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욕지족小慾知足의 가르침을 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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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욕지족小慾知足의 가르침을 얻다
  • 불광출판사
  • 승인 2014.11.04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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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열展 - 깨달음, 그 길고 긴 수행의 시간 | 사람이 있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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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가 마지막이었을까. 아버지 기억 속에 남아있는 아들과의 여행은 남해 고향집이다.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시골집 뒷산으로 남해의 푸른 바다로, 함께 추억을 만들던 그때. 아버지에겐 그때가 마지막 여행으로 남아있다. 반면 아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아버지와의 여행은 배우의 꿈을 키우던 고교 시절 전국연극제가 열렸던 공주에서 두 사람이 함께 보낸 시간이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배우의 길을 선택한 아들에게 무대 위의 아버지는 늘 커다란 산과도 같았고, 언젠가부터 이루고 싶은 꿈이 되어버렸다. 기억의 조각이 다른 아버지와 아들. 그들이 새로운 추억을 만들기 위해 길을 나섰다. “작은 것과 적은 것으로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는 ‘소욕지족小慾知足’의 가르침을 배울 수 있는 곳. 이번호 독자와의 여행은 연극배우 정상철(67세)씨와 정희중(32세) 씨가 함께 한 무소유의 사찰 길상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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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1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인생을 살다보면 누구나 한 번쯤 흔들릴 때가 있다.
생각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지금 가고 있는 이 길이 맞는 건지 불안할 때,
자신이 선택한 삶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의심한다. 
아들이 처음 배우를 하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아들의 선택이 탐탁스럽지 않았다.
그 길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지,
배우로 인정받을 때까지 피나는 노력으로 
인고의 시간을 버텨야 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1973년 국립극단 단원으로 시작해 올해로 42년.
그 녹록치 않은 시간을 보낸 지금,
그래도 그는 무대 위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아들은 대학을 졸업한 후, 대학로 연극무대로 뛰어들었다.
서류가방을 들고 회사로 출근하는 다른 아버지들과 달리
얼굴에 분장을 하고 무대 위에서 공연하는 
아버지를 보고 자라면서 아들의 삶 속에 
아버지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었고
고민 없이 배우의 길을 선택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우려대로 배우로 산다는 건 쉽지 않았다.
이십대를 지나 삼십대로 접어든 지금. 
현실에 부딪혀 꿈이 흔들릴 때마다
아들의 마음은 자꾸만 조급해진다.
 
길상사 여행을 제안한 건
흔들리는 아들의 마음이 배우가 되겠다고 선언하던
그때의 초심을 잃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젊음이 가지고 있는 열정, 그 열정 속에 숨어 있는 소유욕을
이곳에서라면 잠시 내려놓고 초심을 들여다 볼 수 있지 않을까?
법정 스님이 남긴 무소유 철학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무소유의 사찰 길상사에서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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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2
길상사에서 만난 법정 스님의 흔적
길상사의 시작은 어쩌면 한 시대를 풍미했던 
대원각의 주인 김영한과 시인 백석의 만남에서부터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뜨겁게 사랑했지만 백석 부모의 반대로 헤어졌고 
한국전쟁은 그들을 남북으로 영원히 갈라놓았다. 
백석을 가슴에 품고 홀로 여생을 보낸 그녀는
어느 날 법정 스님의 ‘무소유’ 철학에 큰 감동을 받았고,
이곳을 여인들의 웃음소리 대신 맑고 장엄한 범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청정한 도량으로 만들어 줄 것을 청했다. 
그녀는 떠나고 없지만 길상사는 그녀의 바람대로
맑고 향기로운 사찰로, 참선과 사색의 공간으로 남아있다.
도량을 한 바퀴 돌아 법정 스님이 
이 생에서 마지막 밤을 보낸 진영각眞影閣으로 간다.
스님이 생전에 썼던 모자, 안경, 염주, 다기 같은 유품과 
수십 권의 저서가 전시돼 있다. 
스님의 소박한 삶이 고스란히 묻어난 전시관을 둘러보며
아버지와 아들은 ‘소욕지족小慾知足’의 가르침을 생각한다.
답답하고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진 듯
두 사람의 입가에 살포시 미소가 번진다. 
시선을 돌려 바라본 진영각 꽃밭.
스님의 유골이 보관되어 있는 그곳에 
오랜만에 ‘해오라기 난’이 꽃을 피웠다.
새가 날개를 펼치고 하늘을 나는 것처럼 하얀 꽃을 피운
‘해오라기 난’의 꽃말은 “꿈속에서도 당신을 생각합니다.”
“꿈에서라도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이다.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마치 무리지어 하늘을 나는 새처럼
하얀 날개를 펼친 ‘해오라기 난’.
‘빠삐용’ 의자에 앉아 
‘해오라기 난’을 바라보며 스르르 잠이 들면 
꿈속에서라도 스님을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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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3
인생이라는 항해, 아버지라는 등대
성북동을 벗어나 이번엔 부암동이다.
경복궁을 품고 있는 북악산에서 인왕산으로
이어진 성곽길을 따라 걷다보니 
어느새 창의문彰義門에 다다랐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는 연극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어 늘 풍성하다.
아들에게 아버지는 닮고 싶은 인생의 선배이자
믿고 따라가야 할 스승이다.
선배이자 스승이 되어버린 아버지는 먼저 걸어온 길이기에 
아들의 고민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연극이 좋아 배우의 길을 선택했지만
무대에 설 기회가 많지 않다는 괴로움.
무작정 꿈만 좇을 수 없다는 경제적 어려움은
삶 전체를 흔들어 놓을 만큼 힘든 시간이다.


아버지 역시 그랬다. 한 때는 무대에 서지 못하는 것을
모두 남의 탓으로 여겼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남의 탓이 아니라, 모두 내 탓’이라는 것을.
생각이 전환이 시작되자 문제는 오히려 쉽게 풀렸다.
배우라는 직업이 누군가로부터 선택받는 사람이라면 
가만히 기다리지 말고 자신의 실력과 가치를 알릴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배우의 삶을 선택한 이상 실력을 쌓기 위한 노력과 
때를 기다리는 시간과의 싸움은 숙명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인생이라는 긴 항해에 올라있다.
항해를 하다보면 맑은 날도 있지만 
파도가 치는 어두운 밤도 만나게 된다.
인생이라는 항해 길, 어둠을 밝혀 줄 등대가 있다면
그래도 조금은 안심하고 순항할 수 있지 않을까?
아들은 그렇게 아버지를 등대 삼아 같은 길을 향해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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