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無常은 지혜智慧로 가는 새로운 시작
무상無常은 지혜智慧로 가는 새로운 시작
푸른 하늘에 뭉게구름이 한가로이 떠다니는 가을 오후의 산사. 괘불재를 마치고 마당에 길게 세워진 기둥을 마지막으로 철거하고 나니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본래 자리로 돌아온 듯하다.
괘불재는 마치 티베트 스님들의 모래 만다라를 보는 것 같다. 티베트 스님들은 아주 의미 있는 때에는 모래 만다라를 제작한다. 다섯 명이 아주 가는 색모래로 그림을 그리는데 7일 동안 온갖 정성을 쏟는다. 그때는 호흡이 조금만 흐트러져도 안 된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이렇게 집중하여 그리는 과정이 완벽한 삼매의 수행이다. 그런데 모래 만다라가 완성이 되면 축원을 하고는 곧바로 만다라를 지워 버린다. 잔뜩 기대하고 옆에서 지켜본다면 허망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모래 만다라가 무상無常을 표현한 것이기에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인다. 허망할 것도 없다. 완성된 만다라는 이미 바라보았던 이들의 가슴에 가득 남아 있으니까. 또한 그리는 과정이 삼매이고, 그 행위 안에 깊은 수행이 깃들여 있었기에 모래 만다라는 허상일 뿐이니까.
티베트 만다라는 평면적이지만 괘불재는 입체적인 만다라 같다. 해마다 열리는 미황사 괘불재는 사실 1년 전부터 준비한다. 다음 해에는 어느 날이 날씨가 좋을지, 사람들이 모이기 좋은 날은 언제일지 날짜를 잡을 때부터 괘불재는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주제는 무엇으로 정할지, 사람들에게는 무엇을 안겨줄지 등 꼼꼼하게 하나하나 긴 호흡으로 준비를 한다.
괘불재는 추수감사제의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1년 농사지은 수확물을 마당에 펼쳐 세운 큰 부처님 그림 앞에 공양물로 올리는데 이 행사가 괘불재의 백미이다. 호박 농사를 지은 이는 호박을, 고추 농사 지은 이는 고춧가루를, 참깨 농사 지은 이는 참기름을, 찹쌀 농사 지은 이는 찰떡을, 배 농사 지은 이는 배를, 김 농사 지은 이는 김을, 초등학생은 상장을, 대학생은 감동 깊게 읽은 책을, 연구자는 논문을 공양물로 올린다. 다양한 공양물이 올려지기에 우리는 이것을 만물공양이라 부른다. 자신이 지은 각각의 농사를 부처님께 올리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큰 감동을 준다.
많은 이들의 정성으로 올려진 만물공양물은 올린 이의 정성스런 삶 그 자체다. 내 앞에 놓인 건 공양물인데 내가 본 건 일 년 삼백육십 날을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온 마음으로 살아온 이들의 삶이 보이기 때문이다. 삶이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을까 싶은 감동이 밀려온다.
괘불재를 한 달쯤 남겨둔 경내는 각자 소임을 맡은 사람들의 손길과 발길로 분주하다. 홍보물을 제작하여 사람들에게 우편 발송 작업을 하고, 연등을 만들고, 과일을 씻고, 나물을 다듬고, 선물을 포장하고, 이부자리를 준비하고, 청소를 하고, 풀을 베는 등 손님 맞을 준비로 바쁘다. 한 점 흐트러짐 없이 제 역할을 묵묵히 하는 사람들이야말로 괘불재의 진짜 고갱이가 아닌가 싶다.
괘불재를 마치고 마당에 홀로 서서 다시 고요 속에 깃든 경내를 둘러보며 끝남은 허망함이 아니라 새롭게 태어남이 아닐까 생각한다. 오랫동안 준비하는 과정들이 삼매 수행이었고, 그 모든 것들이 아름다운 영산회상을 만들어 냈다. 2,000여 명의 사람들이 괘불재의 광경을 뿌듯하게 바라보았고, 기쁘게 참여했다. 비록 각자의 처소로 돌아갔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2,000여 명의 가슴속에 살아 있을 터이니 이것이야말로 새로 태어남이 아니겠는가 싶었던 것이다. 2,000개의 괘불재로 재탄생했다고 믿는다면 나만의 착각일까?
향을 한 개 피우면 형체는 연기로 변하고 그 연기는 모습이 흩어져 향기로 변화하여 온 방에 가득하듯이, 눈에 보이는 세계에서 눈에 보이지 않은 세계로 변화하였을 뿐 그 본질은 오히려 수천 수만으로 확대된다. 자신의 몸이 없어지는 무상無常을 받아들여야 지혜로 가는 새로운 시작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절집에서의 저녁은 회향의 시간이다. 계향戒香, 정향定香, 혜향慧香, 해탈향解脫香, 해탈지견향解脫知見香, 저녁예불을 하며 첫 번째로 외우는 게송이다. 하루 동안 열심히 수행한 공덕을 향이 제 몸을 태워 악취를 물리치고 온 방 안을 향기로 가득 채우듯이 널리 온 우주에 회향하는 마음을 내는 것이다. 계향은 올바른 몸가짐을 하여 청정의 향기를 간직한다는 의미이다. 정향은 욕심과 성냄과 고집을 내려놓으면 번뇌가 없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향기가 난다는 뜻이다. 혜향은 청정한 몸과 고요한 마음에는 맑은 물에 달이 나타나듯 모든 사물의 이치를 아는 지혜가 나타난다는 의미다. 해탈향은 지혜가 안팎으로 걸림없이 체화 되어진 깨달음의 향기를 말한다. 해탈지견향은 앞의 네 가지의 청정한 몸과 고요한 마음과 지혜로운 안목과 안팎이 하나인 자유자재한 마음으로 깨달음의 실천인 보살행을 하자는 뜻이다. 나의 삶을 가장 완성해 사는 방법은 여기에 있고 그 시작은 허망함을 받아들이는 순간이다. 그 허망함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나오지 못한다면 끝없는 중생계의 유전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래서 부처님의 변함이 없는 세 가지 가르침인 삼법인三法印 중에 제행무상諸行無常이 귀한 것이다.
나는 가을 산중에 객이 찾아오면 차를 한잔 건네며 색깔과 맛과 향기를 음미하며 천천히 마셔보라 권한다. 작설차는 맑은 비취색과 달고 부드러운 맛과 네 가지 향기(진향眞香 · 난향蘭香 · 청향淸香 · 순향純香)를 갖춘 것을 최고로 친다.
가장 좋은 시기와 날씨에 찻잎을 따서 정성스럽게 덖어 만든 진차眞茶에 맛있고 좋은 물을 가려 은근한 불로 골고루 잘 익혀 끓인 진수眞水를 중정(가장 합당한 차의 양과 물을 넣음)하여 달여 내면 그 색과 향과 맛이 정점에 다다른다. 차 한 잔 속에 참선 수행에서 얻어지는 삼매의 맛과 같은 환희로움의 경지가 담긴다는 것이다. 이것을 일러 다선일미茶禪一味라고 한다.
본래의 모습을 버려야 향香도 차茶도 비약적인 새로운 만남이 이루어지듯 매일매일 놓고 떠남을 잘해야 오늘을 살아 있는 행복으로 만들 수 있다.
차를 마실 때 순수한 색과 향과 맛을 우려내듯이 머물지 않는 성품에서 자유로움을 찾고, 번뇌와 망상이 없는 성품에서 평화로움을 찾고, 고정된 생각이 없는 곳에서 행복을 찾는다. 오늘 아침 모든 불사를 마치고, 부처님 전에 향 사르고 고요히 앉아 작설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오롯이 색, 향, 맛의 삼매에 든다. 군더더기 없는 다선일미의 경지다. 모든 이들이 참 성품의 경지의 맛을 만나기를 바란다.
금강 스님
미황사 주지. 조계종 교육아사리. 서옹 스님을 모시고 ‘참사람 결사운동’, 무차선회를 진행하였다. 홍천 무문관 프로그램을 개발하였고, 참선집중수행 ‘참사람의 향기’를 진행하며 일반인들과 학인스님들의 참선수행을 지도하고 있다.
저서로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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