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양상국
불교가 있어 내가 있었다
얼마 전 종영한 ‘소사이어티 게임’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 가상의 마을에서 벌이는 서로 다른 두 가지 사회체제와 리더에 따른 서바이벌 게임으로 일종의 실험이 곁들여진 프로그램이었다.
당시 비민주주의 독재정권에 해당하는 집단의 첫 번째 리더로 선출된 인물은 일반적인 예상을 깨고 개그맨 양상국(35)이었다. 그는 순박하고 바보스러운 이미지와 달리 놀라운 리더십을 선보여 화제가 됐던 바 있다. 그는 요즘 BTN 라디오 울림 채널의 ‘김효선의 향기로운 만남’에 월요일마다 고정출연해 불자들에게 웃음을 전하고 있다.
| 진정한 반전의 사나이
이전까지 그의 이미지는 ‘촌스러움’이었다. 그럴 만도 했던 것이, 그의 이름을 알렸던 ‘개그콘서트’라는 프로그램에서 그가 주로 맡았던 역할이 그랬다. 서울말을 아는 척하는 친구, 촌티 나는 남자, 인민군 등등. 실제로 그는 경남 김해시 진영읍 출신이다. ‘나 시골에서 올라온 사람이야. 그게 뭐 어때서?’를 온몸으로 강변하는 듯한 인물이 양상국이었다. 그가 남긴 최고의 유행어조차 “마음만은 턱별시다~!” 아니던가.
그러던 그가 반전의 인물처럼 인식된 첫 번째 계기는 미모의 여배우와 연애를 공개하면서부터다. 당시 그의 여자친구는 세련되고 뛰어난 외모의 소유자였다. 늘 촌스러워 보였던 그와는 정 반대의 인물이었기에, 그의 연애는 인터넷 검색창을 도배할 정도로 큰 파급효과를 보였다. ‘소사이어티 게임’에서 볼 수 있었던 강한 리더쉽은 그에 대한 인상을 뒤바꾼 두 번째 반전이었다. 시청자들은 개그맨 양상국을 두고 “역시 사람은 외모만 가지고 판단하면 안 된다.”, “놀라운 반전” 등의 평가를 남겼다. 프로그램을 연출한 피디도 “양상국은 집단의 리더가 되지 않으면 좀이 쑤시는 타입이다. 타고난 리더 체질”이라고 평가했다.
그런 그가 불자라는 사실은 얼마 전부터 알려지기 시작했다. 불자 연예인들을 만나 불교와 인연을 맺게 된 이유를 들어보면, 보통은 ‘집안이 불교여서’, ‘어머니께서 신심 깊은 불자셔서’, ‘할머니를 따라서 절에 다니다 보니’ 등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런데 이 반전의 사나이가 불교와 인연을 맺게 된 사연, 잠깐 들어보자.
“집안이 불교를 믿었어요. 물론 어머니도 절에 다니셨고요. 그렇지만 자주 다니셨던 건 아니고요, 초파일 때나 한 번씩 다녀오시곤 하셨죠. 저는 어릴 때부터 절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그냥 제가 갔어요.”
- 네?
“제가 절에 찾아갔다고요.”
- 혼자요?
“네, 혼자요.”
- 그때 양상국 씨가 몇 살이었는데요?
“초등학교 5~6학년 때였을 거예요. 어머니께서 다니시던 절은 아니었는데, 그냥 들어갔어요. 어린이회에 찾아가서 그냥 다니기 시작한 거예요. 그러다 학생회를 거쳐서 청년회까지 다녔고요. 학생회에서는 학생회장까지 했어요. 아, 청년회 다닐 때는 학생회 지도교사도 했구나.”
| 학생회를 이끈 타고난 리더
얘기를 나눌수록 어안이 벙벙해진다. 초등학교 5~6학년 아이가 혼자 절에 찾아가서 어린이회를 다니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는 좀처럼 듣기 쉽지 않으니까. 나중에는 학생회 지도교사까지 했다니, 오랜만에 만나는 엘리트 코스(어린이회-학생회-청년회) 출신이다. 이 사람, 알면 알수록 반전의 사나이다.
김해시 진영읍 출신의 그가 다니던 사찰은 지역 사찰인 봉금사였다. 그 말을 듣고, 지역 사찰 학생회의 인원 통계가 떠올랐다. ‘사찰 학생회의 현실이 암울하다’는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려던 찰나, 그가 말했다. 자신이 학생회를 이끌던 당시, 그 사찰의 학생회는 역대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다고.
“많이 나올 때는 학생회 인원이 70명이 넘었어요. 서울에서도 학생회가 70명씩 모이는 경우는 흔치 않은 걸로 아는데, 우리는 그랬어요. 전국에서 유일하게 교회 학생회보다 잘 되는 사찰 학생회였으니까요. 그때는 전국 학생회 수련대회 같은 데를 가면 1천 명씩 모였거든요. 그런데, 우리 애들은 거기서도 제일 돋보였어요. 다른 지역 학생회로 원정을 다닐 정도로 유명했죠. 포항에서 학생회 행사가 열린다고 하면 우리가 가서 도와주기도 했으니까요. 그때 만들어진 회장단 모임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어요.”
비법이 무엇이었을까? 그에게 전국 사찰 학생회의 우울한 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비급 전수를 청했다.
“잘 생기고 인기 있는 남자애들을 학생회에 나오게 하면 됩니다.”
양상국 씨는 절에 다니면서 친구들을 모두 데리고 갔다고 한다. 특히 동네에서 까불던 친구들과, 잘 생기고 인기 있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주변 여자아이들이 덩달아 절에 나오기 시작했다. 인기 있는 친구들이 모여 참 재밌게 놀았다. 학생회 인원이 불어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 친구들이 오죽이나 잘 놀고 잘 생겼으면, 다른 지역의 학생회 친구들도 늘 이들과 놀고 싶어 했었다. 그때부터 타고난 리더였다. TV 프로그램에서 볼 수 있었던 그의 리더십은 사실 사찰 학생회에서 길러진 것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어린 시절의 추억 대부분을 사찰 학생회에서 만든 그였기에, 양상국 씨에게 최근의 포교 현실은 자못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는 불자 연예인임에도, 불교계에서는 그를 불러주지 않았다. 얼마든지 청소년 포교를 위해 뛰겠다는 다짐은 있었지만 현실은 그의 생각 같지 않았다.
| “불자 연예인들을 찾아주세요.”
“오죽하면 제가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서 전국 학생회 수련대회 일정을 찾았어요. 그리고 말도 없이 찾아갔죠. 다들 깜짝 놀라더라고요. 저는 저대로 깜짝 놀랐는데, 제가 한창 활동하던 때의 1/3밖에 안 되는 인원이 앉아 있는 거예요. 어찌나 가슴이 아프던지요.”
사찰 학생회는 불교의 미래다. 청소년 포교가 무너지면 불교의 미래도 흔들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문제는 포교의 현실이 사찰 학생회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양상국 씨는 불자 연예인들을 대하는 포교 현실에 긴 한숨을 쉬었다.
“불자 연예인들이 ‘나는 불자입니다.’라고 떳떳하게 밝히고 활동할 수 있는 토양이 전혀 없어요. 도리어 불자임을 밝히는 게 과연 맞는 것인가 돌아보게 되는 현실이죠. 인기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불러주지를 않아요. 교회에서는 연예인이 간증만 하러 다녀도 한 달에 몇 천만 원씩 번다는 얘기도 수월찮게 듣거든요. 흔들릴 수밖에 없어요. 아쉽죠. 불자 연예인들을 불러주면 그들은 자부심도 생기고 작더라도 거기서 생기는 수익이 있으니까 더 많이 활동하려고 할 텐데요. 큰 걸 바라는 게 아니에요. 연예인들이 불교계에서도 활동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그는 누구보다도 절집을 잘 아는 연예인이다. 실제로 그는 몇몇 불자 개그맨들을 모아 연예인 법회를 이끌어 보려고도 했었다. 서로의 스케줄을 맞추기 어려운 연예인들의 특성상 오래가지는 못했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었다.
“한때는 스님이 될까 고민도 했었어요. 제가 노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안 되겠구나 싶어 금방의 포기했죠.(웃음) 그렇지만 불교가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게 됐다는 생각은 늘 합니다. 불교를 만나지 않았다면 제가 지금 이렇게 이런 자리에 올 수 있었을까 싶은 생각도 들어요. 지금은 예전처럼 철야정진을 하진 못하지만, 마음으로 기도는 자주 합니다. 바라는 점이 있다면, 당당한 불자이고 싶어요. 저를 포함해서 다른 불자 연예인들도 그렇게 활동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시종일관 그는 진지한 눈빛과 말투를 보였다. 간절한 그의 바람들이 이루어지게 되는 날은 아직인 걸까. 이런 불자 연예인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싶은,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월간 불광 -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불광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