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과 함께 한 식물 그리고 동물] 잠부나무와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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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과 함께 한 식물 그리고 동물] 잠부나무와 소
  • 심재관
  • 승인 2017.09.05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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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부나무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농부와 소는 땅을 갈아엎기 위해서 온 힘을 쏟고 있었던 모양이다. 농부는 땀으로 온몸이 젖어있었고 멍에를 얹은 소의 등은 오랜 노동으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이들이 지나가면서 깊게 골을 낸 땅 위로 벌레들이 드러나자 이를 기다렸던 새들은 재빨리 땅으로 내려와 벌레들을 사정없이 쪼아 먹었다. 

사진 : 심재관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이나 『보요경普曜經』 등에서 묘사한 스승의 첫 선정은 변함없이 잠부나무 밑에서 이루어졌다.

그런데 왜 잠부나무일까. 잠부나무(Syzygium Cumini)는 옛날부터 인도 전역에 매우 흔한 나무였다. 여름이면 큰 대추 크기만 한 열매가 검붉게 익는데 지금은 흔히 ‘자문jamun’이라고 부른다. 시고 단 맛이 도는 이 열매로 술이나 식초를 만들기도 하고 당뇨나 성기능을 치료하는 약으로도 쓰였다. 가지가 축축 늘어져 그늘을 이루는 것은 어느 나무와 마찬가지다.

하지만, 태자의 첫 선정에 관한 이 유명한 장면은 그의 일생을 조금이라도 그리고자 했던 경전이라면 거의 빠지지 않는 장면이며, 이 대목에서 예외 없이 잠부나무가 등장한다. 뿐만 아니라 여러 조각들에서도 태자의 명상이 있었던 그 잠부나무를 잊지 않고 새겨놓고 있다. 그런데 태자의 첫 선정은 왜 잠부나무에서 이루어져야 했던 것인가. 

정반왕淨飯王의 손에 이끌려 봄날의 파종제播種祭를 참관하러 나온 싯다르타 태자는 노동과 삶의 비정함을 여기서 처음 목격한다. 적지 않은 흥분과 비애가 뒤섞인 그의 마음속은 격한 감정으로 소용돌이 쳤으며, 이 무참하고 냉혹한 삶의 현장을 조금 더 지켜보고 싶어졌다. 시종들을 물리고 그는 혼자 잠부나무 밑에 고요히 앉았다. 곧 온갖 생명들의 삶 속에 고통이 깊숙이 내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가슴 깊숙한 곳에서 연민과 사랑이 솟구쳐 올랐다. 그 속에서 그는 처음 초선初禪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그의 선정禪靜의 힘으로 말미암아 잠부나무의 그림자도 멈추어 섰으며, 때마침 하늘을 날아가던 현자들도 감히 그 나무 위를 지나갈 수 없었다. 

이 대목에 등장하는 잠부나무는 명백히 의도된 상징이다. 이것은 그 나무의 이름 ‘잠부jambu’ 또는 ‘염부閻浮’가 가리키는 것처럼, 세계 그 자체를 의미한다. 이 세계를 보통 염부제閻浮提라 부른다. 불교인들에게 염부제는 흔히 이 세속의 인간이 살아가는 지리적 공간을 가리킨다. 좀 더 좁은 의미로는 인도 대륙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했다. 염부제는 잠부드비파jambudvīpa를 음사한 말로 ‘잠부나무가 있는 섬’이라는 뜻을 갖는다. 수미산의 남쪽에 있기 때문에 이것을 남염부주南閻浮州라고도 부른다. 이 땅을 섬이라고 불렀던 것은 고대 인도인들이 세계를 바다 위에 떠 있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인데, 수미산의 동서남북으로 네 개의 대륙이 섬과 같이 전후좌우로 위치해 있는 것이다. 고대 인도의 서사시 『마하바라타』는 이 ‘잠부나무가 있는 섬’을 불교에서 보는 것과 거의 동일한 형태로 기록하고 있다. 수미산을 중심으로 염부주는 남쪽에 있으며 염부제 중심에는 하늘 끝까지 치솟은 거대한 잠부나무가 있는데, 그 열매가 떨어질 때면 그 진동으로 온 대지가 진동한다. 그 열매의 즙들은 마치 강처럼 흘러 네 대륙의 경계를 이루게 된다. 이 상상의 나무는 염부제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나무였다. 

하지만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불교에서 염부제는 인간이 살아가는 불완전하고 불편한 세계이며, 누군가 등장하여 제도해야 할 그런 땅이다. 오욕칠정의 중생들이 인과법에 따라 사는 곳이다. 이런 점에서 보통의 인간이 사는 이 염부제는 수미산 저 너머 북쪽에 있는 우타라쿠루uttarakuru라는 대륙과 정반대의 땅이다. 우타라쿠루는 인간이 살고 있는 땅이지만, 극락과 같은 행복이 있는 땅이며 생로병사를 거의 느끼지 못하는 지복의 땅이다. 그 땅의 사람들은 수천 년 또는 수만 년을 살며, 똑같은 사회적 지위와 물질적인 풍요를 향유하고 있었다. 고대 인도에서 묘사하고 있는 파라다이스 또는 샹그릴라Shangri-La는 사실 그곳을 가리킨다. 그러나 놀랍게도 붓다는 그러한 땅에 탄생하지 않는다. 과거에 등장했고, 또 미래에 등장할 수많은 붓다는 반드시 이 염부제에 출현하고 이곳에서 출가의 동기나 인연을 맺는다는 점이다. 여기에 매우 의미심장한 불교적 의미가 있다.     

파종제에 등장한 싯다르타 태자와 잠부나무 아래에서의 선정은 이러한 사실을 한꺼번에 암시하고 있다. 땅을 가는 농부와 황소, 땅 속의 벌레와 허공의 새와 같이 고통 속에서 생존하는 생명들을 태자는 연민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태자의 첫 선정은 이 염부제에서 이들의 제도를 위해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며, 붓다로 예정된 운명을 잠부나무는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그가 출가하여 6년 고행 뒤에 이 파종제에서 느꼈던 첫 선정의 감회를 떠올린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어린 태자의 머리 위에 드리워진 잠부나무는 희로애락이 교차하는 이 세속 세계를 말하며, 그 아래에서 성취한 첫 선정은 그 세계의 제도를 위해 예정되었던 붓다로서의 운명을 표상한 것이다. 

사진 : 심재관

싯다르타 태자의 조각상들을 보면 조각의 기단부 쪽에 밭을 갈고 있는 소의 모습이 함께 새겨진 경우를 볼 수 있다. 앞에서 소개한 파종제에 나갔던 싯다르타 태자의 선정을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 소는 매우 마르고 노쇠한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런데, 이 소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한국의 소와는 다른 종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데, 등 위로 크게 솟아오른 혹 때문이다. 이 소를 흔히 지부Zebu라 하는데 한역경전에서 봉우犎牛라고 부르던 소였다. 이 소는 동아시아에는 흔히 않지만 인도를 비롯한 남아시아에는 매우 흔히 볼 수 있는 소다.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대부분의 소들은 그런 특징을 갖고 있다. 인도의 들소나 물소와는 다른 종으로, 보통 목 아래 등 부위가 마치 낙타의 혹같이 불끈 솟아난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초기 힌두교나 불교가 등장할 당시만 해도 소를 먹는 습관은 꽤 일상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초기 불경 속에는 소를 잡는 도살자가 꽤 빈번히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소와 말 등을 제물로 바치려는 사람들이 부처님의 설득에 의해 포기한 사례가 여럿 등장한다. 부처님 당시는 소고기가 아직 터부시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소들은 고대 인도의 경제생활에 매우 유용한 동물이었다. 밭을 갈고 수레를 끄는 일뿐만 아니라 고기와 우유를 제공해주었다. 인도는 현재까지도 유제품이 가장 잘 발달한 나라 가운데 하나다. 이들의 똥은 바짝 말려서 연료로 사용하기도 하며, 때로는 물에 풀어서 건축물 내벽의 미장美粧에 쓰거나 종교행사에 사용하는 제단祭壇의 마감에도 사용한다. 심지어 소의 오줌은 민간 약재로 쓰기도 한다.

이러한 소의 엄청난 유용성 때문에 고대 인도사회에서 소는 곧 부富의 단위이기도 했다. 인도를 포함해 남아시아의 몇몇 나라는 아직도 소를 신성시한다. 소의 신성함은 종교적인 원인도 있지만 사실 이러한 고대사회에서 소가 차지하는 경제적 가치와 뒤섞이며 더 강력한 사회적 관념으로 제시된 것이다. 

아마도 스승은 소를 끔찍이 사랑하였을 것이다. 경전 속에는 특별히 소에 대한 당부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소는 육신이 다할 때까지 인간에게 노동과 우유를 제공하므로 늙어 죽은 이후라도 고기로 사용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또한 자신들의 부모나 친족처럼 생각하고 소를 돌볼 것을 당부하기도 한다. 이러한 배려는 인과 윤회의 세계 속에서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아바다나Avadāna 문헌에 다음과 같이 에피소드가 소개된다. 

언젠가 스승께서 바이샬리에 계실 때였다. 리차비 족들은 일용할 고기가 필요했고, 이들을 위해 도살자는 소를 도축하기 위해 성 밖으로 끌고 나가고 있었다. 죽음의 공포를 느낀 황소는 자신의 목숨을 누군가가 구해주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바로 그 아침, 스승은 탁발을 위하여 성을 들어가고 있었다. 황소는 스승에게 다가가 자신의 목숨을 구해달라고 간절히 애원했다. 스승은 황소를 뒤쫓아 온 도살자에게 황소의 목숨을 구걸했으나, 도살자도 역시 리차비 시민들의 의뢰를 받은 것이라 스승의 청을 들어줄 수 없었다. 대신 값을 치르면 소의 생명을 살려주겠노라고 약속한다. 스승은 하늘에 있는 제석천이 3천 냥을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생각이 끝남과 동시에 스승 앞에 제석천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석천의 돈으로 스승은 황소의 목숨을 구한다. 이야기는 다시 황소의 전생과 미래로 이어진다. 이 황소는 과거에 사람이었으나 자신의 편의를 위해 승려를 죽인 대가로 축생으로 살아가고 있던 것인데, 부처님을 만나 목숨을 건진 것이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무고한 살생을 저지름으로써 다시 스스로 살해되는 처지의 축생으로 태어난 것이다. 

이 이야기는 아직 소고기가 터부시되지 않은 시대의 이야기다. 하지만, 소고기가 소의 목숨과 하등의 관계가 없는 듯 유통되는 오늘날을 위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소고기를 탐닉하는 우리가 언젠가 저 성 밖으로 끌려가는 소의 무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진 : 심재관

심재관
동국대학교에서 고대 인도의 의례와 신화에 대한 연구로 석·박사를 마쳤으며, 산스크리트어와 고대 인도의 뿌라나 문헌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필사본과 금석문 연구를 포함해 인도 건축과 미술에도 관심을 확장하고 있으며, 2006년부터 오스트리아, 파키스탄의 대학과 국제 필사본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인도 뿌네의 반다르카 동양학연구소 회원이기도 하다. 저서 및 역서로는 『탈식민시대 우리의 불교학』, 『세계의 창조 신화』, 『세계의 영웅 신화』, 『힌두 사원』, 『인도 사본학 개론』 등이 있다. 금강대학교 HK 연구교수, 상지대학교 연구교수로 재직했으며, 동국대학교와 상지대학교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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