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프로젝트, 실상사의 새로운 종교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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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프로젝트, 실상사의 새로운 종교예술
  • 김준기
  • 승인 2015.09.03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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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프로젝트, 실상사에서 새로운 종교예술을 꽃피우다

 

 
 
| 실상사 마당의 무궁화나무와  극락전 불상의 LED광배
오랫동안 종교와 예술은 인간의 정신세계, 특히 감성영역을 다룬다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서로 만날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 그 장벽을 허문 것이 ‘지리산프로젝트’다. 개인, 공동체, 자연의 생명평화 가치를 담아 우주를 품는 예술프로젝트로서, 지리산 둘레길 일원의 마을과 주민들이 참여하는 공동체예술을 추구한다. 먼지 한 톨과 물 한 방울에서 생명평화를 사유하는 우주적 관점으로 자연과 사람, 길과 마을, 영성과 공동체성을 다시 바라보자는 시도이다.
 
지리산 자락, 남원시 산내면의 천년고찰 실상사는 ‘지리산프로젝트 2014 : 우주・예술・집’을 시작으로 현대미술과 만나기 시작했다. 실상사 회주 도법 스님이 생명평화 가치와 예술의 감성적 소통이 만나도록 (사)숲길과 실상사의 후원을 매개했다. 종교적 제의 공간을 예술적 소통과 연결하기 위해 다양한 의제와 매체들이 선택됐다.
 
팝아티스트 강영민은 도법 스님, ‘일간베스트’ 회원과 함께 약사전 앞에 무궁화나무를 심었다. 그것은 이른바 ‘애국보수’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무궁화나무의 뜻을 나눠갖는 것이다. 대립과 갈등을 유발하는, 특정 세력이나 집단의 전유물이 아닌, 동시대 보편적 가치의 상징으로 무궁화나무를 재발견하려는 행위이다. 진영논리에 따라 편을 가르고, 상대방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으며, 고집스럽게 자신의 주장만을 펼치는 한국사회의 이념대립을 풀어내고자 하는 상징적인 퍼포먼스였다. 
 
법당에 뉴미디어아트가 자리 잡았다. 예불공간에 LED미디어와 영상작품이 설치된 것은 실상사 예술프로젝트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김기라는 극락전 불상 뒤에 LED광배를 설치했다. 법당에 모신 부처 뒤에 미디어아트를 전시하고 그것을 지속적인 설치물로 존치하기로 한 것은 현대미술에 대한 실상사의 개방적인 관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불상과 공간에 맞는 은은한 조명과 적절한 크기, 두께 등으로 뉴미디어 설치미술의 맛과 멋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또한 그는 실상사 극락전 측면의 담장 너머 공터에 향후 10년간 나무심기를 진행할 예정인데, 첫해 작업은 앞으로의 계획을 적은 안내판 부착이었다. 
 
석성석은 약사전 내부에 인터랙션(Inter-action, 상호작용)이 있는 미디어아트를 전시했다. 예불의 공간에 영상예술이 결합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지만, 스님들과 신도들은 새로운 시각매체, 그것도 움직이는 이미지인 영상매체의 설치작품을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과 문화 속에 접목한 또 다른 문화로 받아들여 주었다. 백남준의 미디어아트 ‘TV부처’가 실재하는 불상과 영상 속의 불상 이미지를 보여주면서 실상과 허상을 교차시켰다면, 석성석의 영상 설치 작품은 불상과 영상, 예불자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예불공간의 경건한 소통을 매개했다.
 
 
| 종교와 예술의 만남, 세월호의 아픔을 어떻게 치유했을까?
세월호 사건을 다룬 작품들은 종교와 예술이 치유의 역할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었다. 안상수는 목탑지 위에 304개의 태양광 LED 등을 설치해 세월호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작업을 했다. 낮 동안 햇빛을 받아 밤이면 어둠을 밝히는 빛 작업은 생명평화의 본산인 실상사의 마음을 잘 나타내준다. 김윤환은 세월호 기도회에 참석하여 퍼포먼스를 벌였다. 그는 천을 뒤집어쓰고 등장해 무언가를 반복해서 웅얼거리다가 점점 또렷한 말로 바뀌었는데, 그 말은 “미안합니다.”였다. 
 
장영철은 대나무를 쪼개 만든 선재로 세월호 천일기도단을 건축했다. 대나무 매력을 살려 깔끔하고 단정한 공간을 구축하고 그 안에서 세월호의 고통과 슬픔을 나누는 기도의 공간을 만든 것이다. ‘프로젝트 2014 대한민국 봄’은 협력큐레이터 이재은의 진행으로 박재동, 노주환, 배성미, 김소영, 김명윤, 김성수, 김시연, 김연주, 김혜윤, 박신하, 박지수 등이 세월호의 충격과 고통을 담은 설치미술 작품을 설치하고 그것을 치유하는 예불로 연결시키는 설치 퍼포먼스였다. 
 
생명평화무늬와 한글주련은 실상사의 독특한 상징이다. 안상수는 ‘가득함도 빛나고 비움도 빛나라’라는 문구를 주련에 새겨 기둥에 부착했다. 안상수체 한글 주련은 친숙함과 더불어 미적으로도 새로운 감성을 불어넣어 주었다. 또한 그는 김경찬과 마고, 신믿음 등과의 협업으로 목탑지에 생명평화 무늬가 있는 깃발을 세웠다. 
 
돌조각은 전통적으로 불교사찰과 잘 어울리는 매체다. 김성복 교수와 그의 제자들로 이뤄진 ‘성신석조각연구회’는 김병규, 김성복, 김재호, 김지영, 노준진, 이호철 등이 참가해서 생명평화 서원문을 비롯해 실상사 경내의 돌에 다양한 텍스트와 문양을 새기는 작업을 했다. 특히 김성복은 실상사 입구에 있는 돌장승들 가운데 몸통만 남은 것으로 추정되는 석조각에 맞춰 머리 모양을 새로 제작했다. 이를 해탈교 입구에 눕혀 놓음으로써 역사적 맥락을 읽어낸 현대미술의 유의미성을 돋보이게 했다.
 
벽화와 소리예술 또한 실상사의 모습을 새롭게 해주었다. 박영균은 벽화를 그렸다. 경내에 존재하는 샌드위치 패널의 창고 건물 외벽에 창고의 내부 풍경을 담아 그려내고 그 앞에 택배 박스를 그려 넣었다. 그 박스에는 우주로 보내버리고 싶은 한국사회의 이념적 갈등요소들을 그려 넣었다. 정만영은 실상사의 소리를 채집한 사운드 아트를 전시했다. 그의 전시공간은 예전의 해우소 건물을 바꾼 변소화랑인데, 방문객들은 변소화랑의 장소성은 물론 그가 들려주는 절집의 소리에 빠져들었다. 
 
사진과 회화 작업도 실상사의 역사와 공동체성을 담았다. 장유정은 실상사의 천년의 시간을 사진에 담았다. 문화재청 발굴 프로젝트 때마다 참석하여 과정을 기록하고 있는 그는 천년의 무게를 담은 발굴 현장에서 시간의 모습을 담아냈다. 실상사 인근 함양에서 작업하는 연규현은 지리산과 실상사의 풍경을 담은 회화작품을 전시했고, 이선일도 실상사 풍경을 담은 회화 작품을 선보였다. 권기주는 산내초등학교 아이들과 함께 이쑤시개로 작품을 만들었다. 작고 하찮은 것을 가지고 공동체성과 연결하여 예술작품을 만드는 과정과 결과에 주목한 것이다. 
 
퍼포먼스와 설치미술도 불교적 세계관을 되새겼다. 천경우는 ‘하늘이거나 땅이거나’라는 제목의 퍼포먼스 작업에서 신도들과 주민들이 집에서 쓰던 찻잔들에 물을 담아오고 그 물을 마신 후 실상사 법당 앞에 잔을 심는 행위예술을 펼쳤다. 찻잔 속에 끼는 먼지와 물은 우주적 존재를 상징한다. 하늘과 땅이 만나는 일이었다. 정재철은 백자에 지리산프로젝트 관련 문구를 새겨 극락전 뒤편 공터에 묻고 그 위에 쉼터를 조성했다. 자연과 종교와 예술이 공존하는 지리산프로젝트에 역사적 의미를 새긴 것이다. 정혜경은 경내 원두막 외벽에 수퍼미러super-mirror를 설치하여 외부 풍경을 담아내는 작업을 했다.
 
실상사에 깃든 예술프로젝트는 예불의 공간에서 동시대의 감성을 담은 새로운 어법으로 생명평화 가치를 표현했다. 대립과 갈등의 한국사회를 대화와 공존의 세계로 진일보하게 하기 위한 가치에 대중들은 목마르다. 천년고찰 실상사와 현대미술의 만남을 시작으로, 우리 시대 종교와 예술이 새로운 대화의 장을 열고 있다.
 
 
 
김준기
지리산프로젝트 예술감독.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예술학과와 동대학원 석사 과정, 예술학 전공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미술전문지 「가나아트」 기자를 시작으로 가나아트센터, 사비나미술관의 전시기획자, 학예연구실장을 거쳐 2006년 부산비엔날레 조각프로젝트 전시팀장, ‘아트인시티 2006’ 프로젝트 매니저를 맡았다. 2007년 석남미술상 젊은 이론가상을 받았으며, 경희대학교 겸임교수,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2007-2010),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2010-2015)으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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