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벽화이야기] 여수 흥국사 선재동자순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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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벽화이야기] 여수 흥국사 선재동자순례도
  • 강호진
  • 승인 2018.11.23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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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 「입법계품」의 진의를 담아낸 선재동자순례도
사진 : 최배문

예전에는 갓 불문佛門에 든 수행자에게 허락되지 않는 금서가 있었다. 호기심에 슬쩍 들춰보기만 해도 ‘네까짓 게 어디 감히’라고 스승에게 혼쭐이 나던 책의 이름은 『화엄경』이다. 얼마나 대단한 경이기에 이리도 호들갑인지 의아하겠지만, 지금도 『화엄경』은 사찰승가대학의 최고학년인 대교반大敎班에 올라가야지 배울 수 있는 과목이다. 학인들끼리는 대교반을 화엄반이라 부른다. 『화엄경』을 배운다는 자부심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화엄경』을 읽다가 눈이 번쩍 뜨여 경을 머리에 인 채 눈물을 뚝뚝 흘렸다는 보조 지눌의 근기를 지닌 것은 아니다. 도리어 대부분은 『화엄경』을 배우면서 반감이 싹트기 시작한다. 경전의 가르침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강원講院을 졸업한 후에는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승려도 많고, 판타지 소설로 일축하는 불교학자도 적지 않게 만났다. 여기서 그치면 그나마 다행이다. 『화엄경』을 자신의 깜냥으로 잘못 이해한 경우는 다스릴 약도 없다. 최근에 읽은 한 논문에는 이런 내용이 등장한다.

“승열바라문은 험준한 검산劍山의 단애절벽에서 고행을 하고 있었는데, 선재동자가 보살행에 대해 묻자, ‘이 험준한 산에 올라 활활 타오르는 불 속에 몸을 던지면 너의 보살행이 이루어질 것이다’라는 답을 한다. 하지만 선재동자는 그와 같은 문답을 의심하고 그렇게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임을 깨닫고 다시금 구도의 길을 떠난다. (중략) 결국, 승열바라문의 잘못된 가르침, 만족 왕의 광폭함, 바수밀다의 애욕을 통해 선재동자는 다시금 자신을 자각하고, 올바른 보살행을 구하고자 여정을 떠나게 된다.”
 
그러나 『화엄경』에선 선재가 승열바라문을 만나는 장면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승열바라문을 의심하던 선재동자는 여러 신중神衆의 법문을 듣고 바라문이 진실한 선지식임을 깨달아서 엎드려 절하며 말했다. “제가 거룩하신 선지식을 알아보지 보지 못하고 착하지 못한 마음을 내었나이다. 거룩하신 이여, 부디 저의 참회를 받아주소서.” (중략) 선재동자는 즉시 칼산에 올라 불구덩이에 몸을 던졌다. 떨어지는 와중에 보살의 선주善住삼매를 얻었고, 몸이 불꽃에 닿으면서 해탈의 즐거움인 신통삼매를 얻었다.”
 
논문에서 승열바라문과 함께 잘못된 가르침을 전하는 예로 든 무염족왕無厭足王과 바수밀다 역시 경전에서는 진실한 선지식善知識으로 그려진다. 일반상식으로는 절벽에서 뛰어내리고, 사람의 사지를 베어서 죽이고, 몸을 파는 행위가 보살의 수행이라 여기긴 쉽지 않을 것이다. 왜 옛 스승들이 근기가 되지 않는 이에겐 『화엄경』을 함부로 펼치지 말라고 경고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화엄경』은 초심자의 그릇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내용일 뿐만 아니라, 그릇 자체를 파괴할 위험도 다분하다. 그런데 인간이 묘한 게 금기가 강할수록 그에 대한 욕망도 불타오르기 마련이다. 인지과학자 조지 레이코프가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소개하는 ‘프레임 이론’도 이와 다르지 않다. 옛 스승들의 금기엔 이처럼 『화엄경』에 대한 열망을 촉발시키려는 의도적인 측면도 있지 않았나 싶다. 

무모하게도 우리는 『화엄경』 속 선재동자를 만나러 여수 흥국사로 갈 것이다. 행여 기존에 쌓아온 알음알이의 혈穴 자리가 막힐까 두렵다면 이쯤에서 몇 페이지를 건너뛰어 주시길 부탁드린다. 어쩌면 그것이 현명한 선택일지도 모르겠다. 

사진 : 최배문
사진 : 최배문

 

다시 만나서 반갑다. 조지 레이코프가 옳았다. 당신은 페이지를 넘기지 않았고 이 문장을 읽고 있으니 암묵적 계약이 이루어진 것으로 알고 이야기를 진행하겠다. 여수 흥국사 벽화 이야기에 앞서 양해를 구하고자 한다. 숙종 때 일본에 두 차례 건너가서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땅임을 서계書契로 확약 받은 안용복과 그의 두 번째 도일渡日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알려진 흥국사의 승려 뇌헌雷軒의 이야기는 하지 않을 것이다. 기록상 ‘순천 흥왕사興旺寺 승려’라고 되어있는 ‘뇌헌雷憲’이 여수 흥국사 대웅전 벽화의 시주자로 기록된 승려 뇌헌雷軒과 동일인물이란 일각의 주장은 흥미롭고 심지어 타당하게 보이기까지 하지만 우리가 가야할 길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아, 이러면 결국 안용복과 승려 뇌헌의 이야기를 얼추 해버린 셈인가?

하여튼 흥국사 대웅전 후불벽 뒷면에는 2015년 보물로 지정된 관음보살 벽화가 있다. 관음보살은 흰 옷을 걸치고 거친 바다 위에 솟아난 연화보좌에 앉아있는데 좌측에는 관음의 지물持物인 정병과 버드나무, 파랑새가 그려져 있다. 그림의 왼편 아래에는 선재동자가 고개를 완전히 젖힌 채 관음보살을 하늘처럼 우러르며 가르침을 구하는 모습이다. 벽화 속 관음은 후불탱에 등장하는 불보살의 원만한 상호相好나 눈매의 기법이 유사한 것으로 보아 탱화를 그린 천신天信과 의천義天이란 금어金魚가 1693년에 함께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드물게도 벽화는 해남 미황사의 천불도나 창녕 관룡사 대웅전 기둥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인물도처럼 종이에 그림을 그려서 붙이는 첩부貼付 벽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벽화 하단 여기저기에 종이가 찢겨나간 부분이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나는 이 벽화를 관음보살도라고 부르는 일반적 방식을 벗어나 선재동자순례도善財童子巡禮圖라고 이름붙일 것이다. 이런 명칭이 생경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그림의 배경이 되는 『화엄경』 「입법계품」을 놓고 보자면 그림 속 관음보살은 선재가 만나는 53명의 선지식 가운데 한 명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그동안 선재가 등장하는 수많은 관음보살도를 보면서도 정작 「입법계품」의 주인공인 선재의 순례를 중심에 두고 그림을 이해한 적이 드물기에 발상의 전환을 해보자는 것이다.  

사진 : 최배문

선재善財라는 이름은 요즘 말로 하면 ‘대박이’ 혹은 ‘복덩이’ 정도가 될 것이다. 선재는 직역하면 큰 재물이란 뜻으로 어머니가 선재를 태중에 가지고 있을 때부터 돈과 보석이 저절로 집안에 쌓이며 대박이 났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선재는 문수보살이 자신의 동네인 복성福城 동쪽 사라娑羅나무 숲에 와서 법문을 할 때 문수보살을 만난다. 법문을 듣고 감동한 선재는 깨달음을 향한 큰마음을 내고, 이를 위한 보살의 행을 어떻게 실천하는지 문수에게 묻는다. 문수는 덕운비구란 선지식을 소개해주고, 덕운비구는 해운비구를 소개하는 방식으로 53명에 이르는 순례의 여정이 이어진다. 선재가 만나는 선지식이 보살이나 승려만은 아니다. 장자, 거사, 우바이 같은 재가자뿐만 아니라 뱃사공과 아이, 심지어는 불교와 적대적인 타 종교인까지 망라한다. 이것이 『화엄경』이 지닌 묘미인데 불교의 가르침은 오직 경전이나 절에서 배울 수 있다고 믿는 순진한 불자에겐 충격일 것이다. 선재가 순례의 마지막에 만나는 선지식은 보현보살이다. 이때 선재는 모든 것이 평등함을 이루는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한다. 소위 부처가 되어 진리의 세계인 법계에 들어가는(入法界) 것이다. 53명의 선지식은 보살도菩薩道의 순차적인 수행계위와 일치한다. 수행의 단계가 오를수록 그 경지가 높아지는 것이다. 이것이 다인가? 만약 여기서 이해를 멈추면 『화엄경』은 여느 경전과 다른 게 없다. 

벽화를 다시 보자. 선재는 관음보살의 연화좌대에서 뻗어 나온 또 다른 연꽃 위에 서있고, 관음의 머리 뒤에 그려진 광배光背와 똑같은 녹색 두광도 가지고 있다. 그림으로 보면 선재는 관음과 한 몸이자 같은 성인聖人이다. 여기서 우리는 깨닫지 못한 선재가 관음보살에게 깨달음을 구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 아님을 눈치채야 한다. 이러한 사실은 위에서 인용한 『화엄경』의 구절에도 암시되어 있었다. “절벽에서 떨어지는 와중에 보살의 선주삼매를 얻었고, 몸이 불꽃에 닿으면서 해탈의 즐거움인 신통삼매를 얻었다.” 선재는 이미 해탈의 즐거움을 얻은 것이다. 그렇다면 열 번째 선지식인 승열바라문을 만났을 때 얻은 것인가? 선재는 처음 문수를 만나 마음을 낸 그 순간부터 깨달음의 세계에 들어갔으며(入法界) 나머지는 끝없는 법계를 장엄하며 펼쳐는 보살행이자 부처의 순례였을 따름이다. 이러한 경계를 의상은 「법성게」에서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 즉 처음 깨달음을 얻겠다고 믿음을 낸 그 순간에 깨달음을 이룬다고 노래했다. 아마 이렇게 묻는 이도 있을 것이다. ‘나도 발심發心했는데 왜 부처가 되지 않는 거요?’ 『화엄경』에 의거해서 답하자면 깨달음에 이를 만큼 자신이 부처라는 확고한 믿음을 내지 않았기 때문이고, 그 믿음에 따라 보살행을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국을 돌며 빼어난 관음벽화들을 많이 보아왔지만 대개 그림 속 선재는 관음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가르침을 구하는 아이로 묘사되어 있었다. 그래서 관음도는 관음도일뿐 『화엄경』 「입법계품」의 진의를 담아낸 선재동자순례도라 부를만한 것이 없었다. 비로소 흥국사에 이르러 관음과 선재가 둘이 아닌 선재동자순례도를 만나게 되니 벽화를 떼어 머리에 이고 감격의 눈물이라도 흘리고 싶은 기분이다.

 

                                                     
강호진
한양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에서 불교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중학생 때 어머니를 따라 해인사 백련암에 올라가 삼천 배를 하고 성철 스님에게 일각 一角이란 불명을 받았다. ‘오직 일체중생을 위해서 살라’는 성철 스님의 가르침에 깊은 감명을 받았지만 지금껏 별달리 일체중생을 위해 살아본 적이 없다. 좋은 스승을 만나고도 그 가르침대로 살지 못한 마음의 빚을 조금이나마 갚는다는 심정으로 『10대와 통하는 불교』,
『10대와 통하는 사찰벽화이야기』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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