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첫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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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첫 길
  • 불광출판사
  • 승인 2015.02.27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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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가 왔다. 발신처는 대구 달서우체국. 나머지 주소는 (사)○○- ○○○. 일반인에게는 낯설 수 있지만, 금방 알아봤다. 교도소에서 온 편지다. 그는 젊은 나이에 수감되어 불교 책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교도소에서 몸을 다쳐 치료실에서 월간 「불광」을 처음 보게 되었다. 치료가 끝나자 일반실로 옮겼는데, 그곳에는 「불광」이 없었다. 읽을 불교잡지가 없는 것이다. 그는 계속 읽고 싶으니, 보내주실 수 없는지 손글씨로 눌러 썼다. 죄송하다면서 꼭 부탁드린다고 했다. 그는 형기가 1년 2개월 남았다. 그렇게 비슷한 사연의 편지가 최근 4통이 왔다. 

몸의 이동이 제한된 이들에게 불교는 무엇일까? 편지에 쓴 참회, 도반, 행복, 마음 이런 단어들 속에서 짐작할 뿐이다. 갇힌 공간에서 생각은 깊어졌고, 삶 전체를 바라봤으리라. 불교가 주는 수많은 스펙트럼들은 그들의 마음 한 구석에 존재했던 ‘어떤 것’과 만났을 것이다. 이 만남, 강렬했을 것이다. 강렬한 이 경건성. 이것은 그들에게뿐 아니라 모든 불교인을 향해 말하고 있다. 

불교의 첫 길은 거기서 시작된다. 그들처럼 지금 여기에 있는 삶 전체로 불교를 봐야 한다. 그래야 만날 수 있다. 그 옛날, 2천 5백년 전 누구보다도 외롭고, 고독했고, 쓸쓸했던 고타마 싯다르타가 그랬다. 사문유관四門遊觀으로 표현된 언어는 싯다르타의 삶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한다. 말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혼자일 수밖에 없다. 왕자는 없다. 그 곁을 지켰던 마부 차익도 없다. 아들 라훌라, 아내 야쇼다라도 없다. 정반왕 숫도다나도 없다. 스스로 세상의 가장 먼 곳에서, 가장 깊은 곳에서, 철저히 버려진 그곳에 그가 있다.

그는 집을 벗어났다(出家). 그리고 걸식하며 편력했다. 왕자를 위해 지어진 궁전은 괴로움의 감옥일 뿐이다. 모든 것으로부터의 단호한 이탈, 자신이 속한 전통의 질서와의 결별, 자신 스스로 받아들인 준엄한 길이다. 이 젊은 왕자는 왕궁 속에서 자신이 보고, 체험했던 것으로부터는 고뇌와 불안의 사슬을 끊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싯다르타가 출가의 길을 떠나는 그날 밤, 마부 차익은 그의 출가를 간곡하게 말리자 이렇게 답한다. 

“오, 친구여! 나는 무수한 윤회를 거치면서 살아오는 동안 육체와 정신적 기쁨을 실컷 누려 보았으나 결코 만족할 수 없었네. 이제 모든 인간의 지복至福을 위해 출가하고자 하는 결심은 수미산須彌山처럼 확고부동하다네.”

외로운 길이다. 그를 둘러싼 가家의 인습因習은 이제 없다. 그는 왜 이 길을 갔을까? 무엇이 그를 그 길로 가게 했을까? 우연히 사문유관을 경험하고, 홀연히 출가의 길을 강행한 것이 아니다. 경전에 보인 것처럼 10대, 20대의 성장 과정에서 보았던 수많은 삶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사무치게 생각했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세계의 조건들이 자신과 인간의 삶의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분명하게 알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한 장면으로 표현되고, 하나의 사건으로 이미지화되었을 뿐이다.     

우리 모두 자기만의 집, 우리만의 왕궁에 있다. 싯다르타가 한밤중 넘었던 그곳은 오늘, 여기에, 너무나 많다. 오히려 더 복잡하고, 더 유혹적이며, 더 안락한 도피처로 변했다. 인간의 모든 삶이 자본화한 것도 그렇다. 불교를 삶 전체로 봐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깊이 사유하고, 마침내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강렬함이 있어야 한다. 다시, 깊은 밤에 왕궁의 담을 넘으며 삶과 죽음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자 첫 길을 떠났던 29세 청년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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