로 만든 천수천안관세음보살상, 국가지정문화재의 모작模作 등 이진형 관장이 직접 조성한 불상 130여 점을 전시하고 어느 누구나 편하게 둘러보고 감상할 수 있도록 무료개방했다. 미술관뿐만 아니라 그 곁에 법당을 세우고는 삼존불을 직접 조성했다. 그런 미술관과 선원을 2009년 공익법인으로 만들더니 2011년, 불모 40년의 삶을 회향하며 모든 건물들과 불상들, 법인과 운영권 전부를 조계종 종단에 희사했다.
“부처님 일 하는데 밥 굶게야 하시겠냐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부처님을 믿는 마음으로 시작하다보니 공익법인과 재단법인까지 만들게 됐지요. 자산에는 유형의 자산이 있고 무형의 자산이 있는데 결국 남는 것은 무형의 자산이 남더군요. 여진불교미술관, 여진불교문화재단, 법당인 여진선원. 이곳에는 은사스님께 받은 제 법명을 딴 무형의 자산들이 남았습니다. 무형의 자산이니 욕심 부릴 필요가 없지요. 부지를 매입할 때부터 아내와 약속했습니다. 10년 동안 불교미술관과 선원 잘 가꿔서 부처님께 회향하자고요.”
한 번 하기가 어렵지 두 번 하기는 쉽다고, 무릇 범인凡人이라면 욕심나는 게 당연할 것들을 두 번이나 놓아버렸다. 그리곤 묵묵히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불상을 만들 칼을 쥐었다.
“그동안 부처님을 모시면서 어느 한 부처님도 지극정성을 쏟지 않았던 성상이 없습니다. 불자뿐 아니라 누구나 불상을 보고 환희심을 느낄 수 있도록 조성하려고 노력했지요. 정신 바짝 차리고 성상을 조성하면 나도 모르게 공부가 되곤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부처님의 모습을 흉내내지만 말고 진실한 마음으로 조성해야 한다는 사실을 후학들에게 당부하고 싶어요. 이제는 한 가지 꿈만 남았어요. 정말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 부어서 한 분의 부처님을 조성하는 것, 그리고 그 부처님을 통해 사람들이 환희심을 느낄 수 있게 전시회를 열고 싶습니다.”
불상을 조성하면서 배운 것은 욕심을 내려놓는 방법이라고 말하는 여진 이진형 관장. 부처를 만들기 위해 부처의 가르침을 좇고 따르는 그의 얼굴을 보니 그 눈매에서 은은한 부처님의 미소가 엿보이는 이유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여진불교미술관
대전광역시 유성구 탑립동에 위치한 여진불교미술관은 전통문화를 계승하여 문화의 뿌리를 알리는 한편, 전국사찰에 이어져 오는 불교미술을 다양하게 표현하고 재탐구하는 체험공간으로 만들고자 2005년에 설립됐습니다.
전시실은 ‘부처의 세계관’, ‘세상의 이치’, ‘전통잇기’, 사방을 불심으로’라는 주제의 4실로 구성되어 있으며, 삼천석가모니좌상, 천수천안관세음보살상 등 이진형 관장의 작품과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 경주 기림사 건칠보살좌상 등 국가지정문화재의 모형 작품 등 130여 점이 전시돼있습니다.
Tel. 042-934-8466
http://yeojingallery.co.kr
제2전시실의 불상 조성 모형
미술관 제 2전시실에는 앙증맞은 모형들이 있습니다. 불상을 조성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장인 모형들입니다. 청동불靑銅佛과 목불木佛을 만드는 전통적인 방법이 순서대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불상이 어떻게 조성되는지 궁금하신 분들이 계셨다면 전시된 모형으로 그 궁금증을 해소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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