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 스님의 선담禪談] 행은 자비보살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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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 스님의 선담禪談] 행은 자비보살의 길
  • 금강
  • 승인 2016.12.30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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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은 자비보살의 길

 
어느 날 책을 보다가 『화엄경』에서 보현보살이 선재 동자에게 법을 설하는 부분에서 시선이 멈추었다. 자비보살행이 없으면 완전한 부처를 이룰 수 없다는 내용이 나왔는데 반복해서 몇 번을 읽었다
.
‘공양 가운데 중생을 따라주는 공양이 최상의 법공양이다. 대비大悲의 물로 중생의 나무를 이롭게 하면 마침내 부처의 지혜 꽃과 열매를 맺게 된다. 이것은 깨달음의 열매를 맺게 하는 자비보살행이 없으면 끝내 부처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침 공양을 끝내고 나자 멀리 괴산에서 농사지으며 글을 쓰는 친구가 찾아왔다. 차 한 잔을 나누게 되었는데 아침부터 야단을 친다.
 
“절집에는 오래된 나무들이 많이 있는데 그 고목나무들이 요사이 괴로워합니다. 스님들이 숲에 깃들어 살면서도 나무를 너무 모르기 때문입니다. 나뭇가지를 자를 때는 잘라야 하는 지점을 잘 알아야 합니다. 분지점에는 식물의 자기치유물질인 켈러스Callous가 있는데 2~3년 내에 상처를 치유합니다. 가지 중간을 무턱대고 자르면 나이테가 있는 심대까지 썩어들어 가 마침내는 죽습니다. 가지 절단을 잘못하여 이렇게 죽어가는 나무들이 많습니다.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비록 나무에 불과하지만 생명에 대한 깊은 애정이 있기에 가능한 진단이다. 자비심은 바로 거기서 생겨나는 것이다.
 
비바람이 심하게 내리는 어느 날 밤이었다. 세찬 비바람에 몸서리치는 나무들의 소리에 잠이 깨어 눈을 뜨니 새벽 두 시다. 문득 숲에 깃들어 사는 새들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따스한 봄바람에 철새들이 날아와 둥지를 만들고, 사랑의 노래를 부르며 짝짓기를 하던 새들이 알을 낳아 품고 있을 때여서 걱정이 앞섰다. 애써 낳은 알이나 갓 깨어난 새끼들이 새집 밖으로 굴러떨어지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자리에 앉아 중얼거리니 함께 자던 객 스님이 나무란다.
 
“한곳에 오래 사니 숲에 새들까지 한 식구로 챙기는군요.”
 
새들을 관찰해보면 새끼들이 홀로 먹이를 구할 수 있을 때까지 어미 새는 새끼들을 날개로 감싸 안고 보호하고 먹이를 구해다 먹인다. 어미 새들은 아주 헌신적이어서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목숨마저도 기꺼이 희생하는 위대한 모성을 가지고 있다. 
 
어머니의 마음처럼 중생들을 한없이 보살피려는 마음으로 주변의 모든 것들과 함께 살아가는 친밀감이 생겨난다. 이런 친밀감을 계속해서 일으키다 보면 다른 중생들이 고통 받고 있는 것을 참을 수 없게 된다. 결국 다른 중생들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은 열망인 위대한 자비심이 아주 강해져서 그들을 고통에서 해방시키겠다는 큰 책임감을 갖게 된다. 그게 바로 모든 중생들을 고통에서 해방시키겠다는 이타적 마음 자세다.
 
달라이 라마는 “모든 중생들의 궁극적인 행복을 보증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들을 부처님의 경지로 이끄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깨달음을 얻어야 하는 것이다. 내가 깨달음에 이르고자 하는 마음은 다른 중생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다는 열망과 그 열망을 실현하기 위해서 내가 부처님의 경지에 오르고 싶다는 열망을 갖게 한다. 완전한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혜와 자비심이 필요한 요소이다. 지혜는 수행을 통해 무아와 공성空性을 체득하여 아는 것이고, 자비심은 다른 중생들이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열망하는 마음상태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이십 년 전 ‘참사람 결사운동’을 해야 한다는 서옹 스님의 말씀을 이제야 조금은 알겠다. 
 
“참선은 불교의 근본으로 사람들의 많은 문제를 해결해주는 수승한 공부방법이다. 생사가 없어지고, 자비심으로 인간 행복의 길을 찾는 데 참선만한 것이 없다. 그렇다고 참선만 하라는 것이 아니다. 자비화합으로 현대문명의 자기 파괴적인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참사람 결사이다. 이 둘을 병행하는 것이 수행자의 자세다.”
 
스님은 생명을 걸고 참선수행과 자비화합을 실현하도록 노력하라고 말씀하셨다.
 
사회학자들이 말하기를 인류에게 더 이상의 진보는 없다고 한다. 생명과 환경이 파괴되는 암울한 미래만 있다는 진단을 내어놓고 있다. 가진 것에 대한 행복보다 잃는 것에 대한 고통이 몇십 배 많아진다고 한다. 어느 시대나 욕망은 있어왔지만 과학과의 만남이 행복한 삶을 보장해주던 것에서 이제는 맹목적 의존과 지배당하는 수준으로 바뀌었다. 극대화된 대립적 욕망이 만들어 낸 핵무기의 공포는 삶의 의욕마저 상실하게 한다. 음악이나 영상이나 갖가지 과학적 도구를 이용한 즐거움도 지속적인 행복을 가져오지 못한다.
 
그에 반해 정신적 행복은 끊어짐이 없다. 현대사회는 정신적 행복에 무관심하다. 다음 세대를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정신적 행복의 에너지인 사랑과 자비를 교육하고 그것이 삶이 되게 하는 것이다.
 
매월 인연 있는 이들이 모여서 수행할 수 있는 도량이 필요한 시대다. 고뇌하는 중생들을 위해 지혜와 자비를 갖춘 스승들이 그들을 수행의 길로 이끌어야 할 시대다. 법회의 마지막은 사홍서원으로 마무리하면서도 그 뜻을 깊이 새기지는 못한다. ‘무량한 중생을 모두 제도하겠습니다. 다함 없는 모든 번뇌를 기어이 끊겠습니다. 무량한 법문 기어이 다 배우겠습니다. 위 없는 깨달음을 실천하여 도를 이루겠습니다.’ 이러한 서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수행에 대한 단단한 각오와 실천이 있어야 한다.
 
오늘 밤도 수행에 서원을 세운 수행자들은 땅끝 마을에 모여 발원한다.
 
사물을 깊이 있게 관찰하면서 마음 모아 숨 쉬고 미소 짓기를 서원합니다. / 자비와 연민을 기르고 기쁨과 평정의 수행을 하고 중생들의 고통 이해하기를 서원합니다. / 아침에 한 사람을 기쁘게 해주고 저녁에 한 사람의 슬픔을 덜어주기를 서원합니다. / 단순하고 맑은 정신으로 살면서 적은 소유로 만족하고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지키기를 서원합니다. / 가볍고 자유롭기 위하여 근심과 걱정을 놓아버리기를 서원합니다. / 부모님, 스승님, 친구들 그리고 모든 중생들에게 너무나 많은 도움을 받고 있음에 감사합니다. / 그들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전심전력으로 수행해서 지혜와 자비를 꽃피우고 중생들을 도와, 그들로 하여금 온갖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하기를 서원합니다. 
 
부처님의 깨달음에 이르고자 하는 이들은 결사적으로 보살행을 해야 한다. 대립과 갈등, 좌절과 분노로 가득한 멸망으로 가는 욕망의 경쟁을 멈추는 것은 자비심과 지혜뿐이다. 홀로 깨달음에 안주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번 호를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지난 2년간 참선을 통해 모든 사람들의 행복한 삶을 추구해온 금강 스님의 글 ‘선담禪談’을 연재할 수 있었습니다. 금강 스님께 감사드립니다.
 
 
금강 스님
미황사 주지. 조계종 교육아사리. 서옹 스님을 모시고 ‘참사람 결사운동’, 무차선회를 진행하였다. 홍천 무문관 프로그램을 개발하였고, 참선집중수행 ‘참사람의 향기’를 진행하며 일반인들과 학인스님들의 참선수행을 지도하고 있다. 저서로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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