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음식기행] 인자, 미역이 자라는 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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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음식기행] 인자, 미역이 자라는 기라
  • 박찬일
  • 승인 2016.03.03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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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림 스님과 함께 미역 찾아 떠난 여행길
 
 
배를 얻어 타고 미역밭으로 나간다
 
기장 곳곳에는 해송이 우뚝우뚝 솟아 있다. 우리가 찾아갈 김광선(68)씨 댁(심명자 명품기장미역집)은 복잡한 골목과 밀집한 가옥들 사이에 있었지만 찾기 쉬웠다. 기장군 죽성리의 상징처럼 되어 있는 해송 밑에 집이 있기 때문이었다. 해송은 동해안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식생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미역을 찾아왔는데, 기장 미역은 동해안 미역에 속한다. 일찍이 조선시대의 허균은 유명한 한글소설 말고도 우리 음식사에서 매우 중요한 저작 하나를 남겨 놓는다. 바로 『도문대작屠門大嚼』이다. 1611년에 쓴 글이니, 음식 관련 서적으로는 가장 오래되었다. 그가 전국을 다니며 맛본 최고의 음식을 기록하는데, 삼척의 미역이 나온다. 
 
“조곽(早藿: 올미역)은 삼척에서 정월에 딴 것이 좋다(産 三陟者 正月而生)”
 
삼척 미역이 당시나 지금이나 최고인지 논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해 미역의 품질을 설명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기장은 동해안에서도 양이 많은 편이고, 품질도 뛰어나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옛 신문을 보면 함경도와 강원도의 미역이 많이 나온다. 이런 미역을 입곽廿藿이라고 불렀다. 확실히 이 땅의 동쪽 바다에서 나오는 미역(당시에는 자연산이 많았다.)은 최고의 품질이었던 모양이다. 
 
김광선 씨는 우리 취재 일행을 맞았다. 개량식으로 지은 주택 앞에 너른 건조장이 있다. 지붕도 없이 묵정밭 위에 임시로 건조장을 설치한 것이다.
 
“미역이 나오고 말루고(말리고) 하는 건 짧다 아임니꺼. 건조장이 상설로 있는 게 아이고요.”
 
보통 설 전후로 미역을 수확한다. 우리가 취재할 무렵이 1월말이니 아직 이르다. 그러나 올해 미역은 더디다. 
 
“절반 정도밖에 안 자랐어예. 인자 마이 자랐어야 하는데 물이 뜨듯해가….”
 
올해 수온이 높다. 엘니뇨 때문이라고들 한다. 1월 하순께 외에는 겨울 들어 계속 날씨도 따뜻한 편이었고, 수온도 높으니 미역이 스트레스를 받았다. 
 
기장군 죽성은 미역의 주산지다. 그가 모는 야마하 60마력짜리 에프알피 배를 얻어 타고 미역밭으로 나간다. 군데군데 아름다운 바위들이 있다. 갯바위에 붙은 낚시꾼들이 보인다. 바다는 청아한 달만큼 맑았고, 청신한 냄새를 풍겼다.
 
“저런 바위들에 돌미역이 붙습니더. 아직 딸 때는 안 됐고. (양식에 비해) 서너 배 비싸지요. 양식도 말이 양식이지 뭐 우리가 하는 게 없심니더. 지가 알아서 다 크는데 양식이라 카기도 뭐하고.”
 
아닌 게 아니라 그저 줄에 감아 놓고 거두는 게 일의 대부분이다. 먹이를 주는 일도 당연히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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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끼 기루는 것과 다를 바 없지예”
 
미역은 우리 민족의 중요한 반찬이면서 동시에 일종의 ‘목숨’처럼 애지중지했다. 새로운 목숨을 낳은 산모의 필수 품목이었고, 관급 진상이나 세금으로 올라가는 우선 품목이었으며, 나중에 근대에 들어서는 물가의 기준이기도 했다. 요즘에 오히려 미역을 덜 먹는 것 같다. 물가 기준에서 미역은 중요한 위치에서 내려왔다. 대신 짜장면이나 설렁탕, 심지어 핸드폰 가격이나 통신비용이 들어간다. 
 
“미역 장곽 한 춤에 3원 50전이다.”
 
동아일보 1921년 8월 15일자에 나온 그날의 공설시장 물가다. 아마도 동대문시장인 듯하다. 쌀, 새우젓, 쇠고기 등의 가격과 함께 미역이 빠지지 않았다. 가격도 꽤 비쌌다. 건고추 한 말에 50전에 불과했으니, 미역 한 두름의 가격 3원 50전은 꽤 높은 것이었다. 
 
부인 심명자 씨는 물질을 나갔단다. 그이는 해녀다. 죽성리 입구의 정자 옆에는 해녀 상이 서 있다. 억척스러운 생활력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여성의 직업으로 해녀를 능가할 것이 별로 없을 것 같다. 해녀는 물옷을 입으면 해녀가 되고, 옷을 벗으면 농사꾼이 된다. 그리고 식구들 챙기고 살림한다. 우리가 김 씨를 따라 미역밭에 다녀오니 그새 아내 심 씨는 물질에서 돌아와 수확물을 들고 기장시장에 나갔다. 오일장이 있었던 모양으로 시장이 제법 흥청거렸다. 그 장에 나가 돈을 바꿔 오실 것이다. 
 
“그만 하라 해도 기어이 나갑니다. 뭐 전복, 소라, 낙지, 성게 같은 걸 잡심니더. 요새 귀한 말똥성게가 나오는데, 좀 잡았나 모르겠네.”
 
미역은 자연산은 알아서 자라고, 대부분의 양식은 11월에 시작된다. 먼저 미역 종자를 받아야 하는데, 대개 일정 정도 키워서 실처럼 말려 있는 것을 한 타래에 얼마씩 주고 사들인다. 이것을 줄에 붙여서 바다에 넣는 것이 골자다. 
 
“한 타래에 삼만 원 합니다. 이걸 뭍에서 150미터짜리 줄에 감아서 11월에 입수를 하모, 인자 미역이 자라는 기라.”
 
미역 ‘새끼’는 꼭 파래처럼 가늘고 잘다. 이것이 바다 속에서 자연의 영양을 먹고 자라 질깃하고 튼튼한 미역이 되는 것이다. 꼬박 111일을 자라야 상품이 된다. 
 
“미역 붙은 줄을 바다에 내리모 일이 끝난 것 같아도 자주 들여다보고 잘 자라나 봐줘야 합니다. 그동안 마음이 참 어렵습니다. 새끼 기루는 것과 다를 바 없지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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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역은 추운 바람과의 싸움이다
 
미역은 날씨가 추워야 잘 된다. 자라는 동안 더우면 심지어 죽는 경우도 있다. 2월에 뜯기 시작하는데, 대량으로 기르는 곳은 크레인으로 끌어올리고, 소량씩 기르는 곳은 사람 손을 빌어 자르고 뜯어낸다. 바다 위에서 하는 일이라, 거친 바닷바람을 맞으며 악전고투가 이어진다. 줄에 매단 미역은 자라면서 무거워지는데, 가라앉는 걸 방지하기 위해 부자라고 하는 부유물을 띄워놓았다. 마치 어린 자식들을 지켜내는 구조대 같다. 도림 스님(남양주 덕암사)은 지난 봄에 하동에서 고사리를 같이 뜯었던 인연이 있다. 스님은 같이 움직이는 일행을 위해 늘 이것저것 챙기시느라 바쁘다. 사진 찍는 최 작가가 앵글을 맞추느라 흔들리는 배에서 안색이 노래지자 걱정이 앞서신다. 뱃멀미를 할 것 같아서다.
 
얼추 자란 미역도 꽤 있다. 줄에서 미역을 조금 뜯어내본다. 스님은 커다란 미역을 보시고 함박 웃으신다. 
 
“미역이 참 좋은 찬이지요. 절집에서 미역 다들 좋아해요. 국물 내기 좋고, 부각도 하고. 살짝 튀겨서 설탕 살살 뿌려내곤 했지요. 발우에 미역 부각을 담아서 쭉 돌려내면 스님들이 원하는 만큼 집어서 공양하곤 했어요. 요새는 예전 같지는 않아요. 전에는 영양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 부러 미역 부각 같은 것으로 보충을 하느라 그랬으니까.”
 
김광선, 심명자 씨 댁 미역은 2월부터 수확에 들어간다. 올해는 늦어져서 설 이후에나 시작할 것 같다. 
 
“일찍 감은 건 설밥 묵고 바로 수확을 시작해야지예. 한 4월까지도 일을 합니다. 미역일이 예전에는 더 힘들었지예. 배도 나빴고. 동력도 없고.”
 
미역은 추운 바람과의 싸움이다. 새벽 4시에 나가서 미역을 거둬온다. 그래야 미역이 싱싱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미역을 건조장에 부리고 일일이 손질해서 짝을 맞추고 뒤집고 모양을 내는 일이 뒤따른다. 이때는 딸자식 셋이 동원(?)되기도 하고, 이모나 고모도 손을 거든다. 심지어 어린 손주들 손도 고마울 정도다.
 
| 미역 맛있게 먹는 법요?
 
미역은 줄기를 떼어내고 귀다리(미역 귀) 자르고 이파리 부분만 잘 추려서 말린다. 이렇게 한 마디를 만들면 그것을 ‘1가치’라고 하고, 그것을 스무 개 모아야 ‘한 손’이 된다. 그 한 손이 포장되어 팔리는 것이다. 대개 1킬로그램이 넘는 무게가 되고, 5만 원~6만 원 정도에 팔린다. 
 
‘심명자 명품기장미역’이라는 개인 상표로 전화 주문을 받아서 파는데, 가을 전에 ‘완판’될 만큼 인기가 좋다.
 
“이쪽 미역을 쫄쫄이 미역이라 카는데, 조류가 세서 미역이 쪼글쪼글해서 붙은 별명이라예. 미역도 광합성을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물 가까이 줄로 붙여두는 기라. 미역 맛있게 먹는 법요? 뭐 무쳐 먹고, 끼리 묵고, 냉국도 해묵고. 하하.”
 
김 씨는 어려서 멸치 배를 탔다. 군대 제대 후에는 그 험한 북양에서 트롤어선을 타며 명태를 잡았다.
 
“빙수(슬러시 상태로 언 얼음 바닷물)가 배 철판에 쩍쩍 붙는 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것 같아예. 무서운 소리라, 그기. 북양어장이 아주 힘듭니다. 나중에는 그만두고 고향에 와서 미역을 하기 시작했지예.”
 
도림 스님은 소쿠리 가득 물미역을 딴다. 그것으로 오늘 요리를 하신다. 
 
“물미역으로 찬을 많이 했어요. 조선간장, 참기름, 깨소금 넣고 밥 비벼 먹으면 기가 막혀요.”
 
아, 이건 말씀만 들어도 해먹고 싶은 맛이다. 오늘 해주실 음식을 죽성마을 정자에서 풀기 시작하신다. 두부와 미역으로 경단을 내고 채수에 조선간장 넣어 맛내고 끓이는 음식이다. 정갈하면서도 품격 있다. 좋은 향이 올라온다. 
 
김 씨 부부는 물미역은 출하하지 않는다. 부가가치 좋은 건조 미역이 주업이다. 그러자니 일기예보를 끼고 산다. 비 예보 이틀 전부터 작업을 중지한다. 미역에 비는 상극이다. 
 
맛있는 미역국 끓이는 법, 한 줄 듣고 우리는 취재를 마친다.
 
찬물에 건미역을 담가두되, 15분을 넘기지 않는다. 너무 오래 담그면 맛이 빠져나간다. 그 후 거품이 나게 잘 씻어야 정갈하고 장한 맛이 나온다. 조선간장으로 맛을 낸다.
 
맛을 내는 일. 세상사와 인간사도 맛내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맛내기란 최선을 다하는 것, 조화롭게 만드는 것, 그리하여 웃음 짓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박찬일
‘문학과지성사’가 운영하는 ‘로칸다 몽로夢路’의 헤드셰프이자 작가. 어머니 치맛자락 앞에서 콩나물과 마늘을 다듬으며 요리를 시작했다. 서울에서 몇몇 히트식당을 열었으며, 한국 식재료를 이용한 이탈리아 요리는 그가 최초이다. ‘글쓰는 요리사’로 『뜨거운 한 입』, 『백년식당』,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보통날의 파스타』 등 그만의 따뜻한 시선과 감성어린 문장이 돋보이는 책들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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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림 스님의 추운 겨울을 녹이는 맛
두부완자 미역탕
 
재료

 

생미역 200g, 두부 반 모, 감자 1개, 표고버섯 2개, 홍고추 1개, 집간장 2큰술, 참기름 1큰술, 소금 약간, 전분가루 약간, 맛국물 3컵
 
만드는 법
1. 감자는 강판에 갈고 두부와 함께 베보자기에 짠다. 
 
2. 물기를 제거한 두부와 감자에 다진 표고버섯, 참기름을 넣고, 소금으로 간해 경단을 빚어 전분가루를 입혀둔다.
 
3. 생미역은 깨끗이 씻어 3cm 정도 길이로 썰어두고 홍고추도 같은 길이로 썰어둔다.
 
4. 맛국물에 집 간장, 경단을 넣고 끓이다가 생미역, 홍고추를 넣고 한소끔 더 끓여준다.
 
 
Tip_
동의보감에는 “해채(미역)는 성질이 차고 맛이 짜며 독이 없다. 효능은 열이 나면서 답답한 것을 없애고 기氣가 뭉친 것을 치료하며 오줌을 잘 나가게 한다.”는 기록이 있다. 식이섬유와 칼륨, 칼슘, 요오드 등이 풍부해 산후조리, 변비에 탁월하고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각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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