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인天人은 하늘에 사는 이를 뜻하는 불교적 표현이다. 경전에서도 그 정체가 명확하게 드러나진 않지만, 역할로 보자면 불교 대하드라마 속 보조 연기자에 비견할 수 있다. 부처가 등장하면 하늘에서 우르르 내려와 꽃을 뿌리고 공양을 바치고 음악을 연주하곤 금세 사라져버리는 존재. 불교적 도상과 경전에서도 천인은 대부분 배경으로 소모되고 있지만, 좋은 연출자와 연이 닿으면 간혹 주연급으로 올라서기도 한다. 에밀레종에 새겨진 비천飛天은 모든 범종의 ‘시그니처’가 되었고, 『유마경』에 등장하는 천녀天女는 석가의 상수제자인 사리불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주는 스승 역할을 맡았다. 범어사에 벽화로 그려진 천인들은 이 둘만큼 유명하지 않지만 나름 탄탄한 입지를 지니고 있다. 보통 법당에서 이런저런 도상과 함께 그려지기 마련인 천인들이 오직 자신들만 출연하는 전용무대를 마련한 것이다. 이들이 출연하고 있는 극장의 이름은 ‘팔상·독성·나한전’이다.
팔상·독성·나한전은 절집에 오래 다닌 이들에게도 생소한 이름이다. 보통 팔상전과 독성전 그리고 나한전은 별도의 전각으로 건립되는 것이 상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범어사의 팔상전과 독성전, 나한전은 한 건축물 안에 모두 자리 잡고 있다. 팔상·독성·나한전이 삼성각처럼 칠성과 산신, 독성을 한 공간에 모신 것과 비슷할 거라 짐작할 수도 있겠지만 엄연히 다른 방식이다. 팔상·독성·나한전이 하나의 건축물 속에 있다 할지라도 전각마다 벽을 세우고 문을 따로 두어 각자 독립적 법당의 구조를 갖추었고, 편액들도 출입문마다 따로 달려 있다. 굳이 비유하자면 세 가구가 살고 있는 공동주택에 가까운 모양이다. 그런데 독성전과 나한전을 한데 묶은 것은 독성, 즉 나반 존자를 아라한이라고 이해했기 때문이라고 해도 부처의 일생을 여덟 장면으로 나누어 기록한 그림이 걸린 팔상전이 여기에 함께 들어가 있는 것은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범어사의 팔상·독성·나한전이 이처럼 독특한 조합을 갖추게 된 연유가 있다. 일본 학자 세키노 타다시(関野貞)가 1902년 범어사를 조사하고 남긴 평면도를 보면, 지금 전각이 있던 자리에 팔상전과 나한전이 각각 3칸짜리 독립적 건축물로 나란히 자리 잡고 있었고 두 전각 사이에는 한 칸 규모의 천태문天台門이 서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범어사 측은 1905년에 중수를 하면서 두 건축물 사이 천태문이 있던 공간에 독성전을 새로 증축해서 전체를 하나의 건축물로 이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팔상전과 나한전은 세 칸씩 동일한 크기지만, 중앙의 독성전은 한 칸 규모로 양측 전각에 비해 협소하다. 흥미로운 것은 세 전각을 나누는 벽이 천장까지 완전히 막힌 구조가 아니라서 옆 전각의 기도 소리나 말소리가 들보 위 뚫린 공간으로 넘나든다. 더 중요한 것은 들보 너머로 옆 전각의 천장벽화가 훤히 보인다는 점이다. 이것이 벽화를 이해하는 데 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인지는 뒤에서 이야기하려 한다.
천인도는 팔상·독성·나한전의 불단 쪽과 어간문 양편으로 일렬로 늘어선 빗반자(지붕처럼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천장 양식)에 그려져 있다. 빗반자는 양쪽으로 각각 21판씩 배치되어 있는데 각 판마다 천인이 한 명씩 그려져 있으니 전체로 보면 모두 42명이 등장한다. 중앙 독성전에 그려진 천인은 모두 공양물을 들고 있는 모습인 반면, 팔상전과 나한전의 경우 악기를 든 모습과 춤을 추는 천인들이 섞여 있다.
천인들은 연잎, 상모, 모란화관 등을 쓰고 있지만 대부분 앳된 아이의 얼굴을 하고 있다. 다른 사찰의 벽화가 주로 성숙한 여성의 모습으로 천인을 표현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특히 독성전의 공양을 올리는 6명의 천인은 모두 아이들인데, 이는 독성전 양 벽의 백자도百子圖와 연관을 지닌다. 백자도는 아이를 많이 낳고 건강하길 바라는 축원의 의미로 주로 민간에서 많이 그려서 지녔던 길상화吉祥畵다. 독성전의 백자도는 쌍상투를 튼 귀여운 아이들이 제기차기, 책 읽기, 말타기, 술래잡기를 하면서 노는 모습을 담고 있다. 사찰에 거의 그려지지 않는 백자도가 독성전에 있는 이유는 오래전부터 범어사 독성전은 아이를 가지고 싶은 이들에게 영험하기로 소문난 기도처였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을 알아야 팔상·독성·나한전 천장의 천인도 대부분이 왜 아이들의 모습을 하고 있는지, 독성전 입구의 아치형태의 나무문 양 쪽으로 공양물을 머리에 인 형태의 남녀 아이의 조각상이 왜 새겨져 있는지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천인도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독성전에 그려진 6명의 천인들은 각기 다른 자세로 수박이나 석류 같은 과일이나 연꽃 등을 공양하는 모습이고, 팔상전과 나한전의 악기를 든 12명의 천인들은 나각, 소고, 북, 장구, 징, 피리, 해금 등 악기를 연주하고 있으며, 춤을 추는 24명의 천인들 또한 한쪽 다리를 접거나 뻗어 역동적인 자세를 갖추고 있다. 42점의 천인도 벽화 가운데 동일한 구도로 그려진 그림이 하나도 없다는 점만 보아도 화사가 벽화에 얼마나 공을 들였을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화사의 예술적 노고에서 피어난 다채로운 인물들은 별도의 설명을 붙일 필요가 없을 만큼 누구나 공감할 만한 직관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그러나 벽화는 장식적 의미에 머무르지 않고, 불교적 가르침으로 우리를 이끈다. 개별적 존재들을 희생시키지 않으면서도 전체로 통합하는 데 걸림이 없는 화엄철학이 팔상·독성·나한전의 건축양식과 벽화의 앙상블 속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체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벽화의 42명 천인들은 얼굴 모양이나 몸의 자세, 찬탄의 방법이 하나도 겹치지 않는다. 그 말은 곧 각각의 그림이 고유한 개별성을 띠고 있다는 뜻이다. 한편으로는 42점의 천인도는 부처님을 찬탄하고 칭송하는 모습 속에서 하나의 법당 장엄물로서 어우러진다. 그렇지만 각각의 천인도가 전체 장엄물의 부속품으로 전락하는 것도 아니고, 전체와 아무런 관련성도 맺지 못하는 고립된 그림으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이런 상호관계 속에서 한 점의 천인도는 전체 42점의 천인도를 모두 포함하는 그림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예능프로그램에서 노래의 첫 음만 듣고 노래 제목을 알아맞히는 퀴즈가 나오곤 하는데 사람들이 정답을 맞힐 수 있는 것은 그 첫 음이 노래 전체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첫 음만 있다고 노래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듯, 전체를 포섭한 하나의 그림이 나머지 그림들의 개별성을 사라지게 하진 않는다. 이처럼 개별과 개별존재의 차이를 존중하면서도, 서로 걸림이 없이 하나로 포섭할 수 있는 경계를 화엄에서는 ‘사사무애事事無碍’ 혹은 ‘일즉일체다즉일一卽一切多卽一’의 원융한 경계라고 부른다. 화엄의 원융이 가능한 이유는 모든 존재가 실체가 아닌 텅 비어 있음(空)을 본성으로 지니기 때문이다.
팔상·독성·나한전의 벽화가 화엄의 철학을 생생하게 구현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바탕이 되는 건축물의 독특한 구조에서 비롯한다. 전각들이 팔상전, 나한전, 독성전의 개별적 공간으로 명확히 분할되어 있으면서도 결국 팔상·독성·나한전이란 하나의 총체적 건축물로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자체가 이미 화엄철학이다. 그러나 하나의 지붕을 함께 이고 있는 구조일지라도 각 전각 사이의 벽이 완벽하게 막혀 버렸다면 벽화가 팔상전에서 나한전까지 끊임없이 이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빗반자에 연속적으로 그려놓은 천인들이 경계를 걸림 없이 넘나들 수 있었던 것은 결국 들보 위의 텅 빈 공간 덕분이다. 즉 비어 있음으로부터 꽃으로 장엄한 화엄의 세계가 열리는 것이다.
벽화를 보기 위해 범어사를 찾았을 때는 대통령선거 열풍이 뜨거웠던 4월 말이었고,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이미 새로운 정부가 탄생했다. 새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통합’이란 말을 국민들에게 전했다. 통합은 다수가 소수를 흡수하거나 억눌러서 획일화하는 과정이어선 안 된다. 통합은 존재들 개개의 가치와 목소리를 살리면서도 자연스럽게 하나로 묶어내는 데 걸림이 없는 화엄의 원융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대통령 스스로가 텅 비어 있어야 한다. 꽃은 늘 텅 빈 공간에서 피어난다.
강호진
한양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에서 불교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중학생 때 어머니를 따라 해인사 백련암에 올라가 삼천 배를 하고 성철 스님에게 일각 一角이란 불명을 받았다. ‘오직 일체중생을 위해서 살라’는 성철 스님의 가르침에 깊은 감명을 받았지만 지금껏 별달리 일체중생을 위해 살아본 적이 없다. 좋은 스승을 만나고도 그 가르침대로 살지 못한 마음의 빚을 조금이나마 갚는다는 심정으로 『10대와 통하는 불교』,『10대와 통하는 사찰벽화이야기』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