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초대석] 『6월 항쟁과 불교』 윤금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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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광초대석] 『6월 항쟁과 불교』 윤금선 작가
  • 유권준
  • 승인 2019.02.07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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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불교가 걸어갔던 길
사진=최배문

 

1987년 6월 항쟁의 한 복판에 섰던 불교운동가들의 기록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왔다. 민주화운 동기념사업회가 펴낸 『6월항쟁과 불교』(윤금선 지음)가 그것. 6월 항쟁 30주년을 기념해 2017년 펴 냈던 『6월항쟁과 국본』에 이어 나온 한국현대불교사의 기록이다. 이 책을 쓴 윤금선 작가는 1987 년 대학생불교도연합(이하 대불련)의 부회장을 맡고 있었다. 그녀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제안을 받아 자료를 모으고, 여러 활동가들을 만나 직접 인터뷰했다. 윤 작가는 “조금 늦었지만, 이 책을 통 해 역사의 한 페이지가 채워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 현수막을 가슴에 품고, 전경들 사이로

“영화 1987을 보면서 참 속상했어요. 불교계의 활 약상은 전혀 나오지 않았거든요. 이유가 뭘까 생 각했죠. 영화를 만들었던 분들이 참고할 자료가 전혀 없었을 거에요. 2017년 민주화운동 기념사 업회가 펴냈던 ‘6월항쟁과 국본’이라는 책에는 불 교운동과 관련된 내용이 없었거든요”

윤금선 작가가 ‘6월항쟁과 불교’의 집필을 의 뢰받은 것은 2017년 12월. 민주화운동 기념사업 회 이사장을 맡고 있던 지선 스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불교와 6월항쟁을 주제로 책을 내기로 했는데, 맡아 달라”는 이야기였다. 마침 일을 하던 천태종 복지재단을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시절인연인가 보다’ 했다. 사람들을 만나고,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기억 속에 묻혀있던 일들이 하나 둘씩 떠올랐다.

“박종철 군이 고문을 받다 사망하고, 진상규명 을 요구하는 시위가 계속될 무렵이었어요. 1987년 3월쯤이었죠. 매일 활동가들에게 전화를 돌리고, 유 인물을 복사하고, 현수막을 만드는 일로 눈코 뜰 새 가 없었죠. 현수막을 만들어 종로 보천장 여관에 스 님들께 가져다 드리는 일을 맡았는데, 주변에는 전 경들이 쫙 깔려있었어요. 정장을 입고, 옷 속에 현수 막을 숨겼어요. 전경들 사이를 지나는데, 가슴은 쿵 쾅거리고, 진땀이 흘렀죠. 간신히 여관에 도착해 스님들을 만났는데, 스님들은 농담도 하시고, 긴장된 분위기가 없어 깜짝 놀랐었죠. 스님들께서 의연한 모습을 보여주셔서 큰 힘이 됐던 기억이 납니다.”

영화 1987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이야기가 계속됐다. 윤금선 작가는 당시 상명여대 불교학생회를 이끌면서 대불련 부회장을 맡고 있었다. 회장은 강태진(전 방송광고공사 감사)씨였다.

“선배들께 들은 바로는 70년대 말 민중불교 론이 대두되면서 베트남 불교사를 보면서 토론도 하고 학습도 이뤄졌다고 합니다. 80년대 학생운 동의 전사라고나 할까요? 1980년대 초반해도 대 불련은 보수적 분위기였어요. 베트남 불교사를 통 해 사찰을 근거지로 해서 불교운동을 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사원화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일어나기 시작했죠. 법련사와 묘각사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야학도 하고 그랬었죠.”

그녀가이번책을쓰기위해만난사람은30 여 명. 시간적 제약으로 더 많은 사람을 만나지 못 한게 아쉽다고 했다. 스님으로는 지선 스님과 명 진 스님, 청화 스님, 법안 스님, 진관 스님, 정산 스 님 등을 만났다. 대불련 활동을 했던 조성렬, 고광 진, 김종만, 정웅정, 이남재, 류지호, 유정길, 배영 진, 이점수, 허미선, 김영균, 김유신, 이영철, 이갑상, 김영, 이지범, 강명호, 한은영, 연복흠, 박법수, 조용석 씨등을 만났다. 그리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자료를 모았다. 자료를 연대별로 모으고, 사건별로 다시 들여다봤다. 인터뷰를 통해 서로 다른 기억의 조각을 맞추고 대조했다. 그렇게 『6월 항쟁과 불교』가 쓰여졌다.

윤금선 작가. 사진=최배문

 

| 긴 잠에서 깨어난 불교의 움직임

“87년 6월 항쟁에서 종교계의 역할은 매우 컸습 니다. 성당과 교회에서는 고문으로 사망한 박종철 군을 추모하는 집회와 타종을 했고, 농성의 거점 역할을 하기도 했죠. 불교계도 70년대와는 질적

으로 다른 활동을 벌였어요. 민주개헌을 요구하는 성명에 스님 751명이 참여했죠. 불교가 기나긴 잠 에서 깨어나는 신호였어요”

1970년대만 해도 민주화운동에서 불교계의 움직임은 미미했다. 80년대 동국대와 승가대 스 님들을 주축으로 대불련 학생이 함께한 민주화 운 동 참여는 과거에는 볼 수 없던 모습이었다. 불법 佛法은 보살정신과 역사의식으로 재해석 됐다. 승 가와 재가는 활발한 토론을 벌이며 6 월 항쟁의 주 역으로 나아갔다. 1987년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 본부에는 지선스님과 진관스님 등 스님 102명과 재가불자 58명이 이름을 올렸다.

“취재를 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어요. 10.27 법 난은 불교계의 큰 충격이었죠. 불교의 자주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이뤄졌고, 민주화라는 시대적 흐름과 함께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봅니다.”

책은 단순히 1987년의 상황만을 담지 않는 다.6월항쟁을담기위해그배경을거슬러올라 간다. 1970년대의 맹아적 형태의 민중불교론에서, 1980년대초의사원화운동을살펴보는것도그 때문이다. 윤 작가는 불교활동가들의 각성과 학습 이 어떤 배경에서 이뤄졌는지를 들여다본다. 또 사료적 완결성을 위해 당시 발표됐던 성명서와 시국 선언문 24편도 전문을 수록했다. 1986년 조계종 스님 152명이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발표한 ‘민주화는 정토의 구현이다’라는 시국선언문이나 1986년 승려대회에 앞서 발표된 ‘전국 승려대회 취지문’은 당시의 상황인식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다.
 

| “더 해야할 일 많은데...”

윤금선 작가는 대불련 부회장을 끝내고 1988년 법 륜스님이 하던 정토포교원의 불교사회교육원에서 민족불교학당 일을 맡아 일했다. 90년대에는 민족 자주통일불교운동협의회(이하 통불협) 간사를 1993 년까지 맡아 활동했다. 그 후 불교방송 작가로 10 여 년 넘게 방송 일을 했다. <신행 365일>, <퀴즈대 장경>, <거룩한 만남>, <무명을 밝히고> 등이 그녀 의 손을 거쳐 간 프로그램이다. 방송을 매개로 전법 의 현장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뿌듯했다.

“1987년의 민주화운동이 만든 체제가 바로 지 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죠. 30년이 넘었습니다. 불 교계도 많이 변했구요. 이제는 우리가 지나온 시대 를 되돌아봐야 할 때가 됐다고 봅니다. 기독교계의 경우 연구소도 많고 청년들의 사회참여도 활발하 기 때문에 많은 자료가 축적되기도 하고, 연구도 상 당히 진척된 걸로 알아요. 불교도 그래야 한다고 봅 니다. 이 책만 봐도 아직 군데군데 더 채워져야 할 곳 이 많이 있어요. 구술사 연구도 훨씬 광범위하게 이 뤄져야 하구요. 사상사적 연구나, 시기별, 사건별 평 가도 구체적으로 더 꼼꼼히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 해요. 불교계의 관심이 더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에 발간된 『6월항쟁과 불교』는 진행형의 결 과물이다. 아직도 수많은 자료가 잠들어 있다. 역사 는 현재가 과거를 부를 때 비로소 잠에서 깨어난다. 더 잊혀 지기 전에,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불러 일으 켜야 세워야 한다. 그리고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글. 유권준
사진. 최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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