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음식기행] 고사리 새벽에 고개 드는 정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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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음식기행] 고사리 새벽에 고개 드는 정한 마음
  • 박찬일
  • 승인 2015.06.13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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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림 스님과 함께 고사리 찾아 떠난 여행길
 
 
 
 
그러니까, 여기가 고사리밭?
게으른 잠을 털고, 고사리, 아니 쌍계사로 우선 도림 스님을 만나러 간다.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는 시오리가 좋은 길이라 해도 굽이굽이 벌어진 물과 돌과 장려한 풍경은 언제 보아도 길멀미를 내지 않게 하였다.”
 
김동리가 단편소설 『역마』에서 묘사한대로 물과 돌과 사람과 그리고-꽃이었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는 이미 흔적도 없이 저 물길 계곡으로 다 져버렸을 벚꽃이었다. 그 꽃들이 차 허리에 닿을 듯, 벚나무는 가지를 벋어 달리는 차들과 손뼉을 마주친다. 그리고 이내 쌍계사에 닿는다. 도림 스님이 이미 도착해 있다. 혜능의 머리뼈가 묻혀 있다는 절이다. 쌍계사 구경은 미루고 일행을 실은 차는 가파른 농로를 달린다. 새벽에 고사리를 찍느라 일찍 나섰던 최 선생이 카메라를 들고 반긴다. 그의 수염이 어린 고사리의 솜털처럼 하얗게 변하였다. 고사리밭을 관리하는 ‘하동촌’의 정보석 사장이 트럭을 끌고 앞선다. 듣기로 고사리밭을 간다고 하는데, 둘러봐도 도대체 밭이 있을 곳이 없는 급경사지다. 기어이 취재팀을 실은 차가 흙길을 이기지 못하고 바퀴를 헛돌린다. 겨우 올라 내려 본다. 섬진강이 멀리 흐르고, 물안개가 뽀얗게 피어올랐다. 아직 아침나절이라 산은 축축한 기운을 품고 있다. 도림 스님은 마치, 당신의 앞마당에 들어선 듯 걸음이 경쾌하다. 역시 스님들은 산에 들어야 기운이 솟는가. 군데군데 어린 쑥이 말갛게 얼굴을 내밀고 있고, 늦은 냉이도 엉켜 있다. 천천히 내려갈 시간이 있다면야 한 바구니 캐고 싶다. 경사 길을 오르느라 허리가 뻐근하다. 
 
“아이구, 이 정도 경사가 뭐 험하다고,”
 
어지간한 솜씨가 아니시다. 벌써 뭘 손에 들고 계신데, 고사리다. 이것 보라고, 저기도 고사리네. 예뻐라. 그러니까, 여기가 고사리밭? 
 
“네 맞슴다. 고사리밭이라꼬, 뭐 평평한 밭 생각하시는데, 그기 아이고요, 이렇게 경사진 산이 고사리밭임다.”
 
서글서글하고 유머 감각도 있는 정 사장의 말이다. 도림 스님은, 진즉 그런 줄 알았다는 듯 고개만 끄덕이신다. 이런 데가 진짜 고사리 자라기 좋은 땅일세, 해가 잘 들고, 큰 나무가 없어 그늘도 옅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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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집에 옛날에 뭐 먹을 거 있어요, 고사리가 참 고맙지.”
멀리 지리산 형제봉이 보이는, 급경사 산이 고사리밭이 된 건 사유가 있다. 본디 하동은 밤이 유명하다. 하동 물에는 김이고, 산은 밤이란 말이 있다. 하동 땅은 날물과 들물이 만나는 특성이 있어서 원래 김이 유명했다고 한다. 다 과거의 명성이다. 밤은 여전히 인기와 물량을 이어가고 있는데, 예전만 못하다. 그 이유가 가슴 아프다. 
 
“밤은 벌레가 잘 먹는데, 소비자들이 그런 건 싫어하니 농약을 막 칠 수도 없고, 점차 덜 짓게 되는 게지요. 여기 밤이 작고 단단한 토종인데, 그런 이유로 생산하기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섭섭한 일이다. 달고 맛좋은 밤에 벌레가 드는 건 자연의 이치다. 하여튼 그런 전차로 정 사장도 밤나무를 베어내고 고사리를 ‘기른’다. 기른다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신경을 쓰고 거둔다는 의미일 뿐, 따로 그가 하는 일은 없어보였다. 약도 안 치고, 씨를 뿌리는 것도 아니다. 딱 하나, 봄에 좋은 날을 골라 새 고사리를 따는 것이다. 부지런히 따되, 딱 그만큼이다. 고사리도 밭에서는 이모작도 하고 효율을 높일 수 있는데, 이 산중에서는 이 봄 그만큼만 한다. 
 
“고사리는 나무가 울창하면 잘 안 됩니다. 나무를 잘라내니 금세 팍, 퍼져가 이렇게 밭이 되었습니다.”
 
고사리는 하동과 이웃인 남해, 그리고 제주가 우리나라 주산지다. 들과 산에서 저 혼자 자라는 고사리가 시장에 나올 확률은 아주 적다. 기르는 방법이 무엇이든 사람이 ‘의도’하고 수확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제, 우리가 상상하듯이, 아낙들이 봄 들판과 산비탈에서 고사리 캐는 일은 더 이상 꿈같은 일이다. 예전에 이탈리아에서 요리 공부할 때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봄이 되면 로마의 교민들이 교외로 고사리를 캐러 갔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고사리를 먹지 않는다. 않는다기보다, 먹을 줄을 모르는 것이다. 말려서 포슬포슬하게 데친 고사리 맛을 보면 아마도 유럽에서도 고사리가 인기 있을 것 같다. 인종과 상관없이 맛있는 건 맛있게 마련이니까. 살살 결대로 찢어지며, 야들한 고사리 맛을 모르는 이들은 불행하다고 해도 좋으리라.
 
고사리를 캔다고 했지만, 실은 틀린 말이다. 도림 스님이 시범을 보인다. 고사리 대궁을 잡고 아래에서 위로 훑어 올라가면서 살짝 힘을 주면, 딱 적당하게 꺾이는 지점이 있다. 해보니 과연, 맞다. 도림 스님은, 이런 말씀이 누가 안 된다면, 우리 누이 같이 칭찬을 잘하신다. 어이, 잘하시네, 맞아, 맞아. 정 사장도 고개를 끄덕인다. 
 
“예전에 고사리 많이 꺾었어요. 절집에 옛날에 뭐 먹을 거 있어요. 고사리가 참 고맙지. 하루 종일 나가서 스님들과 고사리를 꺾어요, 그걸 말려야 일 년 찬이 나오니까.”
 
다들 고사리를 꺾는다. 고개 숙여 겸손하게, 인사하듯, 땅에 허리를 굽히고 냄새 맡으며 고사리를 얻는다. 어린 싹을 일찍이 내어준 고사리 가족에게 감사의 마음도 고개 숙여 전한다. 이것이 만물의 진리, 섭생이 땅에서 시작하는 빳빳한 원칙이다. 도림 스님의 모자 옆으로 슬쩍 땀이 비친다. 어느새 흐린 하늘 옆으로 해가 솟아 지리산 자락이 장엄해진다. 섬진강 물이 해를 받아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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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사리 감칠맛은 채수와 장이 낸다
고사리는 예부터 절집의 부엌 친구다. 백이 숙제가 고사리를 꺾어먹고 살았듯이, 청정하며 욕망을 비우는 기운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고사리는 궐채라고도 부르며, 성질이 차고 활(滑, 부드럽다는 뜻)하다고 한다. 공부하고 도 닦는 이들의 찬으로 딱 맞는 성격인 것이다. 고사리는 4월 중순에서 5월 중순까지가 수확 적기다. 고사리손이라는 말이 있는데, 아기 손처럼 옹주먹을 쥔 듯한 상태가 야들야들하고 부드러운 맛을 보인다. 
 
고사리는 번식력이 아주 강하다. 그늘이 없으면 금세 대지를 차지한다. 고생대에 지구에 등장하여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아침에 본 싹이 점심에 가면 웃자라서 좋은 고사리가 못 된다는 말도 있다. 그래서 새벽에 고사리를 꺾는다. 고사리는 옹주먹처럼 갓 올라온 상태가 지나면 세 갈래로 나뉘는데, 이때는 이미 상품가치가 많이 떨어질 때다. 맛도 없고 질기다. 
 
“뻐세지기 전에 따야 좋은 고사리가 돼요, 곧바로 쪄서 말린 후 상품화합니다.”
 
정 사장의 모친과 아내가 고사리 수확을 전담한다. 거둬들인 걸 찌고 말리는 것도 그들의 몫이다. 고사리는 꺾은 후 곧바로 삶아야 부드럽고 맛있다. 삶는 이유는 은근한 독이 있기 때문이다. 생것일 때 비타민B1을 파괴하는 효소가 있어서 반드시 삶아야 빠진다. 너무 삶으면 물러져서 못쓴다. 단순해 보이는 고사리나물 한 접시에도 이렇듯 다채로운 비밀이 숨어 있다. 물론 그렇게 삶은 고사리를 맛있게 만드는 건 요리사와 공양주들의 몫이다. 
 
사찰음식에서 고사리는 아주 소중하다. 말려서 쓸 수 있기 때문에 사철 재료다. 나물과 전, 탕에 고루 넣을 수 있다. 도림 스님은 갓 수확한 고사리를 데쳐서 구수한 요리를 만들고 있다. 대궁부터 삶아야 균형이 맞고 맛있다는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본디 공양이란 건 지구에 짐을 지우는 일이다. 그러니, 기왕지사 맛있게 먹고 그 기쁨이 충만하여 순환되도록 하는 게 옳은 일일 터. 도림 스님이 요리를 하기 위해 보따리를 여는데, 소박한 양념들이 담겨 있다. 
 
특히 간장이 감칠맛이 돈다. 오랜만에 맛보는 진짜 간장이다. 수수하고 단출하며, 검박한 구성이 사찰음식인데, 그것을 밑에서 받쳐주는 건 역시 장이다. 육것 없이 맛을 내는데, 장처럼 고마운 존재가 없다. 감칠맛이란 맛의 기둥인데, 쓸 수 있는 재료가 극히 한정되어 있는 절집 음식의 기초를 닦아두는 건 역시 장일 수밖에 없다. 
 
그 맛 말고도 도림 스님이 쓰는 비결이 하나 더 있다. 채수다. 채소를 우린 물을 이른다. 육수가 아니라 채수라는 말로 우리 미각이 경건해지는 것 같다. 서양요리에서는 워낙 고기 우린 물을 많이 밑맛으로 쓰므로, 채수에 응당하는 말이 없다. 예를 들어 순수하게 채소로 만든 액체도 ‘채소 육수vegetable stock’라고 부른다. 스톡이란 말이 이미 육수란 뜻이니, 불립문자인 셈이다. 채수란 말은 우리가 모두 즐겨서 쓰면 어떨까 싶다. 국립국어원의 사전에도 일단 이런 뜻의 채수는 올라 있지 않다. 요리를 마쳤다. 정 사장이 점심도 겸하라고 김치며 나물 등속을 내온다. 늙은 나무가 있는 마을 평상에 앉아 공양을 나누었다. 감사한 마음만 충만해진다. 
 
정 보석 사장의 배웅을 받으며, 일행이 일어섰다. 일주일 전에 식구로 들였다는 백구 진돗개 새끼 형제가 멀뚱히 본다. 나무와 들과 고사리와 우리 마음과 쌍계사 십리벚꽃길과 저 개에도 불성의 나무관세음보살. 
 
 
박찬일
‘문학과지성사’가 운영하는 ‘로칸다 몽로夢路’의 헤드셰프이자 작가. 어머니 치맛자락 앞에서 콩나물과 마늘을 다듬으며 요리를 시작했다. 서울에서 몇몇 히트식당을 열었으며, 한국 식재료를 이용한 이탈리아 요리는 그가 최초이다. ‘글쓰는 요리사’로 『뜨거운 한 입』, 『백년식당』,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보통날의 파스타』 등 그만의 따뜻한 시선과 감성어린 문장이 돋보이는 책들을 냈다.
 
 
 
 
도림 스님의 생기발랄  
맛生生 기운生生 생고사리들깨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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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
생고사리 200g, 표고버섯 5개, 콩나물 100g, 채수 3컵, 들깨가루 1컵, 쌀가루 3T, 청・홍고추 1개씩, 집간장 2T, 참기름, 소금 약간
 
만드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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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콩나물은 머리와 꼬리를 떼어내 씻어두고, 표고버섯과 청・홍고추는 먹기 좋게 썬다.
 
 
 
 
 
 
 
 
2. 생고사리는 쌀뜨물에 소금을 넣고 15~20분 정도 삶아서 건져내고 한 번 더 삶아낸 다음 물에 담가서 아린 맛을 우려낸다.
 
 
 
 
 
 
 
 
3. 생고사리를 체에 받쳐 물기를 뺀 다음, 팬에 참기름과 집간장을 두르고 생고사리를 넣어 볶는다. 
 
 
 
 
 
 
4. 3에 표고버섯을 넣고 볶다가 채수를 붓고 한소끔 끓인 다음, 들깨가루와 쌀가루를 넣고 끓인다. 
 
 
 
 
5. 청・홍고추를 넣고 소금으로 간한다.
 
 
Tip_
고사리에는 이와 뼈를 튼튼하게 하는 성분이 들어 있으며, 독열을 없애주고 이뇨작용을 한다. 4월에서 5월에 나는 생고사리는 두세 번 데쳐 쓴맛을 우려내고 요리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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