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에서 벗어난 지 반세기도 채 안 되는 사이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성취한 자랑스러운 역사는 어쩌다가 청년들의 목을 조이는 사회, 연이은 보수 정부로 귀결되었을까? 저자는 이러한 의문을 제기하고 해방 이후의 역사를 필요에 따라 순서를 변경하거나 재조합하면서 한국 현대사의 극적인 반전과 역설의 의미를 풀어간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라는 영국 사학자 E.H. 카의 정언을 적용한다면, 이 책은 오늘의 한국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 지나온 과거와 나누는 ‘호기심 가득한 대화’이다.
청년세대가 먼저 읽고 부모 세대에게 권하는 역사서
일제 강점에서 벗어난 지 반세기도 채 안 되는 사이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성취한 자랑스러운 현대사는 어쩌다가 청년들의 목을 조이는 사회, 연이은 보수 정부로 귀결되었을까? 저자는 이러한 의문을 제기하고 해방 이후의 역사를 필요에 따라 순서를 변경하거나 재조합하면서 한국 현대사의 극적인 반전과 역설의 의미를 풀어간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은 이처럼 철저히 현재의 문제의식과 필요성에 발을 딛고 우리 사회를 형성한 현대사의 근원과 핵심을 추적한 독특한 역사서이다.
한국은 청년들에게 대단히 가혹한 나라
오늘의 한국은 청년들에게 대단히 가혹한 나라이다. 단적으로 15~29세 청년 고용률(23.9%)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국가 중 최하위권인 반면, 장년층인 55~64세 고용률(63.2%)은 상위 7위로 OECD 평균(55.1%)보다 오히려 8퍼센트포인트 이상 높다. 기성세대에게 후하고 청년들에게 박한 구조는 한국 청년 세대를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삼포세대’, 실업자와 신용불량자들로 가득한 ‘실신세대’로 만드는 주요 요인이다.
이 책의 문제의식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일제 강점에서 벗어난 지 반세기도 채 안 되는 사이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성취한 자랑스러운 역사는 어쩌다가 청년들의 목을 조이는 사회, 연이은 보수 정부로 귀결되었을까? 저자는 이러한 의문을 제기하고 해방 이후의 역사를 필요에 따라 순서를 변경하거나 재조합하면서 한국 현대사의 극적인 반전과 역설의 의미를 풀어간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라는 영국 사학자 E.H. 카의 정언을 적용한다면, 이 책은 오늘의 한국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 지나온 과거와 나누는 ‘호기심 가득한 대화’이다.
열한 가지 질문으로 오늘의 현실을 파헤친다
문제의식이 각별한 만큼 이 책은 형식도 일반 역사서와 많이 다르다. 해방정국에서 시작해 최근세사로 내려오는 시계열적 기술을 채택하지 않는다. 이 책의 시점은 오늘의 곤혹스러운 현실을 낳은 근원인 1990년대와 외환위기 전후의 상황부터 조망하기 시작하고(1부. 좌절의 시대) 이를 돌파할 지혜를 얻기 위해 분단과 산업화 민주화의 경험과 교훈을 돌아본 뒤(2부. 절망에서 희망으로) 21세기에 들어와서 펼쳐진 역사(3부. 다시 희망으로)를 자세히 들여다보며 새로운 희망의 싹을 찾는 구성이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은 이처럼 우리 사회의 큰 쟁점과 이슈를 형성한 근원적 문제를 하나씩 짚어나가는 구조이다. 열한 가지 질문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질문 / 청년세대의 고통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두 번째 질문 / 외환 위기는 한국 사회를 어떻게 바꾸었나?
세 번째 질문 / 진보개혁 세력은 왜 추락했나?
네 번째 질문 / 민족 분단은 피할 수 없었던 일인가?
다섯 번째 질문 / 한국전쟁이 남긴 교훈은 무엇인가?
여섯 번째 질문 /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주역은 누구인가?
일곱 번째 질문 / 엄혹한 그 시절 민주화는 어떻게 가능했나?
여덟 번째 질문 / 글로벌 금융위기는 신자유주의 몰락의 신호탄인가?
아홉 번째 질문 / 촛불 시위는 왜 새로운 역사의 출발점인가?
열 번째 질문 / 한국 경제의 재도약은 무엇으로 가능한가?
열한 번째 질문 / 어떻게 해야 통일을 블루오션으로 만들 수 있나?
과거와 현재, 역사서와 사회서의 경계를 넘나드는 구성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은 새로운 시도를 한 역사서이자 현재의 우리 사회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데 유용한 사회서이기도 하다. 과거와 현재, 역사서와 사회서의 경계를 넘나드는 서술은 오늘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성찰하는 데 여러모로 유용하다. 이를테면 고종21년(1884년), 개화당이 일으킨 갑신정변은 오늘의 청년 현실과 대비된다. 예비 내각을 짜고 무장 병력까지 동원하여 한 나라의 운명을 바꾸려 했던 이 거사를 사상적‧조직적으로 이끈 김옥균은 당시 나이 불과 33세였고 주요한 역할을 맡았던 박영효가 23세, 서재필은 불과 20세로 요즘으로 치면 잘해야 기업체 대리나 과장급 또는 인턴사원이나 비정규직 아르바이트를 할 나이였음을 상기시킨다.
세 번째 질문인 “진보개혁 세력은 왜 추락했나?”에서는 1980년대 정치권의 DJ, YS와 재야 및 기층운동이 단일하게 집결할 수 있었던 민주 대 독재 구도와 2000년대 이후 일반화된 좌우 대결 구도가 어떻게 다른지 살펴봄으로써 현재 침체에 빠진 진보에 대한 유의미한 성찰을 제공한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이를 좌파의 합법화, 공식화로 간주하면서 은근히 반기는 분위기마저 존재했다. 더 나아가 보수와의 비타협적 투쟁을 강조함으로써 진보의 선명성을 부각시키려는 시도까지 잇달았다. 말하자면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진영 논리의 포로가 되었던 것이다.
사회의 물적 토대인 경제에 대한 흥미로운 분석도 이 책의 강점 중 하나이다. 저자는 여섯 번째 질문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주역은 누구인가?”, 여덟 번째 질문 “글로벌 금융위기는 신자유주의 몰락의 신호탄인가?”, 열 번째 질문 “한국 경제의 재도약은 무엇으로 가능한가?” 등의 장을 경제에 할애하고 있다.
1970~80년대의 ‘추격 전략’과 최근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에 이어 아모레퍼시픽 서경배 회장이 주식 자산 2위에 오를 정도로 급성장한 화장품 회사들의 성공 요인을 비교하면서, 창조적이고 부가가치 높은 제품 및 국가 품격과 문화, 이미지 전반이 경제의 직간접적인 경쟁 요소가 된 ‘창조 경제’의 차이점이 눈에 들어온다. 독자들은 이를 통해 과거 한국 경제 성공의 요인과 현재의 경제 환경 및 재도약의 가능성을 이해할 수 있다.
20년 만에 ‘다시 쓰는’ 한국 현대사
저자 박세길은 역사 단행본 분야에 흔치 않은 베스트셀러 저자이다. 1988년부터 1992년까지 초판이 나온 전작 『다시쓰는 한국현대사 1.2.3』 은 1987년 6월항쟁 승리로 대중적 자신감이 고양되고 진보적 역사관과 현대사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진 시절에 출간되어 수십만 부가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일관된 진보적 관점으로 국내 문제와 국제 정세를 포함하여 한국 현대사를 통사적으로 정리한 책으로 호평을 받았으며 1990년대 내내 대학생 교양 필독서로 읽혔다. 그러나 20년이 흐른 지금 시대도 바뀌었고 저자의 문제의식도 달라졌다.
저자는 역사 저술가이기 이전에 재야 및 진보적 시민단체의 활동가로서 사회 진보 운동의 한복판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왔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어느 순간부터 뭔가 맞지 않는 점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하지만 21세기에 접어들며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어딘지 시대 흐름에 뒤처지고 있음을 느꼈다. 나의 콘텐츠도 더 이상 대중의 감흥을 얻지 못하고 있었다. 그동안 나를 지탱했던 신념 체계도 빠르게 허물어져 갔다. 2004년 무렵 나는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기로 결심했다.
저자의 고뇌는 에필로그에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이전 시기까지 ‘자주, 민주, 통일’이라는 과제 하나만으로 한국 사회의 모든 모순 구조가 설명되었고 개인이 무엇을 해야 할지가 분명했다면, 사회주의가 붕괴되면서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가 들어서고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진행된 21세기의 환경에서 과거에 대한 답습으로 진보 스스로 무너져가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후 저자는 10년 동안 고민과 모색을 거듭하면서 사회의 변화를 탐구해왔다.
이번 책은 그러한 작업의 결산이다. 『다시쓰는 한국현대사』 이후 20년 만에 현대사를 보는 관점을 다시 검토한 작업이며 각종 단체 상근직을 모두 그만두고 변화와 달라진 시대 과제를 반추하고 모색한 지 10년 만에 나온 역작이기도 하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은 격변기 한국 사회의 한복판을 헤쳐온 한 지식인 또는 활동가의 내면 고백이기도 하다.
저자는 본문 곳곳에서 본인이 과거 지녔던 제한적 관점이나 도그마까지도 솔직하게 고백하고 이 책을 읽을 독자들의 타산지석으로 남겼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열한 가지 질문은 민주화 물결로 격동한 1981년 대학에 입학한 이후 지금까지 30년간 한국의 대표적 진보 인사의 한 사람으로 생활해온 저자 자신의 질문이자, 이 시대 청년들과 진솔하게 나누고 싶은 대화의 주제이기도 하다. 이태백 세대인 딸을 두고 있기도 한 저자는 오늘의 한국 현실을 만든 책임은 거의 전적으로 기성세대에 있다고 분명하게 단언하면서 다음과 같은 당부를 마지막으로 청년 세대 독자들에게 남긴다.
한국 현대사는 역설과 극적인 반전으로 가득하다. 너무도 가난했기에 누구보다 빨리 부유한 나라를 이루었고 극단적인 독재 치하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민주주의를 성취한 나라가 되었다. 오늘날 청년 세대가 겪는 극심한 고통이 또다시 극적인 반전의 계기가 되어 청년들의 활력으로 발전하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그려본다.
그 과정에서 청년들에게 시대의 고통을 떠넘긴 나를 포함한 기성세대의 비겁함과 어리석음을, 용서는 하되 결코 잊지 말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